평면 71점, 조각 2점
“부서지고 허름한 장소서 영감 얻는다”
“구분하는 모든 것들 융합하고자”
[서울문화투데이 김연신 기자] 국내 국·공립 미술관 최초로 현대 추상회화의 거장 션 스컬리(Sean Scully, 1945~) 회고전이 열린다. 대구미술관(관장 노중기)은 2025년 국제전 《션 스컬리: 수평과 수직》을 오는 8월 17일까지 개최한다. 지난 17일 대구미술관에서는 전시 개막에 앞서 기자간담회 자리가 마련됐다.

융합과 영성의 화가
지난 17일 개최된 기자간담회에는 션 스컬리 작가, 노중기 대구미술관장, 전시를 기획한 이정희 학예사 등이 자리에 함께했다.
전시 소개에 앞서 션 스컬리는 “내 작품은 한국과 잘 어우러진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다양한 영향을 받은 융합의 복합체이기 때문이다”라며 “내 작품은 전 세계의 다양한 요소들이 융합되어있으며, 자연을 담고 있다”라고 이번 전시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본지 이은영 발행인은 앞서 작가가 말했듯 작품이 한국과 잘 어우러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또 작가가 ‘영성의 화가’로 알려져 있는데, 작품의 어떠한 요소가 영성적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작가는 “자동차의 경우, 브랜드 이름이 다르다고 (자동차가) 맞고 틀리고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나 종교는 종종 다른 이름이 붙음에 따라 서로를 배척하며 맞고 틀리고를 구분한다”라며, “나는 물질과 영성 등 무언가를 가르고 구분하는 모든 것들을 융합하고자 한다. 멀리서 전체를 조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작품 활동에 그대로 녹여내고자 하고 있다”라고 답변했다.
또, “한국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예술과 자연의 관계가 굉장히 긴밀하다는 것이고, 또 예술과 건축물, 자연과의 관계가 조화롭게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대구미술관의 건축물과 바깥의 배경이 굉장히 조화롭게 어우러진다”라고 밝혔다.
최근에 <검은 사각형>이라는 그림을 만들었는데, 거기서 나는 믿음의 한가운데에 허무주의나 비관주의를 끼워 넣었다.
낭만적이고 열정적인 추상의 한가운데에.
긍정과 부정. 내게는 그것이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전시 문구에 인용된 션 스컬리 작가의 말 中 -

파괴, 그리고 추상
작가가 생각하는 ‘추상’의 정의와, 추구하는 추상화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도 있었다. 션 스컬리는 “추상은 그리스 철학자들로부터 출발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실체 그리고 또 형상으로부터 무언가를 떼어내기 위해서 그 대상을 추상화한다(abstract)라는 개념을 이제 만들었다. 이후 러시아에서 절대주의(suprematism)와 허무주의(nihilism)이 생겨났고, 동양에서도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동양의 카페트 문양이 있다”라며, “내가 하려는 것은 재구성된 구상미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추상미술의 장점은 컨텍스트(맥락, context)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구상미술이 가사가 있는 노래라면, 추상미술은 가사가 없는 음악이다. 가사가 있으면 이야기를 전달하기 쉽지만, 장례식장과 같은 장소에서는 더욱 심원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가사 없는 음악을 선호하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추상을 추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추상적이지 않다. 추상 또한 자화상이다.
자신의 상태를 그린 초상화일 뿐이다.(...)
빛의 벽은 본질적으로 형이상학적 개념이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나의 영적 환영과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만 비로소 실재하는 벽이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한 가지 색을 보고 있노라면 그림의 표면 아래 흐르는 리듬이 느껴지는데 이는 마치 고고학처럼 우리에게 그림 한 장에 대한 많은 정보를 준다. 이때 느껴지는 것은 대개 처음 그 그림을 봤을 때의 인상과는 상이하다.
이게 바로 내가 작업을 할 때 추구하는 것이다. 여러 층으로 된 회화를 만드는 것.- 전시 문구에 인용된 션 스컬리 작가의 말 中 -

이어, 성모마리아 ‘삼면화(Madonna Triptych)’ 작품을 예로 들며 “작품을 통해 컨텍스트를 파괴하고자 한다. 무언가를 콘텍스트에서 벗어나게 하는 작업을 하고 싶었고, 또 콘텍스트가 있는 무언가와의 관계를 모두 단절하고 싶었다”라며, “내가 하려는 것은 좀 더 자유롭고 낯선 것이다. 그래서 원래 소속되어 있던 환경이나 컨텍스트에서 벗어나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다. 그래서 무언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감각과 합일화가 되었다는 감각을 깨뜨리는 것이 내가 하고자 했던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조각 작품에 대한 질문에. 작가는 “어렸을 때 판지 공장에서 일한 적이 있다. 판지를 탑처럼 쌓고, 기계에 넣고 빼는 일이 고됐는데, 이 경험 덕에 무언가를 입체적으로 구상하기 용이해졌다. 입체 작업을 할 때면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3차원의 이미지들이 떠오른다”라며, “이번에 선보인 조각 작품은 액자 프레임처럼 구멍이 있는 틀을 쌓아올렸기 때문에 안에 빈 공간이 있다. 그래서인지 뉴욕에 설치한 작품에는 그 안으로 새들이 찾아오기도 했다”라고 덧붙였다.

작가에게 있어 ‘색채’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도 있었다. 작가는 웃음과 함께 “색채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다. 비유를 하자면, 누군가가 노래를 어떻게 부르냐고 물으면 그저 공기를 내뱉는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듯이 내가 색을 쓰는 방식에 대해서도 나도 원리를 알 수 없다. 캔버스 위 색상들은 그저 그 위에 올라가는 물질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답변했다.
영감을 보통 어디서 얻는지 묻는 질문에는 “작업하는 걸 좋아해서 작업 과정 자체만으로도 행복을 느끼기도 하지만, 전쟁에 맞서고자 하는 사명도 있다. 이러한 사명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고, 세상의 다양한 곳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데, 보통은 다 부서지고 허름한 장소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다. 허름한 건축물이나 쓰레기, 빈민가 혹은 올바르지 않은 것들 등이다”라고 말했다.

현대 추상회화의 선구자, 션 스컬리
1945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나 현재 미국과 유럽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션 스컬리는 지난 수십 년간 현대 추상회화를 은유와 영성, 휴머니즘으로 이끄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한 동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평가받고 있다.
회화, 사진, 조각, 판화 등 다양한 장르를 다루는 작가는 특히 풍부한 색채와 기하학적 형태에 기반한 독자적인 화풍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물감이 채 마르기 전에 여러 겹으로 덧칠함으로써 얻어지는 풍부하면서도 미묘한 색채감과 강한 공간감은 그의 회화를 대표하는 특징으로 꼽힌다.
작가는 1989년과 1993년 두 차례 터너상 후보에 올랐다. 현재 그의 작품은 세계 주요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고, 광범위하게 전시를 하고 있는 동시대 가장 중요한 현대미술가 중 한 명이다.
이번 전시는 션 스컬리의 한국 국공립미술관 최초 개인전으로,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작가의 작품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작품들이 대거 출품된다. 시기별 대표작과 신작을 아우르는 회화, 드로잉, 조각 등 70여 점을 전시하여 그의 예술적 여정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자 한다.

시기별로 조망하는 대형 작품들
전시에는 작가를 대표하는 ‘빛의 벽 Wall of Light’, ‘랜드라인 Landline’ 연작을 비롯해 작가 활동 초기인 1960년대의 구상작품, 정밀한 선들이 교차하는 구성의 1970년대 구조적인 격자(Supergrid) 회화, 캔버스 패널 안에 또 다른 패널을 배치하는 인셋(inset) 기법을 활용한 1980년대의 대형 회화, 그 밖에 수채화, 연필 드로잉, 디지털 프린트 등 작가의 작품세계에 다층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작품들이 소개된다.
특히 이번 대구미술관 전시를 위해 제작한 4미터 높이의 대형 철 조각 ‘대구 스택(Daegu Stack)’과 작가 특유의 풍부한 색채로 도색한 알루미늄 프레임을 층층이 쌓아 올린 ‘38’을 미술관 야외 공간과 어미홀에 각각 설치하여 처음으로 선보인다.
이번 전시 출품작들은 대부분 대형 작품으로, 대형 캔버스에 펼쳐진 거친 붓질과 심원한 색채는 마주하는 순간 어떠한 경외감을 안겨준다. 전시실의 높은 층고와 작품이 주는 웅장한 느낌에 빠져들 수 있도록 공간감을 살린 작품 배치도 이를 위함이다.

아치형의 입구를 따라 들어가면 소파에 앉아 사방을 둘러싼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 나타난다. 션 스컬리의 작품은 스치듯 혹은 순간의 감흥을 기대하며 감상하기보다는 차분하게 작품과 공명하듯 느껴보라는 암시와 같이 느껴진다.
시기별로 작품을 묶어 션 스컬리의 작업을 조망하는 전시 구성은 작업의 변화 양상을 어떠한 흐름 속에서 이해하도록 돕는다. 오일 파스텔을 활용한 초기작부터 화면을 직조하는 듯한 격자 모양의 패턴이 자주 등장하는 1970년대, 또 캔버스 패널을 활용한 80년대 작품들, 아이폰을 이용한 근작인 디지털 드로잉까지 시대별로 작품에 나타난 특징을 느껴볼 수 있다. 전시는 오는 8월 17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