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광공사가 가려 뽑은 9월 문학기행
한국관광공사가 가려 뽑은 9월 문학기행
  • 이푸름 기자
  • 승인 2012.09.17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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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을엔 나도 창원, 부안, 양평, 정선, 칠곡... 에서 문학 입술 훔칠 거야

초가을이 바람을 살랑살랑 흔들다 한쪽 눈을 찡긋하며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가을, 하고 부르면 여행이 네에~ 하며 메아리 친다. 가을과 여행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애인 사이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가을, 하면 자신도 모르게 시가 떠오르는 것도 어디론가 훌쩍 바람처럼 떠도는 계절이기 때문이리라.

올 가을에는 문학이 출렁출렁 흐르는 곳으로 떠나자. 그곳에 가서 스스로 가을이 되고 시가 되고,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이 되자. 누가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 했는가.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 아니다. 가을은 스스로 책이 되는 계절이다. ‘가을 타는 남자’, ‘가을 타는 여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올 가을에는 나도 문학 입술 훔치러 한국관광공사가 가려 뽑은 ‘9월에 가볼 만한 다섯 곳'을 따라가자.

문학 탯줄 묻은 곳, 창원시 마산합포구 노산북8길

창원시 마산합포구는 문학이 뻗은 뿌리가 꽤 깊은 곳이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고운 최치원(857~?) 선생이 월영대 앞바다가 지닌 아름다움에 포옥 빠져 오래 머물렀다. 고려시대에는 정지상 김극기 안축, 조선시대에는 서거정 이황 정문부 등 이름 난 선비 13명이 월영대를 찾아 시로 고운 선생을 기렸다.

▲창원시 합포에 고운 최치원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월영대

마산에서 태어난 시조시인 이은상(1903~1982)은 노비산을 즐겨 찾았다. 호 ‘노산’도 이 야트막한 산에서 비롯됐다. 지금 노산이 떠난 그 노비산 자락에 창원시립마산문학관이 둥지를 틀고 있다. 이곳 전시실에는 결핵문학, 민주문학, 바다문학 등 문학 특징별로 갈래가 나뉘어져 있다.

그 가운데 국립마산결핵요양소(현 국립마산병원)에 머물던 작가들 활동을 보여주는 ‘결핵문학’이 눈에 띤다. 이곳에는 결핵 계몽지 ‘요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문학동인지 ‘청포도’ ‘무화과’ 등은 지금도 펴내고 있을 정도로 수많은 문인들 이야기가 숨어 있다. 시인 김지하는 결핵환자가 아니지만 이 요양원에 머물러야 했다. 박정희 군사독재가 낳은 웃지 못할 이야기다.

합포구 곳곳에는 문학비가 있다. 가장 시비가 많은 곳은 용마산 산호공원이다. 공원 들머리에서 숲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면 눈 밝은 시인들이 ‘시비 무덤’(?)이라 부르는 ‘시의 거리’가 이어진다. 무학산 만날공원에는 창원에서 태어난 시인 천상병(1930~1993) 시비 ‘새’도 만날 수 있다.

미술관과 박물관, 공원도 볼거리다. 먼저 지구촌 조각가 문신(1923~1995)이 남긴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창원시립문신미술관이 있다. 개항 1번지이자 이승만 정권이 저지른 3·15 부정선거에 맞선 마산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는 창원시립마산박물관도 있다. 마산조각공원 안에 있는 창원시립마산음악관도 눈요깃거리다. 창원시청 관광진흥과 055-225-3695.

시인이 꿈꾸던 ‘그 먼 나라’, 부안 신석정문학관

변산은 제 홀로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마구 내달리다 드넓은 서녘바다 앞에서 멈췄다. 변산에 있는 전나무 숲길 끝에 자리 잡은 내소사, 울금바위를 뒤로 하고 아늑하게 들어앉은 개암사 등 백제시대 고찰들도 그 산에 자리 잡고 있다. 켜켜이 쌓인 해식 단애가 신비로운 풍경을 자아내는 격포 채석강, ‘모세의 기적’처럼 바다가 갈라지며 뭍과 이어지는 하섬, 우리나라에서 얼마 남지 않은 천일염을 만드는 드넓은 곰소염전도 볼거리다.

유홍준(63) 교수가 ‘환상의 해안 드라이브 코스’라고 이름 붙인 ‘격포에서 모항 지나 내소사를 거쳐 곰소로 가는 길’과 소박하고 평화로운 갯마을 등 전북 부안이 자아내는 풍경은 산과 바다가 만나 더 매력적이고 아름답다. 그곳에서 자란 이가 시인 신석정(1907~1974)이다. 그는 그 풍경을 밑그림으로 ‘촛불’(1939)과 ‘슬픈 목가’(1947)란 시를 썼다.

그가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시를 쓴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전북 부안군 부안읍 선은리에 있는 신석정 문학관에 가면 시인 신석정이 ‘참여시’가 아닌 나약한 시만 썼던 시인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그는 문예지 <문장>에 실릴 예정이던 시가 검열에 걸리기도 했다.

그는 <문장>이 1941년 강제 폐간되면서 일제 압박이 심해지던 때 친일 문학지 <국민문학>에서 원고청탁이 들어오자 청탁서를 찢고 창씨개명도 끝까지 거부한 채 광복될 때까지 펜을 꺾었다. 5·16 쿠데타를 통해 박정희 군부가 들어서자 이를 비판하는 시를 발표했다가 고초를 겪기도 했다.

부안은 기생이자 여성시인 이매창(1513~1550)이 자란 곳이기도 하다.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로 시작되는 ‘이화우’를 쓴 그를 기리는 매창공원도 있고, 시비도 세워져 있다. 허균(1569~1618)이 쓴 이매창을 애도하는 시와 시조시인 가람 이병기(1891~1968)가 이매창 무덤을 찾아 읊었다는 ‘매창뜸’도 시비에 새겨져 있다.

부안은 ‘솔아 푸른 솔아’라는 뛰어난 시를 남긴 시인 박영근(1958~2006)이 태어나 자란 곳이기도 하다. 부안 여행길에서 배가 출출하다면 백합죽과 백합탕, 백합구이 등 여러 가지 백합요리와 9가지 젓갈이 나오는 ‘젓갈정식’을 맛보자. 부안군청 문화관광과 063-580-4713.

‘소나기’ 떠올리며 소년 소녀로 되돌아가는 곳, 양평 황순원 문학관

‘소나기’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본 단편소설이다. 소년과 소녀가 주고받은 순수하고도 아름다운 풋사랑을 세상살이에 지칠 때마다 떠올리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며 어린 날 추억에 젖게 된다. 이 소설이 지닌 감동을 온몸으로 느껴볼 수 있는 곳이 경기 양평에 있는 ‘소나기마을’이다.

▲양평군 서종면에 위치한 소나기마을. 소설 소나기의 작가 황순원문학관도 둘러볼 수 있다.

이곳에는 황순원(1915~2000) 부부 묘와 함께 작가로서 치열하게 살다간 황순원 삶을 되짚는 황순원문학관(경기 양평군 서종면 수능리)이 있다. 이곳에 들어서면 ‘소나기’ 외에도 ‘골목’ ‘밀어’ ‘우리 안에 든 독수리’ ‘늙는다는 것’ ‘옛사랑’ ‘나의 꿈’ 등이라는 시와 ‘독 짓는 늙은이’ ‘목넘이마을의 개’ ‘학’ ‘카인의 후예’ ‘나무들 비탈에 서다’ 등 중단편 소설까지 모두 만끽할 수 있다.

황순원문학관 곁에는 ‘소나기’에 등장하는 징검다리와 수숫단 오솔길, 송아지 들판, 고백의 길 등이 만들어져 있다. 여행객들은 이곳에서 산책을 하며 ‘소나기’ 속 소년과 소녀가 되기도 하고, 풋사랑처럼 사춘기 때 추억도 되살릴 수 있다. 소나기 광장에서는 특히 매일 3차례 인공 소나기가 내린다.

이 소나기에 흠뻑 젖어보는 것도 또 하나 가슴에 새기는 아름다운 추억이다. 가까이 있는 양평군립미술관, 철갑상어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경기도민물고기생태학습관, 구둔영화체험마을, 등록문화재 296호로 지정된 옛 구둔역도 한반쯤 들러보자. 양평군청 문화관광과 031-770-2066.

벼랑 위에서 시를 노래하다, 정선 몰운대

산 높고 계곡 깊은 강원도 정선에 들어서면 누구나 시를 읊고 싶고, 노래 한 자락 부르고 싶어진다. 황순원 아들인 시인 황동규(74)는 수려한 경치가 북녘 땅 금강산에 뒤지지 않는다 해서 소금강으로 불리는 절경 끝자락에 있는 몰운대에서 ‘몰운대행’을 읊었다. 시인 이소리도 옥수수막걸리가 아닌 몰운대에 취해 ‘몰운대’란 시를 썼고, 여러 문인들도 절벽과 계곡이 지닌 아름다움을 시로 옮겼다.

몰운대(강원도 정선군 화암면 몰운리)는 21세기 영상 예술가들로부터도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이곳은 드라마 ‘구미호:여우누이뎐’, ‘닥터 진’, 영화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 등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몰운대를 시작으로 화암약수까지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는 바닥이 푹신푹신하고 경사가 지지 않아 가족들이 함께 걷기에 차암 좋다.

▲강원도 정선에 위치한 몰운대.

송천과 골지천이 만나는 아우라지는 정선아리랑을 낳은 곳이다. 김원일(70) 장편소설 <아우라지 가는 길>에서도 아우라지는 그리운 고향으로 그려졌다. 정선 읍내를 한 바퀴 둘러보는 것도 눈요깃거리다. 아라리촌에는 옛집과 함께 박지원 소설 ‘양반전’을 해학으로 다시 짠 조형물도 있다.

좋은 인심과 먹거리 가득한 정선 장터도 빼먹어서는 안 된다. 올해 ‘한국 관광의 별’로 뽑힌 곳이기 때문이다. 정선장터에는 곤드레나물밥과 콧등치기국수, 메밀국죽 등 이 지역에서만 맛 볼 수 있는 별미를 파는 먹자골목이 줄줄이 들어서 있다. 여러 가지 산나물과 옥수수, 수리취떡 등도 싸게 살 수 있다.

가까이 있는 병방산에는 요즘 문을 연 아리힐스리조트가 있다. 이곳에 가면 스카이워크 체험을 통해 한반도 지형을 닮은 물돌이 마을도 구경할 수 있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석가모니 진신 사리를 봉안한 정암사도 빼놓지 말고 꼭 들러보자. 정선군청 관광문화과 033-560-2363.

영원을 추구한 시인, 칠곡 구상문학관

칠곡을 대표하는 구상문학관(경북 칠곡군 왜관읍 구상길)은 구상(1919~2004) 시인 유품이 있는 곳이다. 시인 구상은 프랑스에서 ‘세계 200대 문인’으로 뽑힌 한국문단이 낳은 탁월한 시인이다. 그가 남긴 작품은 영어와 불어, 독어, 스웨덴어 등으로 옮겨져 지구촌 문학사 한 페이지를 쓰고 있다.

문학평론가 김윤식(76) 전 서울대 교수가 “그의 목소리는 역사 속에서 역사를 넘어서 들려오는 예언자의 어조 그것이다”고 평했을 정도다. 구상은 서울에서 태어나 네 살 때부터는 함경남도 원산으로 옮겼다. 1946년 원산에서 동인지 <응향>을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그는 시가 반사회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필화사건으로 이어져 북한 당국에서 조사를 받기도 했다.

그는 그 뒤 남한으로 내려왔다. 그때 신익희 전 대통령 후보와 장면 전 총리, 박정희 전 대통령 등이 그에게 정치 참여를 요청했으나 그때마다 손을 내저으며 그 어떤 권력도 지니지 않았다. 한국전쟁 뒤에는 이승만 정권과 반독재 투쟁을 벌여 투옥되기도 한 그는 1952년 칠곡 왜관으로 옮겨 1953~1974년까지 머물며 여러 예술가들과 폭넓게 만났다.

동인지 ‘응향’ 표지를 그린 화가 이중섭(1916~1956)은 왜관에 있는 구상 집에 머물며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이 무렵 그린 그림이 ‘K씨의 가족’이다. 구상문학관에는 육필원고를 비롯한 유품 300여 점이 시인이 남긴 사리처럼 전시되어 있고, 문학관 뒤편에는 시인이 살았던 ‘관수재(觀水齋)’가 있다.

이 문학관 곁에는 서울 명동성당과 같은 때인 1895년 세워진 가실성당과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한국전쟁 때 아군 1만여 명, 적군 1만7500여 명이 전사한 다부동전투를 기념하는 다부동 전적기념관, 기분 좋은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조선시대 가산산성 등이 있다. 칠곡군청 새마을문화과 054-979-6064.

이푸름 기자 press@s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