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석의 박물관칼럼] 국고지원 10년의 단상
[윤태석의 박물관칼럼] 국고지원 10년의 단상
  • 윤태석 한국박물관협회 기획지원실장
  • 승인 2013.09.13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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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태석 한국박물관협회 기획지원실장/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겸임교수/문화학 박사(박물관학·박물관 정책)
2004년, 우리나라 박물관·미술관(이하 박물관)은 참으로 분주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시대 개관(2005.10.28)을 1년 앞두고 막바지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고, 한남동에 새 둥지를 마련한 삼성미술관 리움도 개관(2004.10.13) 준비에 혼신을 다하고 있었다. 국립고궁박물관 역시 국립중앙박물관의 경복궁터를 이어받아 개관(2005.8.15)준비에 분주한 때였다. 무엇보다도 제20차 ICOM서울세계대회(2004.10.2∼8)를 앞둔 정부와 관련 기구들의 움직임은 박물관 관련 최초의 세계대회라는 점에서 기대와 불안, 우려 등 여러 상황들이 얽혀 술렁이고 있었다. 

 

이 분주하던 2004년. 복권기금이라는 생소한 이름을 달고 사립박물관 최초의 국고가 지원되었다. 복권기금지원의 시작은 2004년「복권 및 복권 기금법」(법률 제7159호, 제정 2004.1.29)이 시행(2004.4.1)되면서 복권 판매액에서 당첨금과 운영비를 제한 수익금이 재원이 된 지원이었다. 관리와 운영은 국무총리실 복권위원회(현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에서 담당했던 이 사업은 ‘법정배분사업’(총 수익금의 30%, 295,923백 만 원)과 ‘공익사업’(총 수익금의 70%, 641,851백 만 원)으로 크게 분류되었으며 현재에도 박물관 지원은 공익사업에 속해있다.

지원 사업의 명칭은 「사립박물관·미술관 특별전시 프로그램 지원」으로 등록 사립박물관·미술관 총 174개관(전체 355개 관 중 49.0%) 중 독립기념관 및 전쟁기념관 등 공공성격이 강한 7개관을 제외한 167개관이 대상이었다. 이 들 중 120개관(전체박물관 수 대비 33.8%, 전체 사립박물관·미술관 수 대비 71.9%)이 관 당 3,000만 원 안 밖의 지원을 받게 되었다. 당시 박물관 지원금은 총 36억으로 전제 복권기금 937,774백만 원에서 0.4%에 해당되는 미미한 것이었으나, 작은 액수에도 불구하고 일선 박물관에서는 이에 대한 사업기획은 물론 정산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어, 9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격세지감마저 느끼게 한다. 지금도 이 복권기금은 사립박물관에 가장 중요한 지원프로그램 중 하나이지만 예산은 8억으로 감액된 반면 지원 대상(사립에서 공립과 사립대학으로 확대)은 물론 박물관 수마저 크게 늘어(372개관_2011년도 말 현재 사립 박물관?미술관 수) 지원의 명맥만 겨우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학예사 및 교육담당자, 해설사에 대한 인건비 지원, 운영비, 전시 및 교육프로그램 기획운영비, 초중등학생 관람료 지원 등 지원 사업은 크게 확대되어 2004년 이후 중앙 및 지방정부지원금을 누적해 볼 때 수백억 원은 족히 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지원은 박물관 운영에 큰 힘을 덜어주고 있다.  

국고지원이 내년으로 10년을 맞게 된다. 그렇다면 지원 10년을 앞두고 이러한 지원이 박물관발전에 어느 정도 기여했을까? 기여했다면 어느 부문일까? 또 우리 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인 '철학과 정신', '소명의식', '공공의식'까지도 발전해 왔을까? 필자가 볼 때 아직 전적으로 동의하기에는 이르다는 생각이다. 아니 보다 솔직히 말해 긍정적인 측면만큼이나 부정적인 요소도 있어 보인다. 국고지원이 없었을 때도 박물관은 있었고 지금도 박물관은 존재한다. 그러나 국고지원 이전에 설립되어 운영하고 있는 박물관에 비해 지원 이후 보다 좋은 환경에서 들어선 박물관이 박물관에 대한 소신과 철학마저 더 확고할까. 이를 측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최근 설립도하기 전에 당연한 것처럼 "박물관을 하면 국고를 얼마 주느냐?"고 관계당국에 문의를 하는 사례가 적지 않음에서 볼 때, 이 역시 동의하기 어려운 단면이다.  

일부 학예사들의 말을 빌자면 국고와 지방비를 얼마나 따내느냐가 박물관에서 학예사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며, 예산을 지원받으면 학예사를 고용하고 지원이 끊기면 변변한 전시하나 개최하지 못하는 박물관도 있단다. 따라서 기성박물관들은 국고(지방비 포함) 의존도는 높아진 반면 자생력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고도 볼 수도 있다. 

국고 지원10년을 앞두고 이제 박물관은 달라져야한다. 국고가 무슨 돈인가? 박물관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농어촌 무지렁이 농어부들의 땀까지 더해진 가장 숭고한 공적자금이다. 박물관의 철학과 소명의식, 공공자산으로서의 인식이 강화되는 쪽으로 변해야 하는 이유이다. 국고지원으로 분명 박물관이 활성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신과 철학이 뒷받침되지 않은 발전은 진정한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정부정책의 방향도 이제 단순지원에서 고유역량강화에 맞춰져야한다. 박물관이 국고에 의지해 1회성 활동(전시, 교육 등)을 하느라 세월을 보내는 것이 더 이상 정부정책의 목적이나 방향이 되어서도 안 된다. 박물관의 철학과 소명의식, 공공적 기능이 강화되는 쪽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정책과 제도개선, 지원사업의 방향이 맞춰져야 한다. 박물관은 정신문화를 응집한 타입캡슐의 보관처이며 발현의 공간이다. 이 값진 정신문화를 더 이상 가벼이 해서는 안 된다. 박물관 인들의 변화와 더불어 정부정책역시 기본 철학을 공고히 한 후 시행해야하며, 지원역시 여기에서 출발해야함은 물론이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이 개정을 앞두고 있다. 이 법 개정의 핵심은 평가와 인증에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 박물관의 공적기능을 유도하기 위해 박물관과 같은 문화기반시설을 아우르는 (가칭)「문화법인」도 새로운 형태로 구상하고 있다. 이 역시 회계의 투명성이나 지원의 명분 찾기에 목적을 둘 것이 아니라 박물관 소장유물의 입장에서 운영철학을 담보하는데 방점이 찍어져야한다. 국고지원 10년 이제 그 명암을 정확히 들여다보고 다시 판을 짜야할 때다.

[필자 프로필]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겸임교수
문화학 박사(박물관학 / 박물관 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