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신의 장터이야기 (24)
땅은 보물창고다.
온갖 씨앗에 비밀을 담아 봄이 되면 보물창고에 시간을 심어 넣는다.
바람소리와 풀 소리, 그리고 물소리마저도 비밀이 되어 땅속에서 만난다.
여름 내내 밭을 매면서 호미끝자락에 비밀을 묻어놓아 가을이면 캐낸다.
드넓은 땅에 농작물을 심어 놓고 어느 밭에서 순이 제일 먼저 돋아나고,
어떤 농작물에 마지막으로 해가 스며드는 것까지 훤히 꿰고 있다.
내가 최초로 농사를 진 것은 어렸을 적 논둑위에 콩을 심고부터다.
콩을 심은 것 까지는 좋은데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들고 논둑으로 향했다.
여린 콩잎이 비 맞을까봐 우산 밑에는, 동그마니 나와 콩잎이 앉아 있곤 했다.
그리고 가을걷이가 끝난 후, 밥상위에 올려 진 콩밥을 먹을 때마다
식구들의 동그란 웃음소리가 둥둥 떠다니며 재잘거렸다.
그래서 지금도 농작물이 커가는 모습을 놓치지 않고 지켜본다.
장터를 찾아다니는 것도 산과 들에서 일어나는 비밀한 순간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툭하고 말 한마디 건네면,
그네들이 금새 나와 친구가 되어주는 맛에 홀려,
지금도 장터를 돌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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