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모형, 드로잉, 아카이브, 영상 등 300여 점
총 50건의 대표 프로젝트 총망라
[서울문화투데이 김연신 기자] 1999년 프리츠커상 수상자이자 세계적인 건축 거장 노먼 포스터와 그의 자회사 포스터 + 파트너스의 주요 프로젝트를 국내에서 처음 소개하는 전시가 열린다. 서울시립미술관(관장 최은주)은 오는 7월 21일까지 총 88일간 서소문본관에서 《미래긍정: 노먼 포스터, 포스터 + 파트너스》를 개최한다. 지난 24일에 세마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노먼 포스터의 건축 철학과 이번 전시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노먼 포스터의 건축 철학
노먼 포스터는 이날 기자간담회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그의 아쉬운 마음을 영상으로나마 만나볼 수 있었다. 그는 “작년 말에도 한국에 방문한 바 있는데, 한국의 전통 건축 양식에 많은 영감을 받았다”라며, “한국인들의 활동성과 역동성에 대해 깊은 감명을 받았다”라고 전해왔다.
이날 자리에 참석한 포스터 + 파스너스의 케이티 해리스 시니어 파트너는 “이번 협업은 30년의 커리어에서 가장 기분 좋은 협업이었다”라며, “전시 테마에 대해 독자적으로 생각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팀과 협업할 수 있던 것은 큰 행운이었다”라고 밝혔다.
그는 “노먼 포스터의 철학”을 묻는 질문에 “그와 함께 일한지 42년 정도 됐다. 그동안 지켜본 바에 의하면, 그는 굉장히 많은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 중 첫 번째는 ‘품질(quality)이라는 것은 결국 정신(mind)의 태도다’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가들은 항상 ‘안주하면 안 된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기술적인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라며, “두 번째는 디테일에 기울이는 주의다. 우리는 ‘그 어떠한 세부사항도 지나치게 세부적이지 않다’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자면, 문손잡이 하나만 보더라도, 디자인뿐만 아니라 잡았을 때의 촉감, 문을 열고 들어갈 때 건물 자체를 더 즐길 수 있게 될지 등의 다양한 디테일을 고려한다”라고 답변했다.
이어, “유연성과 지속가능성, 이 두 가지도 핵심 개념이다. 설계 단계에서 기술적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하면 그 변화를 적용하기 쉬운 방법을 고려한다, 또, 만약 건물을 철거하거나 옮겨야 한다면 그 과정에서 시간과 노력, 자재가 많이 필요하지 않고 작업이 수월하게 이뤄지도록 하는 지속가능성 역시 유연성과 맞닿아 있다”라고 덧붙였다.
아시아 최대규모 전시
이번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의 2024년 전시 의제 ‘건축’을 탐구하는 전시의 일환으로, 포스터+파트너스와 공동으로 기획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향후 미술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사유를 보여주는 해외 거장 건축가로 노먼 포스터를 선정했다. 노먼 포스터와 포스터 + 파트너스의 비전을 통해 문화예술 공공 건축이 요구하는 동시대적 역할과 범위를 함께 고찰해 보고자 한다.
이번 전시에는 건축 모형, 드로잉, 영상, 아카이브 등 300여 점으로 구성된 대표 프로젝트 50건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 ‘미래긍정(Future Positive)’은 노먼 포스터와 포스터 + 파트너스의 건축 철학을 가장 잘 함축하는 표현으로, 미래를 향한 이들의 지향점을 총 다섯 개의 섹션 구성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노먼 포스터와 포스터 + 파트너스의 주요 미술관, 박물관을 비롯한 공공 프로젝트를 조명하고, 1960년대부터 이어져 온 지속가능성의 개념을 담은 철학과 미래 건축에 대한 사유를 소개하고자 한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사유 Introduction to Sustainability
케이티 해리스 시니어 파트너는 전시 기획 초기 단계에서 “지속가능성에 대한 전시를 준비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지속가능성이라는 테마는 저희의 모든 작업에 내포되어 있습니다”라는 답변을 해왔다고 한다.
사회 전반에서 발현되는‘지속가능’에 대한 제고와 실천에 대한 고민은 여전한 현재진행형 화두이지만 노먼 포스터는 이미 1960년대부터 건축과 그것을 둘러싼 광범위한 영역들을 설계함에 있어 지속가능성을 꾸준히 고민해왔다는 점에 주목한다. 특히 그는 최소의 자원으로 최대의 결과를 구현하고자 했던 친환경 건축의 선구자이자 발명가이며, 미래학자인 벅민스터 풀러(Buckminster Fuller)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기술에 대해 낙관적인 견해를 공유하고 밀접하게 소통했다.
현재로 연결되고 확장되는 과거 Culture + Retrofit
이 섹션은 오랜 역사를 가진 건축물에 현대적 해석으로 조화를 더한 ‘레트로핏(retrofit)’이라는 접근법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근대와 현대, 과거와 현재의 만남은 새로운 건축환경으로 사용자 경험을 이끌면서 공공 건축의 개념을 넓힌다. 레트로핏 프로젝트의 대표작으로 런던 영국박물관의 대중정, 뉴욕의 허스트 타워, 독일 국회의사당 등이 이에 해당된다.
건축물을 확장하고 개조하는 행위는 더 넓은 맥락에 반응하는 문화적인 공간을 만드는 일임과 동시에 역사의 생명력을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연장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있어 ‘레트로핏’은 옛것에 단순히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조심스럽고 정교하게, 그러나 혁신적으로 역사를 재해석하고 현재와 교차, 결합하면서 물리적인 건축을 넘어 하나의 ‘장소’를 재창조하는 것이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기술 Wellbeing + Technology
포스터 + 파트너스는 ‘어떻게 하면 기술을 통해 일터라는 장소를 친환경적으로, 일하기 즐거운 곳으로 변모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해왔다.
미국 애플 파크, 홍콩상하이은행, 영국 블룸버그 본사, 아부다비 마스다르 시티(Masdar City)와 같은 랜드마크 건축에는 독보적인 외형만큼이나 최첨단으로 설계된 기술력이 응축되어 있다. 고도의 기술이 가미된 실험적이고 앞선 형태의 건축은 사회적 소명을 담은 총체적인 사고에 근간을 둔다.
중동 지역에 위치한 자이드 국립 박물관(Zayed National Museum)이나 마스다르 시티 프로젝트는 해당 지역의 문화는 물론, 특정적인 기후 환경에 대한 다층적인 선행연구를 바탕으로 한다. 아부다비 지역의 극한 기후환경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에어컨이나 공조 시스템 없이 건물이 자체적으로 원활한 공기 순환을 유도하는 공기역학적 설계는 지속가능한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과제에 기반한 결과다.
공공을 위한 장소 만들기 Public + Placemaking
이 섹션은 도시계획을 전공한 노먼 포스터가 단일한 건축물이 아니라, 전체적인 도시 풍경 안에서 유기체적인 개념으로서의 건축을 보는 시각을 나타낸다.
사용자 경험을 앞세운 포스터 + 파트너스의 건축 철학은 단일 건축물에 그치지 않는다. 디자인의 사명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회, 경제, 환경 문제를 하나의 통합 과제로써 아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런던 스탠스테드 공항은 자연채광 유입을 통해 에너지 효율성 확보는 물론이고, ‘공항’에 대한 인식 자체를 탈바꿈시킨 대표적 사례이다. 런던 트라팔가 광장, 홍콩 서구룡 문화지구, 프랑스의 마르세유 구 항구 설계 등을 통해서는 열린 공간 안에서 서로가 어떻게 연결되고 관계를 확장해나갈 수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버려지거나 상실되었던 공간의 재생을 통해 새로운 공공장소를 조성하는 일은 많은 경우 단편적이거나 파편화되는 도시 구조에 일관성을 부여하고, 도시의 정체성을 강화한다. 이는 단일 건물의 디자인을 넘어 도시 삶의 전반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미래건축 Future
건축에 대한 노먼 포스터와 포스터 + 파트너스의 시점은 이미 현재가 아닌 미래에 닿아있다. 지구 밖 행성에서의 삶을 상상하면서 유럽우주국(ESA),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협업한 달 거주지 프로젝트(2012), 화성 거주지 프로젝트(2015)는 모두 지금으로부터 약 10년 전에 실행되었다. 재료 과학자, 시스템 분석가, 사회 인류학자, 수학자, 구조 및 환경 공학자, 건축가 등 다양한 팀으로 구성된 다학제적 연구와 삶의 가치를 위한 디자인 철학은 단순히 미래지향적이거나 기술예찬론으로 집중되는 것이 아닌, 사용자의 경험으로 향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인류가 삶을 영위하고 다양한 생명종이 공생하는 세계를 위한 새로운 방식에 대한 제안이다.
미술관 공용 공간에서 상영되는 1시간 18분 길이의 다큐멘터리 <노먼 포스터 – 건축의 무게>(2010)를 통해서는 노먼 포스터가 이야기하는 건축 프로젝트의 배경에 대해 들어볼 수 있다.
체험하는 건축
전시 기간 동안에는 다양한 대상을 아우르는 연계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전시실 내에서 진행되는 릴레이 형식의 프로그램 <SeMA-라톤: 프로젝트 50>, 건축 관련 전공 학생을 중심으로 한 워크숍 <미술관, (아직) 실현되지 않은>, 쉬운 글쓰기 워크숍 <건축용어 해설집 만들기>, 어린이·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 <날아라 거킨!>, 세계 환경의 날(6월 5일) 기념 이벤트 등이 순차적으로 열릴 예정이다.
노먼 포스터는 “서울에 처음 온 게 거의 30년 전인데, 지난해 방문했을 때 새삼스럽게 많은 것이 변했다고 느꼈고, 특히 서울이 품고 있는 문화생활이 인상 깊었다. 이런 도시, 그리고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나와 포스터 + 파트너스의 작업을 소개할 수 있어 영광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최은주 관장은 “노먼 포스터와 포스터 + 파트너스를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이번 전시를 통해 이들의 주요 프로젝트를 만나볼 수 있다. 올 한 해 서울시립미술관이 전시 의제 ‘건축’과 기관 의제 ‘연결’을 다각도로 해석하는 여러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어 있으니 많은 기대와 관심을 부탁드린다”라고 전했다.
전시는 예약 없이 관람할 수 있고 서울시립미술관 전시도슨팅 앱을 통해 음성으로 작품 해설을 들을 수 있다. 또한 전시 이해를 돕기 위한 정보와 자료를 순차적으로 미술관 공식 SNS를 통해 제공할 예정이다. 전시 관람 일정과 관련한 상세한 정보는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sema.seoul.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1935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태어난 노먼 포스터는 맨체스터 대학교에서 건축과 도시계획을 전공하고, 예일대학교 대학원에서 수학하면서부터 본격적인 건축가로서의 행보를 밟았다. 특히 예일대학교에서 만난 영국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 훗날 포스터의 배우자가 되는 웬디 치즈먼, 자매 조지 월튼과 함께 1962년부터 팀4(Team4)를 결성해 그룹으로 활동하면서 릴라이언스 컨트롤스(1967)와 같은 당시의 첨단 기술에 기반한 혁신적인 프로젝트들을 다수 선보였다. 약 4년간의 팀 활동을 뒤로 하고 노먼 포스터가 웬디 치즈먼과 설립한 포스터 연합(Foster Associates)이 바로 오늘날 2,000명이 넘는 국제적 규모의 건축 스튜디오로 성장한 포스터 + 파트너스의 전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