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 지난해 9월 ‘창의와 혁신’을 화두로 발족된 무용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임(이하 무미생)의 2024년 마지막 포럼이 지난 12월 31일 오후 1시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렸다. 무미생 제6차 정책포럼으로 마련된 이번 행사에서는 무용 비평담론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우선 ▲ 연극평론가인 김건표 대경대 교수(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전담심의위원)의 “담론으로서의 공연예술비평”에 이어 ▲ 무용평론가인 이근수 경희대 명예교수(서울문화투데이 고정필자)의 “무용저널과 비평담론_평론가가 말해주지 않는 평론의 진실” 등 두 편의 발제가 이어졌다. 창작과 비평의 조화와 상생을 통한 건강한 무용문화 조성 가능성을 진단해 보는 유익한 자리였다.
담론으로서의 공연예술비평
김건표 연극평론가는 한국연극과 공연예술계의 창작생태계를 현장에 토대한 예리한 통찰로 접근하여 관심을 모았다. 우선 오늘날 한국연극은 소재와 장르의 혼종시대라고 진단하면서 한국연극의 창작생태계 변화는 1990년대 이른바 연극르네상스시대 이후 2015년 블랙리스트와 미투 이후 뚜렷한 차이가 포착되는 등 지형변화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희곡을 중심으로 하는 연극의 미학성에서 직접적인 참여방식으로 전환된 점을 가장 큰 특징으로 꼽았다. 즉 노동, 여성, 젠더, 퀴어, 기후, 취업, 사회정치 현상에 대한 참여 활성화가 기민해졌고, 이에 따라 자연히 연극의 공연미학과 예술성을 중시하기보다는 동시대적 담론의 참여방식으로 변화하였다는 것이다. 동시대적 사회현상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창작자들이 증가하면서 소재와 장르의 혼종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진단이다.
결국 소재주의로 접근된 자극성은 연극이 도구화되는 정치현상에서 연극예술 역시 이른바 정치적 성향의 선동성이 강조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연극의 탈극장화가 시도된 것도 뚜렷한 특징 중 하나라고 짚어냈다.
이와 같은 흐름에서 연극평론의 역할 또한 변화의 노정에 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비평적 참여로서의 미학 및 예술성보다는 소재성, 그리고 문학성에 치중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라는 진단이다. 관객의존성보다는 창작자들의 직접적인 소통방식으로 연극의 패턴이 변화하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한편, 오늘날 한국연극은 ‘평론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근현대 한국연극평론 100년을 반추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우선 1910년대 등장한 신파극은 근대매체로서 신문의 등장과 지면의 기록화를 통해 한국연극비평이 성장하는 튼실한 배경을 가질 수 있었다. 1930년대 유치진의 극예술을 중심으로하는 이론적 성격의 비평이 대두되었고, 1950~60년대 여석기·한상철·이태주·김문환 등이 등장하여 한국 연극비평 제1세대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평흐름에 힘입어 연극은 희곡의 문학성에서 공연예술로서 비평대상으로 부상하게 되는 역사적 전거가 마련된 것이라는 해석을 곁들였다.
이후 한국연극비평은 1977년 최초의 평론가집단으로 간주되는 서울극비평가그룹이 탄생되기에 이르렀고, 이후 창간된 한국연극평론은 폐간과 복간을 거듭하면서 변화와 모색기를 갖게된다. 이 시기 한국연극평론은 저널리즘평론보다는 아카데미비평으로 선회하여 서서히 심화된 것 또한 하나의 특징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1976년 창간된 <한국연극>은 연극의 평론문화를 조성하는 데 역할이 컸다. 이후 1990년대 <공연과 이론>이 등장하면서 연극비평문화 형성에 가세하였고, 2000년대 이르러 인터넷 환경과 뉴미디어시대 웹진평론이 등장하는 등 다양화시대에 이르게 되면서 기존의 연극전문저널의 역할은 점차 쇠미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디에 원인이 있는가. 이에 대하여 김건표 평론가는 우선 공연예술 전문기자의 부재를 꼽았다. 연극담당 기자들의 인상비평은 존재하나 저널리즘 공연예술비평으로의 진입은 용이하지 않다는 것이다. 권위적인 비평에서 수평적 비평으로의 변화 그리고 텍스트비평의 한계도 극복해야 할 문제점으로 꼽았다. 이러한 문제들이 극복되어야 비로소 한국연극비평이 보다 건강한 토양에서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김건표 평론가는 공연예술과 연극비평의 다중성과 4차 산업혁명시대 눈앞에 펼쳐지는 세대교체를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정보플랫폼의 다변화시대에 걸맞게 전문블로거의 영향력이 점차 증대되고 있는 환경에 놓여져 있으며 이러한 시대환경에 따른 공연예술의 특징을 대중적 심미안으로 포착하여 분석해내는 것 지형변화에 따른 연극평론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무용저널과 비평담론_평론가가 말해주지 않는 평론의 진실
이근수 무용평론가는 현존하는 무용전문저널 3종을 분석하는 등 실제적으로 접근하여 이해를 도왔다. 1976년 창간된 월간 <춤>지를 비롯 1990년대 등장한 <몸>지와 <댄스포럼> 등 3개의 무용전문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는데 할애하였다. 그 결과 <춤>지의 경우 무용을 바탕으로 한 보수적인 종합문예지, <몸>지의 경우 평론의 품격을 중시하는 정통무용전문지, <댄스포럼>의 경우 상업주의 원칙에 충실한 신세대 무용잡지라고 정의내리고 있다.
한편, 좋은 무용평론가의 기준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이근수 평론가는 세 가지 덕목을 꼽고 있다. 첫째, 평론은 권력이 아니고 무용가에게 위로가 돼줘야 한다는 것이다. 작품의 미학적 가치를 발견하여 정직하게 기록함으로써 무용가에게 믿음과 신뢰를 줘야한다는 주장이다.
둘째, 무용평문은 공연을 보지 못한 독자들을 위한 일종의 안내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평론가는 무대에 오른 작품을 직접 보고 평을 써야하고, 글은 되도록 추상적이고 현학적인 표현을 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작품소개와 설명을 통해 기록적 가치를 높이는 한편, 일방적 비판 위주의 평문이 돼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이근수 평론가의 지론이다.
셋째, 평론은 글쓰기 자체가 목적이어야 한다며, 개인적인 이득이나 특정한 목적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평론을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더불어, 이근수 평론가는 자신의 평론철학을 피력하기도 했다. 평론은 작품에 대한 기록일뿐이지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평문이 인격모독이나 비난이 돼서는 절대 안된다는 점을 거듭 역설하고 있다.
아울러 자신은 미국 음악평론가 팀 페이지의 생각을 반추하며 평문을 쓴다고 고백한다. 팀 페이지는 매네스음대에서 피아노와 작곡을 전공하고 뉴욕타임즈을 거쳐 워싱턴포스트의 수석음악평론가로 활동한 미국의 저명한 음악평론가로 손꼽힌다.
이근수 평론가는 팀 페이지가 주장하는 음악평론가가 지켜야 할 10계명의 주요 대목을 내면화한다고 소개했다. 예컨대, 평론가가 되기 위한 자격시험은 없는 것, 글쓰기 및 해당 분야에 전문적 지식이 있다면 평론가가 되는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것이다. 훌륭한 평론가는 만능선수이어야 하고 글은 정확하게 그리고 가능하면 인간적으로 써야 한다. 말하자면, 무용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심미안 그리고 일정 수준이상의 글쓰는 솜씨 즉 필력이 있어야 유능한 평론가라고 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평론가가 지켜야 하는 원칙도 강조했다. 성공한 유명 아티스트는 신랄하게, 젊은 연주자는 부드럽게 대하고 그리고 신인 연주자를 발굴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평론가에게 있어 흑백논리는 금물이고, 모든 것을 상대적으로 봐야 한다고 역설한다. 결론적으로 훌륭한 평론은 편집자와 독자를 만족시키는 글이라면서, 결국 훌륭한 평론가와 사이비 평론가를 구분하는 것은 전적으로 독자들의 몫이라고 주장한다.
이근수 평론가는 팀 페이지의 주장에 빗대어 무용평론가로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무용이라는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로 간주하고, 물과 거름을 주기도 하지만 때론 잡초를 제거하고 가지를 쳐내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알아주면 좋겠다는 소망을 수줍은 듯 조심스럽게 밝히기도 했다.
공연예술 비평담론 활성화를 위한 정책방향
참석자들의 열띤 토론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양혜숙 연극평론가는, “오늘날은 바야흐로 명백한 ‘몸의 시대’라고 강조하면서, 무용의 창작을 통한 예술적 성취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견인차로서 무용비평의 활성화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통찰”하여 주목을 끌었다.
아울러 “1970~80년대 한국연극 제1세대 연극평론가들의 업적을 반추하면서 당시에는 연극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무대에 대한 경외심 그리고 대중의 관심과 호기심도 남달랐다”고 회고하면서, “그러한 분위기에서 한국연극의 씨앗이 움터 나와서 오늘의 한국연극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배경은 무용평론의 역사와도 연동된다는 의견이 피력되었다. 성기숙 무용평론가는 “무용계 역시 1970년대 월간 <춤>지 창간과 더불어 무용에 대한 기록적 가치에 대한 인식이 싹터 나왔고, <춤>지가 무용평론가의 발굴 및 성장 발판이 되면서 무용평단 조성이 가능해졌다”고 덧붙였다. “무용평론도 세대교체가 되면서 평론가의 숫자는 증가했으나 질적 수준의 측면에서는 회의적 측면도 없지 않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무용저널과 평론가와의 종속 내지 예속관계 그리고 평론가와 창작자 사이 보이지 않는 긴장과 대립 혹은 결탁관계 속에서 불건전한 무용풍토가 조성되고 있는데,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주례사 비평을 지양하고 메타비평의 활성화를 통한 건강한 비평문화 조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무용저널 및 무용비평 소비에 있어 미디어환경 변화에 따른 소위 맞춤형 정잭지원의 필요성도 언급되었다. 가령 종이잡지와 인터넷저널의 보급과 확산, 소비의 형태도 구체적으로 분석되어 그에 따른 실효성있는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이다. 아울러 평론가 지원에 대한 현실화문제도 대두되었다. 국가보조금을 지원받는 전문지의 경우, 해당 저널에 기고하는 평론가의 원고료 지급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공연비평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정책 대한 바램도 피력되었다. 포럼에 참석한 문화체육관광부 예술국의 신효심 사무관은 “2025년부터 문학과 시각예술 분야에 비평담론 지원예산이 확보되어 내년부터 지원이 가능해졌다면서, 향후 연극·무용·음악 등 공연예술 분야로 지원이 확대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하는 등 공연예술비평 활성화를 위한 구체적인 정책 구현의 방향을 언급하여 기대를 모았다.
특히 “2025년의 경우, 공연예술 비평에 대한 독자적인 지원은 없지만, 대신 공연예술 지역유통지원사업 등 개별 단위사업에 공연 창·제작과 더불어 비평담론 지원이 자체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책적 해법을 모색하겠다”는 계획을 설명하여 호응을 얻었다.
청년무용인의 냉철한 시각에서 바라본 예리한 지적도 주목을 끌었다. 이유담 청년무용인은 “공연예술분야의 평론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우선 오늘날의 소비패턴 변화에 따른 공연예술 환경을 평론계가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SNS를 비롯한 각종 플랫폼들이 활성화됨에 따라 자류로 권위자의 평론을 소비하던 과거와 달리 자유로운 접근성을 기반으로 개인의 다양한 감상과 수용이 존종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러한 변화들과 예술평론이 나란히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존의 평론이 가진 핵심적 가치를 유지하면서도 대중적으로 활발히 소비될 수 있는 구조를 형성하기 위한 적극적인 방안 모색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청년평론가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장려하는 등 제도의 확충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평론 역시 연륜있는 평론가의 성숙한 시각에 따른 노련미도 필요하지만 새로운 가치관과 관점을 갖고 시대의 변화를 주도하는 청년평론가의 확장된 관점이 어우러질 때 건강한 평론의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다”도 진단했다.
아울러 “현행 제도와 환경은 청년평론가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있지 못한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향후 국책사업을 비롯 다양한 제도와 정책 구현 시, 보다 폭넓고 촘촘한 기준을 바탕으로 다양한 세대의 평론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방안들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역설하여 관심을 모았다.
‘창의와 혁신’, 무미생 정책포럼 관심 증대
‘창의와 혁신’을 키워드로 한 무미생 연속 정책포럼은 2025년 을사년에도 계속 이어진다. 공정하고 책임있는 예술지원체계 구축을 통해 순수무용예술 활성화를 견인하고, 건강한 무용사회 풍토 조성 및 무용생태계 복원을 목표로 한다.
무미생은 지난해 9월 세대, 장르, 지역을 초월하여 자유입론적 관점에서 미래 무용발전을 위한 현장 무용인들의 자발적 참여로 생산적이고 실효성 있는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미래 무용발전을 위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정책 발굴 및 대안 모색에 중점을 두고 2월까지 정책포럼을 개최한다는 계획이다.
무미생 제7차 정책포럼은 “글로벌시대 예술한류 K-무용의 해외진출 전략”을 주제로 오는 10일 오후 1시, 예술가의 집 세미나2실에서 개최된다. ▲ 김성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전담심의위원의 “예술한류 K-무용의 해외진출 전략” ▲ 김용철 전 부산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의 “한국춤의 세계화를 위한 이론과 실제” 등이 발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