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프리뷰] 앤디 워홀, 알려지지 않은 내면은 어땠을까?
[현장프리뷰] 앤디 워홀, 알려지지 않은 내면은 어땠을까?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1.09.30 1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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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를 찾아서》展, 엔디워홀의 생애를 만나다
에스파스 루이비통 서울 4층, 내년 2월 6일까지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 벽 너머” 프로그램 일환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팝아트의 상징, 미국 대중문화를 재료로 작품을 펼쳐온 앤디 워홀 전시가 열린다. 압구정에 자리한 에스파스 루이비통 서울 4층에서 오는 10월 1일부터 내년 2월 6일까지 열리는 전시 《앤디를 찾아서》는 앤디 워홀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마릴린 먼로의 초상, 캠벨 수프 깡통 회화 시리즈 등으로 선명하고 강렬한 색채 작품으로 유명한 그의 ‘자화상’을 주제로 대중에게 조금 낯설 수 있는 그의 모습을 공개한다.

▲앤디워홀 폴라로이드 사진, 화장을 한 워홀의 모습이 담겨있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앤디워홀 폴라로이드 사진, 화장을 한 워홀의 모습이 담겨있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전시 《앤디를 찾아서》는 제목 그대로 워홀의 자화상으로 그의 외면과 그 안의 내면까지 접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워홀은 스스로에 대해 “앤디워홀에 대해 알고 싶다면 나와 내 페인팅, 영화에 드러나는 모습을 보면 된다. 그 이면엔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했다.

정말 그 이면엔 아무 것도 없는 것일까. 무엇이 있다고 믿는 관람객의 태도 또한, 길들여진 방식 중 한 부분일까. 앤디 워홀이 제작한 초기 자화상부터 그의 마지막 자화상까지 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동시대의 피그말리온으로 불린 그의 시간을 잠깐이나마 엿볼 수 있게 한다. 전시 공개 하루 전인 9월 30일 언론간담회를 통해 앤디를 찾아보는 시간을 경험했다.

이번 전시에 공개된 작품은 앤디워홀 자화상과 드래그퀸을 모델로 한 레이디스 앤 젠틀맨 작품 한 점, 그의 폴라로이드 사진들이다. 이 중 자화상 작품 ‘The Shadow’는 루이비통 재단의 ‘미술관 벽 너머’ 프로그램 순회전 중 서울에서 처음 공개하는 컬렉션 소장품이다. 공개된 작품 수는 자화상 총 6점과 그의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작품의 다채로움을 감상하기엔 아쉬운 지점이다. 다만, 집중할 수 있는 아늑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앤디 워홀의 자화상들은 좀 더 사적이고 내밀한 감상의 경험을 제공한다.

워홀은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을 촬영하고 이를 이용해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초상화 작업을 했다. 전시에서 공개된 작품 중 가장 초기작은 1967년 작품이다. 워홀의 초기 자화상 작업은 그의 초상을 있는 그대로 담기보다 대중이 원하는 예술인의 표상을 채워주는 연출된 초상을 담고 있다. 1967년 제작된 이 작품은 워홀의 눈동자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고, 그의 이목구비나 얼굴의 형태보다 그가 취하고 있는 제스처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앤디워홀 자화상, 1967, 워홀의 얼굴 반이 불분명 하고 손으로 턱을 괸 제스처가 돋보인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앤디워홀 자화상, 1967, 워홀의 얼굴 반이 불분명 하고 손으로 턱을 괸 제스처가 돋보인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고 턱을 괴고 있는 동작은 실제 워홀이 생각할 때 자주 취했던 제스처이면서, 대중이 예술인을 상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 워홀 자신의 예술가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듯하면서도, 세계가 원하는 상업 이미지도 함께 담아냈다는 점이 흥미롭다.

워홀은 반복되는 이미지 나열로 물질이 가지고 있는 근본 의미의 퇴색, 미국 상업문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함축적으로 드러냈다. 이런 방향은 초상화 작업에서도 잃지 않고 담아냈다. 그런데, 그의 초상화 작업이 10년 간 멈춰있던 때가 있다. 1968년 발레리 솔라니스에게 총격을 당하고 심각한 부상을 입은 이후였다. 두 달간의 병원 생활 이후 그는 목숨은 건졌지만, 평생 의료용 보호 복대를 착용하고 살아가야 했다. 이 사건으로 죽음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워홀은 자화상 작업을 멈췄다. 70년대에 초상화 작업의뢰가 폭주했을 때에도 그는 결심을 바꾸지 않았다.

▲총격사건 이후 1978년 앤디워홀 자화상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총격사건 이후 1978년 앤디워홀 자화상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이후 10년 뒤 1978년, 그는 자화상 작업을 다시 시작한다. 이번 전시에선 그 당시 작품도 볼 수 있다. 자신의 모습을 4개의 캔버스에 다른 색조로 담아낸 작품이다. 서로 다른 4개의 캔버스 중 각각 하나의 캔버스에도 자신의 모습을 3개의 이미지를 중첩시켜 나타냈다. 이는 워홀이 고개를 돌리는 모습 같으면서도 한 사람의 복합적인 자아를 상상해보게 한다.

서로 다른 4개의 캔버스는 흑과 백, 빛의 대비로 각각의 색채를 구현한다. 워홀은 빛을 강하게 비춰 콘트라스트가 부각되는 이미지를 자주 사용했는데, 그는 인물 얼굴에 빛이 강하게 쏘여져 이목구비가 불분명해지고, 피부의 주름이나 잡티가 보이지 않는 것을 인간 본연의 모습이라 봤다고 한다.

전시는 초상화 작업을 다시 시작한 워홀의 중반기 작품과 폴라로이드 사진을 함께 선보인다. 워홀은 ‘아름다움美’에 대한 갈망이 강한 인물로 실제 화장을 즐겨했다고 전해진다. 폴라로이드 사진에는 워홀 본연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지만, 드래그퀸처럼 스스로 아름답게 화장을 한 모습도 담겨있다. 그런데 워홀은 화장을 하고 남성 양복을 착용하고 있는 사진도 남겼는데, 이는 워홀이 여성성을 추구한 것이 아닌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방식을 보여주는 작업’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앤디 워홀 말년의 마지막 초상화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앤디 워홀 말년의 마지막 초상화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이번 전시에서 중요 이미지로 꼽히는 워홀의 마지막 초상화 작품은 전시장 가장 가운데에 전시됐다. 이 초상화에선 그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은색 가발을 착용한 모습을 보여준다. 큰 화면 속 삐쭉삐쭉 솟아 정리되지 않은 가발과 그의 묘한 무표정, 그리고 어두운 보라색의 조화는 보는 이에게 다층적인 감각을 전한다. 이 초상화는 그가 죽기 전 마지막 초상인데, 어느 한 곳을 응시하지 않고 있는 워홀의 눈동자는 삶과 죽음 경계 위에 올라선 자신의 상황을 은유하는 듯하다.

앤디를 찾아서》는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의 컬렉션 소장품을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도쿄, 뮌헨, 베네치아, 베이징, 오사카에 소개하는 ‘미술관 벽 너머(Hors-les-murs)’프로그램 일환으로 기획됐다. 미술관 소장품에 대한 국제적 접근성과 대중에게 다양한 작품 관람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워홀의 대규모 전시에선 얼핏 스쳐지나갈 수 있는 챕터를 따로 뽑아서 심도 있게 파고들어간다. 작가의 작품이 아닌, 작가 스스로의 모습을 통해 그의 창작관을 생각해볼 수 있는 전시다. 특히, 외면이 전부라고 얘기하는 앤디 워홀의 자화상 속에서 있을지도 모르는 그의 내면을 찾아보는 재미가 열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