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단과 호흡을 좇아…우란문화재단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
장단과 호흡을 좇아…우란문화재단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
  • 김연신 기자
  • 승인 2024.04.19 1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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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우란문화재단 우란1경
전통공예, 조각, 사운드, 회화, 설치, 미디어 등 70여 점

[서울문화투데이 김연신 기자] 성수동의 속도감을 전통음악의 ‘장단’에 빗대어 바라보고, 그 특징을 각자 호흡으로 풀어낸 작가 7명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가 열린다. 우란문화재단은 오는 6월 2일까지 올해 첫 프로젝트 전시인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를 개최한다.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 전시 전경 ©우란문화재단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 전시 전경 ©우란문화재단

올 한 해간 우란문화재단은 문화예술 본연의 가치를 존중하며 쌓아온 지난 궤적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총 8개의 프로젝트(‘우란공연’ 4개, ‘우란전시’ 4개)를 선보일 예정이다.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는 전시 프로젝트 중 첫 전시로, 김진곤, 뭎, 박지원, 서민우, 이동훈, 임선빈, 태싯그룹 7인(팀)이 참가한다.

전시는 ’수많은 브랜드가 만드는 빠른 트렌드의 속도를 절대 놓치지 않으리’라는 마음과 동시에 ‘나는 나의 속도대로 살어리랏다’라는 마음을 공존하게 만드는 성수동에서 ‘나에게 의미 있는 장단은 뭘까’를 고민해보도록 한다.

장단은 장구나 북과 같은 타악기로 주로 연주되며 악곡에서 기본적인 리듬을 형성하고, 장단 틀 속에서 선율 대부분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우리나라 전통음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양의 박자나 리듬 개념으로는 정확히 설명되지 않는데, 이는 장단이 일정한 리듬꼴로써 강약 주기, 고유한 빠르기를 내포하고, 분할 리듬인 서양 박자와 달리 부가 리듬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일상적인 삶 속에서 노동 또는 놀이의 일부로 연주되던 장단은 민속음악에서 강하게 드러나며 일상을 살아내는 사람의 삶 속에 스며들어 있었다. 

장단은 ‘유연한 시간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스윙과 그루브와 비슷한 지점이 있다. 기본형의 빠르기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즉흥적인 변주’가 가능하고, 연주자와 관객은 장단의 변주 속에서 호흡을 맞추며 하나 되는 몰아의 경지를 경험한다. 이처럼 변주와 상호작용을 통한 연결의 감각, 유연한 시간 경험을 재료 삼아 이번 전시는 관람객의 장단을, 나아가 함께 즐기는 상대방과 호흡을 맞추는 과정의 즐거움을 일깨우게 한다.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 전시장 입구 전경 ©우란문화재단
▲《때로는 둥글게 때로는 반듯하게》 전시장 입구 전경 ©우란문화재단

김진곤은 통나무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살아있는 악기로 제작하는 과정에 매료되어 고등학교 졸업 후 1992년부터 지난 30여 년간 전통 방식으로 수십만 대의 장구를 만들어왔다. 그는 연주자와의 소통을 주요 철학으로 삼아 개개인의 연주 습관을 고려한 맞춤형 악기를 제작할 뿐 아니라 옛 문헌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 장구를 복원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나가고 있다. 

안무가 조형준과 건축가 손민선으로 이루어진 뭎은 공간과 움직임의 관계를 탐색한다. 공간 용도에 미묘한 비틀림을 주며 평소와 다른 감각을 자극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특정 장소의 맥락에 신체 및 사물을 배치함으로써 발생하는 공간과 안무, 현상에 대해 실험하며 장르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는 그들의 작품을 통해 관객은 더욱 풍성한 시선을 갖고 일상을 경험할 수 있다.

박지원에게 점토(clay body)는 또 하나의 몸이자 통로이다. 작가의 몸(손)은 점토의 유연함에서 벗어나 작품이 고정된 존재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경유지 역할을 한다. 유연하면서도 구체적인 형상을 만들어내는 흙의 물성, 그 위를 덮는 유약의 예측불허함은 예기치 못한 삶 속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하는 작가의 작품 세계와 이어진다. 구부러지고 일그러지는 형태의 찰나를 포착하여 흙과 한 몸이 되었다가 분리되는 과정을 거친 작품에는 작가의 호흡이 깃들어 있다.

서민우는 소리를 재료로 조율되지 않은 음향과 조형 언어를 엮어 공간감을 구현하는 구체 조각(concrete sculpture)을 선보인다. 작가의 조형에서 소리는 장식이나 추상이 아닌 구체적 기호로 기능하며 소리의 전달 과정을 드러낸다. ‘비관습적 소리’ 또는 '소리의 질감'을 통해 특정 경험과 감각을 끌어내는 작품은 공간 속에서 새로운 음향적 사건을 일으키며 또 다른 소리 풍경을 그려낸다.

▲이동훈, 일곱 번째 감각, 2022 ©우란문화재단
▲이동훈, 일곱 번째 감각, 2022 ©우란문화재단

이동훈은 동적인 움직임과 정적인 순간을 첨예하게 관찰하며 긴밀히 연동된 조각과 회화로 작업을 전개한다. 디지털적 편집과 기술로 재맥락화된 조각과 회화는 지금 시점의 시각적 함의를 드러낸다. 전통적인 정물화에서 출발하여 생명력을 지닌 동식물의 형상, 그리고 역동적인 K팝 아이돌 등 다양한 움직임의 순간을 포착하며 미술사적 관찰의 대상과 동시대의 아이콘을 포괄하는 복합적인 작품 세계를 느슨하게 구축하여 상상의 여지를 남긴다.

임선빈은 60여 년간 북을 만들어왔다. 1959년 대구 황용옥 선생과 1975년 대구 김종문 선생에게 각각 북메우기를 입문하고 사사받았으며 1979년에 부산 김갑득 선생에게 북통 제작을 사사받았다. 이후 88올림픽 기념 대고*와 청와대 춘추관 대고 등 다수의 북 제작에 참여했으며 1998년 경기도 무형문화재를 거쳐 2022년 국가무형문화재 악기장 북메우기 보유자로 인정됐다. 현재는 경기도 시흥시에서 아들 임동국 전수조교와 함께 새벽부터 작업장에서 묵묵히 북통을 만들고, 북을 메운다.

작곡가 장재호와 일렉트로닉 뮤지션 가재발로 구성된 태싯그룹(Tacit Group)은 21세기 새로운 예술을 만든다는 비전 아래 2008년 결성된 오디오 비주얼아트 그룹이다. 일상 생활에서 얻은 영감을 디지털 기술과 결합하여 알고리즘에 기반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입력된 정보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그들의 작품에서 독창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엿볼 수 있다. 한글, 게임, 테트리스 등 일상적이고 친숙한 소재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그들은 알고리즘 아트, 퍼포먼스, 설치 등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은 실험적인 활동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14시, 16시에는 도슨트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전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우란문화재단 홈페이지(www.wooranfdn.org)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