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숙의 문화읽기]동양적 생사관의 ‘형해화(形骸化)’
[성기숙의 문화읽기]동양적 생사관의 ‘형해화(形骸化)’
  •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 승인 2024.05.09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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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무용단 정기공연, 김종덕 안무의 <사자의 서>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무용평론가

국립무용단이 오랜만에 신작을 내놓았다. 신작 공연 <死者의 書>(2024.4.24.~25 국립극장 해오름극장)는 김종덕 예술감독이 취임한 후 선보인 첫 안무작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작년 4월 취임한 김 예술감독은 이미 정해진 프로그램을 소화하는 직무에 머물렀고, 본격적인 자신의 안무작으로는 <사자의 서>가 첫 작품인 셈이다. 그런 만큼 주목도가 높았다. 삶과 죽음의 문제 혹은 인간의 존재론적 의미를 탐문한 보편적 주제로 승부수를 던졌다.

김종덕이 안무한 <사자의 서>는 대만의 현대미술가 차웨이 차이(Charwei Tsai)의 영상작품 <바르도(Bardo)>에서 영감을 얻어 창작되었다. 차웨이 차이의 <바르도>는 불교경전 『티벳 死者의 書』(정신세계사, 2023 참조)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경전의 내용을 암송하고 오브재로 타다 남은 재를 사용하는 등 죽음의 미학을 동양적 정서로 풀어내 관심을 끌었다. <바르도>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을 바탕으로 무용작품 <사자의 서>가 탄생된 것이다. 창작의 원천을 발견하고 실제 작품으로 완성하기까지 소위 ‘다단계’ 과정을 거친 셈이다. 

망자의 49일의 여정을 춤으로 형상화한 <사자의 서> 역시 불교경전 『티벳 사자의 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문헌은 1,200여년 전 인도의 고승 파드마삼바바가 히말라야 설산에서 티벳어로 번역한 기념비적 저작으로 알려진다. 심리학의 세계적 권위자 칼 구스타프 융은 『티벳 사자의 서』에 대하여, 서구의 철학과 종교가 따라갈 수 없는 가장 차원 높은 정신의 과학이라고 찬탄한 바 있다. 

주지하듯, 『티벳 사자의 서』는 생의 근본 진리를 설파하는 티벳 최고의 경전으로 손꼽힌다. 삶과 죽음, 환생 그리고 대자유를 키워드로 궁극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경전은 천년의 신비를 품고 있다. 원래 『바르도 퇴돌』이라는 제목으로 불렸다. 안무자 김종덕이 영감을 얻었다는 대만의 현대미술가 차웨이 차이의 영상작품 <바르도> 역시 제목이 암시하듯 여기서 착안된 것이다. 

잠시 어원을 톺아보자면, 바르도(Bardo)는 ‘둘(do)’ 혹은 ‘사이(bar)’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낮과 밤의 사이, 황혼녘의 중간 상태, 즉 이 세계와 저 세계 사이에 가로놓인 ‘틈새’를 의미한다. ‘바르도’는 결국 인간이 죽은 다음에 다시 환생하기까지 머무는 49일간의 상태를 말한다.    김종덕은 여기서 영감을 얻어 망자의 49일간의 여정을 무용작품으로 형상화했다. 불교경전 『티벳 사자의 서』에 의하면, 숫자 49는 7이라는 숫자의 7곱 배에 기초한다. 윤회계(현상계) 안에는 일곱 세계 또는 7등급의 마야(환영)가 있다. 우주의 행성에는 진화의 일곱 단계가 있으며, 이를 합하면 모두 49개(7x7)의 정거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망자의 49일간의 여정을 그린 <사자의 서>에서 7이라는 숫자는 방기된다. 안무자는 단지 망자의 영혼이 사후세계에 도달하기까지 49일간의 여정에 집중한다. 그렇다고 49라는 숫자에도 크게 집착한 것 같지는 않다. 그의 주관적 내적 충동은 오직 외피로서의 형식에 치중된 듯 싶다. 

작품 <사자의 서>는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의식의 바다’에서는 망자들의 위패를 든 살아있는 자들의 통곡이 다양한 몸짓으로 표현된다. 죽음의 강을 건너는 독무엔 부정과 분노, 타협, 우울 등 고통에 저당 잡힌 현실이 처연하게 때론 경건하게 묘사된다. 무용수가 토해내는 한숨, 무대 바닥을 찍는 이른바 ‘날 것’의 소리는 그 자체 음악적 효과음으로 유의미하다. 

망자의 회상으로 채워진 2장 ‘상념의 바다’에서는 소년의 천진성, 청년기의 사랑과 이별, 장년기의 결혼과 정서적 풍요 등 인생의 희노애락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여성 군무진의 일정한 리듬에 따른 전통 장례놀이 ‘회다지’를 연상케 하는 일체화된 몸짓은 의식성과 역동성을 자아낸다.      

3장 ‘고요의 바다’는 집착과 욕망을 내려놓은 망자의 마지막 모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마지막 여정인 만큼 고요 속 절제미가 돋보이고, 침묵의 강을 건너듯 여백의 공간에 전개된 망자의 부유하는 몸짓은 더없이 허허롭다. 

죽음의 서사를 형상화하기 위한 무대는 현대적 세련미가 돋보였다. 무대 바닥과 양쪽 벽면은 회색톤으로 채워졌다. 무용장면의 변화에 따라 벽면은 여러 조각으로 분해되거나 합쳐진다. 회색톤의 무대는 흰색 의상을 착용한 무용수들의 움직임에서 포착되는 명료성을 반감시켰다. 타악 위주의 초반부 음악은 사색과 관조를 위한 한 치의 여백조차 허락하지 않은 채 숨가쁘게 질주해 간다는 느낌이다. 반면 침잠된 분위기의 후반부 음악은 묵직함의 선율로 눌러주는 힘이 예사롭지 않다. 

고대 티벳 불교경전의 창조적 재해석을 통해 동양적 생사관을 구현하려는 <사자의 서>의 주제의식은 그 자체로 심오한 울림을 던져준다. 그러나 실제 무대 위에 형상화된 모습은 주제성의 구현과는 거리가 있다. 동양적 사유의 지평에서 접근할 때 안무자는 다분히 관념적이다. 가령, 죽음과 삶을 수직과 수평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데, 이는 삶과 죽음을 대비하기 위한 이분법적 해석의 소산으로 읽힌다. 동양적 생사관에서 삶과 죽음은 하나가 아니던가? 아울러 안무기법의 일환으로 투사된 상징과 은유, 서사와 서정을 통한 이미지 형상화도 그리 선명하게 와닿지 않는다.

김종덕은 <사자의 서>에서 안무방식의 다변화를 통해 컨템포러리 한국춤을 표방했으나 예술미학적 성과는 다소 회의적이다. 우선 국립무용단 고유의 예술적 정체성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치명적 한계를 드러낸다. 특히 움직임에서 그랬다. 국립무용단 고유의 움직임 어법을 방기한 소위 자유방임적 몸짓은 다분히 급진적 현대성을 내포한다. 여기서 국립무용단 고유의 움직임 어법이란, 전통 호흡에 토대한 ‘맺고 풀고 얼르는’ 한국적 심미성에 토대한 몸짓 체계를 말한다. 

결론적으로 <사자의 서>는 컨템포러리 지향의 한국춤으로 나름 정교한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작품에 투영된 주제는 온전히 착근하지 못한 채 주변을 배회하는 형국이다. 표현도구로서 무용수들의 신체 기량은 탄탄한 데 반하여 작품 주제와의 연계에서는 ‘공허한 메아리’ 혹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소거된다. 

냉정하게 보자면, 작품은 굳이 <사자의 서>라는 제목이 아니어도 좋을 정도다. 그 어떤 제목을 붙여도 무방할 정도로 주제와의 결합이 모호했다. 안무자의 차고 넘치는 의욕에도 불구하고 ‘형해화(形骸化)’된 공연미학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알다시피, 국립무용단은 한국적 무용극 내지 전통에 토대한 ‘미래의 고전’으로서의 창작지향을 화두로 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공공무용단체로 위상이 높다. 국립무용단의 예술적 정체성에 비춰볼 때 김종덕 안무의 <사자의 서>는 어떤가? 무엇보다 국립무용단 고유의 예술적 정체성에서 벗어나 있을 뿐만 아니라 공연미학적 완성도 역시 미흡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한국적 전통 혹은 우리 춤 고유의 미감이 실종된 작품에서 ‘미래의 고전’으로 안착할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따라서 <사자의 서>는 국립무용단의 예술적 퇴행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향후 국립무용단의 위상에 걸맞는 고유의 예술적 아이덴티티 구현에 충실한 작품창작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이른바 내셔널컴퍼니로서의 존재론적 책무를 새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