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전야, 그러나 이후에도 폭풍은 일지 않았다.
폭풍전야, 그러나 이후에도 폭풍은 일지 않았다.
  • 임고운 영화칼럼니스트
  • 승인 2010.04.1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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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살지 않을 것 같은  바닷가에 작은 등대처럼 서 있는  le luth(성경적의미를 갖고 있는 듯한)라는 카페, 물결치는 갈대밭의 바람소리, 그리고 죽음이라는 절망적 미래를 안고 있는 세 남녀...

필자가 프랑스에서 유학하는 동안 수없이 보았던 영화의 한장면 같은...le luth라는 불어이름을 쓴 것만으로도 감독의 프랑스적 취향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영상이 잔향처럼 남기에는 뭔가 부족한  영화 폭풍전야.

조창호 감독이 이미 영화  "피터팬의 공식"으로 프랑스 도빌 영화제를 비롯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도 호평을 받고 선댄스영화제에서는 전회매진을 기록할 만큼 많은 관심과 기대를 모으고 있는 감독이기에 그 실망감의 무게가 가볍지 만은 않다.

열아홉살이 겪는 성장통을 서정적인 아름다움으로 풀어냈던 영화 "피터팬의 공식"과는 달리 "폭풍전야"는 지나친 연출로 인해 배우들의  호흡이  가쁜  상태의 숙성되지 않은 대사가 그대로 노출됨으로써 아름다울 수 있는 명장면들을  그대로 놓치게 한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배신당한 수인(김남길)은 살인이라는 억울한 누명으로 감옥에 들어 가고  에이즈에 감염된  마술사상병(정윤민)을 만나게 된다. 수인은 에이즈에 감염되면 출옥할 수 있다는 확신으로  상병이 잠든 사이  몰래 수혈을 하지만 에이즈만으로는 감옥에서 나갈 수 없다는 상명의 얘기를 듣고 탈옥을 결심한다. 

수인이 상병에게 부탁받은  것은 자신으로 인해 에이즈 환자가 된 미아(황우쓸혜)의 안부를 묻는 것이다. 수인은  미아가 운영하는 카페의 주방장이 되어 그녀곁에 머물지만 주변에 맴돌 뿐  다가서지 않는다.

사랑의 상처로 인해 죽음을 앞두고 있는 그들에게 새로운 사랑은 두려움이자 고통이기에...

죽음을 결심하고 나서야 그들은 사랑을 나누며 소리내어 운다. 눈을 감으면 사라지는 상병의 마술이 죽음으로 완성되는 순간이다.

사랑과 배신,슬픔과 절망,  죽음과 고독을 마술의 세계로 은유하고자 했던 영화 "폭풍전야"가  매력적인 시나리오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좋은 배우라면 대사를 제대로 해야함은 물론 진정한 감정은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프레임안으로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배우의 화려한 외모가 아니라 그들의 눈빛과 그들이 연기하고 있는 캐릭터와의 일치감이다.

풍경에 너무 많은 할애를 한 탓인가 배우에 대해서 세심하게 신경을 썼더라면 대사를 줄여서라도 그들의 내면연기를 끌어 낼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이 크다.

프랑스에서는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삶을 묘사하는 것을 "클로드 소테타입의 영화"라고 부른다.
영화감독 클로드 소테만의 스타일이 하나의 장르로 정착된 것인데 그의 영화 속에 녹아있는 "자연스러운 진정성"은 늘 봐도 질리지 않는 감동으로 남는다.

한국영화를 보면서 가끔씩 느껴지는 거북함중의 하나는 감독이 하고 싶은말을 한치의 아낌도 없이
배우의 대사를 통해 모두 발산해 버린다는 것이다. 대사가 때로는 진부한 표현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프랑스 영화팬들의 우상인 영화계의 수다장이 우디알랜의 영화가 짜증이 나면서도 궁금해지는 것은 "재능 있는 사람들을 기용해서 그 사람들이 잘하는 일을 하게 놔둔다."는 그의 단순하고 경쾌한 철학 때문이다.

주제가 무거울수록 대사는 간결하고 자연스럽게 가야 한다.

배우가 소화하기 캐릭터라면 스스로 성찰하고 두려워하는 것을 떨쳐 낼 수 있도록  감독은 충분하고 깊이있는 배우와의 커뮤니케이션을 가져야 한다. 굳이 잦은 대사가 필요없다면 눈빛의 중요성을 설명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영상, 몽환적 스토리가 서툰 대사로 인해 더 펼칠 수 있는 판타지즘을 애매한 상태로 남긴 폭풍전야다.

영화 속에서 수없이 바위에 부딪치던 파도들... 알고 보면 그들도 끊임없이 그들만의  대사를 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