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숨쉬는 사각지대 ‘블라인드 사이드’
사랑이 숨쉬는 사각지대 ‘블라인드 사이드’
  • 임고운 / 영화칼럼니스트
  • 승인 2010.04.2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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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투데이=임고운 영화칼럼니스트]블라인드 사이드는 미식축구 전문용어로 '쿼터백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일컫는다.

알콜중독의 어머니와 누군지도 알수 없는 아버지의 슬픈 태생의 마이클은 거리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며, 세탁소 혹은 동네 체육관을 전전하며 하루하루 힘없이 살아가고 있다 .

어느  비오는 겨울밤 반팔티를 입고  걸어가는  거구의 흑인소년, 마이클을 온정의 눈길로 바라보고 차를 태워 준 리앤의 가족이 아니였다면 훗날 NFL 볼티모어 레이븐스팀에서 뛰게 될 미식축구스타 마이클 오어의 성공실화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마이클의 뛰어난 신체조건을 눈여겨 본 미식축구 코치의 추천으로 마이클은 백인들이 다니는 사립고등학교에서 선수훈련을 받게 되지만 학업성적 미달로 쫓겨 날 위기에 처한다. 리앤(산드라 블럭)은 가정교사를 두어 마이클을 가르치고 리앤의 아들인 SJ는 마이클에게 미식축구의 규칙들을 알려주기도 한다.

리앤의 남편(팀 맥그로)는 리앤만큼 적극적이지는 않지만 마이클을 양자로 들이는데 동의하고 SJ의 누나인 콜린스도 백인친구들의 눈살에 아랑곳하지 않고 도서관에 나란히 앉아 친구가 되어준다.

마이클은 가족의 헌신과 사랑으로 마침내 미식축구 명문대에 진학하게 되고 2009년 천만달러가 넘는 계약금을 받고 프로팀인 볼티모어 레미블스에 입단한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너무나 착한 가족의 이야기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소개되는 실제 리앤가족의 스냅사진을 통해 모든 의구심을 내려놓게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이클과 리앤 가족이 살았던 테네시주 멤피스는 미국에서도 인종차별과 흑백갈등이 유난히 심한 곳이다.

요즘도  그곳에서는 또 다른 마이클이 백인이웃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마이클들이 리앤과 같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백인 중류층 가족을 만나서 같이 살게 될 확률은 그야말로 0.0000000001퍼센트다.

미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삶으로서 실천한 리앤과 가족은 마이클을 응원하며 여전히 행복하게 살고 있다.

미국의 유명한 재즈 뮤지션인 찰리 파커는 자기를 따라다니는 백인여자들에게 습관적으로 침을 뱉었고, 마일즈 데이비즈는 백인 여자애인들을 수도 없이 바꾸어댔다. 이들에게는 뮤지션으로서의 명성뒤에 숨겨진 흑인태생이라는 슬픈 사각지대를 분노, 혹은 스캔들로 무장하고 싶은 또다른 욕구가 있었던 것이다.

먼 옛날 영국 청교도들의 미국이주와 함께 정착한 흑인노예들의 '악연의 운명'은 (아무리 역사가 바뀌었다하더라도) 미국최초의 흑인대통령 오바마가 나선다고 해서 '호연의 운명'으로 바뀔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미국 최악의 빈민가인 로버트 테일러 홈즈는 경찰력으로도 제어가 안되는 마약상과 코카인 중독자의 무법지대다. 백인이웃들의 편견과 무관심,그리고 지역주민을 위협하는 악질 경찰들의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로 생겨난 미국의 '블라인드 사인드'다.

사회학자이면서 빈민가의 삶을 체험하기 위해 10년을  로버트 테일러 홈즈에 살았던 수디르 벤타테시는 그가 저술한'괴짜 사회학'에서 이곳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악하거나 비상식인 것만은 아니며, 그들 나름의 방식대로 미래를 준비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다만 그들을 구제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장치가 없는 것이 범죄를 양산해 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대로라면, 빈민가 흑인들이 꿈을 꾸고 도덕적인 판단을 가지고 있지 않을 거라는 폄하의 시선이 계속되는 한  제2의 마이클 오어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 영화의 감독인 존리 행콕은 이전영화인 '루키'에서도 어깨부상을 입고 평범하게 살아가던 야구선수가 재기하는 성공실화를 다룸으로서 실제의 삶에서 비롯되는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실화'라는 코드를 통해 자연스럽게 관객들에게 전해주고 있다.그는 인위적인 감동의한계에 진력이 난 관객의 사각지대를  예리하게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그를 '바람직한 작품성향을 지닌 감독'으로 분류해도 좋을듯싶다.

그렇다면 나의 블라인드 사이드는? (야만적 편견? 줄지 않는 고정관념? 근거없는 선입견?) 일단 에스프레소를 한 잔 마시며 생각해 볼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