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명창 김청만 선생을 만나다
우리 시대의 명창 김청만 선생을 만나다
  • 이은영 국장 김창의 기자
  • 승인 2010.11.22 17:3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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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계 구도 안개 속, 정부 지원 안타까워.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국장,김창의 기자] 고수란 판소리에서 북장단을 짚어 주는 사람을 가리킨다.

▲ "대를 잇는 예술혼" 공연을 두 시간여 남겨두고 인터뷰에 응한 김청만 선생

판소리는 창자와 고수로 이루어지는 2인 무대이니만큼 창자 못지않게 고수의 역할이 중요하다. 고수는 창자의 노래에 맞는 다양한 장단을 짚어주어야 하며, 적당한 대목에서는 '얼씨구' '좋지' 등의 추임새도 넣어 창자의 흥을 돋우어 주면서 노래의 분위기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 이러한 관계로 '1고수 2명창', 즉 좋은 고수를 만나야 명창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김청만 선생은 중요무형문화재 후보이며 국립국악원의 지도위원으로, 유명 명창들의 고수로서 대한민국제일의 명인이라 할 수 있다. 지난 16일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열린 서울문화투데이문화대상 수상식에서 그는 우리 전통국악을 계승,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서울문화투데이 전통대상을 수상했다. 이틀 뒤 수상자로서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삼성동에 위치한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에서 만났다.이날 김 선생은 한국문화재보호재단에서 주최한 ‘대를 잇는 예술혼’ 공연에 음악감독을 맡아 리허설에 한창이었다. 

지난 해 안숙선 명창에 이어 이번에 저희 서울문화투데이 전통문화대상을 수상하셨는데 수상소감을 먼저 듣고 싶습니다.

이 길을 천직으로 삼고 걸어가고 있었을 뿐인데, 뜻하지도 않게 큰 상을 받아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는 사실 서울문화투데이를 잘 모르고 있었는데 제자들이나, 공연이 있어서 다닐 때 주변 분들이 그렇게 큰 상을 받은 걸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아, 서울문화투데이 전통문화대상이 큰 상이었구나 알았어요. 그런 큰 상을 받아서 정말 기쁘게 생각합니다.

▲ 지난 16일 서울문화투데이 전통문화대상을 수상한 김청만 선생

명실 공히 대한민국 제1의 고수라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늘 주목은 소리를 하는 명창 쪽이 받지 않습니까. 그런 부분에 있어 서운함이라고 할까, 고수로서 느끼는 서운함은 없으신지요.

사실 공연이 끝나면 조금은 허전함을 느낍니다. 크게 서운한건 아니지만, 늘 공연이 끝나면 주목받는 건 명창 선생님들이기 때문에 다소 쓸쓸함을 느끼죠. 그래도 우리 역할은 주자를 보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이 상한다거나 그런 건 없어요. 오히려 좋은 소리가 나오고 좋은 공연을 치르면 그것만큼 기쁜 것도 없죠.

이력을 살펴보면 굉장히 어릴 적부터 극단생활을 하신 걸로 나와 있는데요. 14살부터 장구를 시작하신건가요.
 
12살 때 시작해서 정식 직업으로는 14살 때부터 했죠. 시골에서 할 일이 없잖아요. 악극단을 따라다니기도 하고 그랬어요. 장구가 없어서 미제 우유깡통을 가지고 장구처럼 만들어서 치기도 했었죠. 고향집 근처에 <목포 국악원>이 있었는데 오가며 자연스레 듣게 된 소리들이 북과 장구소리입니다 일부러 배워야겠다고 마음을 정하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저절로 익혀진 소리들이지요.

그래서 농악대나 극단을 따라다니며 소리도 배우고 했는데 아버님이 반대를 하시더라고요. 아버님이 당시에 굉장히 세련된 분이셨어요. 그 시절에 바이올린도 하셨으니까요. 하모니카도 하시고. 일본에도 자주 다니시면서 신식문물에 익숙하셨던 분이셨죠. 그런데 아들이 국악을 하겠다고 하니 반대를 하셨죠. 지금이야 우리 국악이 인정받지만 당시는 우리 것을 천대하던 시기였으니까. 무던히 반대하셨어요. 그래도 끝까지 고집을 부렸죠. 제가 바이올린을 북 장구 치듯 그렇게 열심히 배웠다면 꽤나 좋아하셨을 텐데요.... 아무튼 14살 때부터 극단에 들어가서 지금으로 비유하면 프로생활을 시작한 거죠. 

▲ 선생은 14살 부터 극단에 들어가 장구를 시작했다.

한국의 장단 1.2를 출판하셨는데요.

한국의 장단은 처음 타악을 배우는 사람이 보고 배울 수 있게 쉽게 펴냈어요. 거기에 우리 전통 타악기 35가지를 망라해서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도 볼 수 있어요. 여러 가지 전통장단도 모아놨죠. 지금까지 2500부 정도 팔렸을 거에요.

김청만 선생의 저서  ‘한국의 장단’은 실기를 바탕으로 한 장단 안내서다. 선생의 말대로 국악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쉽게 배울수 있게 친절한 설명과 소개를 곁들였으며, 전문적인 우리 장단의 기본형과 변화형을 다양하게 제시해서 우리 고유의 장단을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소리북과 장구의 연주법과 판소리와 잡가, 대풍류와 경기무속 등을 정간보와 서양의 오선보 그리고 구음까지 곁들여 정교하게 채보, 정리했다. 현재 2500부 이상 판매되어 우리 전통 타악의 길잡이가 되고 있다.

우리 장단이 참 다양합니다. 특히 좋아하시는 장단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엇모리장단을 좋아합니다. 3박과 2박이 혼합된 3·2·3·2의 10박 장단이에요. 모든 장단이 저마다 특징이 있고 좋고 싫은 장단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꼭 뽑으라면 엇모리장단을 들 수 있죠. 엇모리장단은 위엄 있고 흥겹습니다.

▲ 공연에 앞서 리허설 중인 김청만 선생.


김청만을 이어 국악을 이끌어 갈 인재를 딱히 찾을 수 없는 게 사실인데, 후계자라 할 만한 사람이 있는지요.

사실 나도 그런 걱정이 있어요. 요즘 친구들은 전공을 정해서 한 가지만 집중하지, 타악 전반에 대한 이해도는 다소 부족한 것 같아요. 콩나물 대가리에만 연연해가지고 되는 게 아닌데, 체득에서 나와야 되는데 서양음악처럼 악보를 보고 친다고 생각해요. 예전처럼 전체적으로 큰 숲을 보지 못하는 것 같아요. 북도 장구도 꽹과리도 우리 악기 전부를 다뤄야 국악에 ‘통’하게 된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아쉽습니다.

고수로서 가장 기억에 남거나 보람을 느꼈던 적은 언제일까요?

아주 오래전 일이네요. 70년대인가 80년대인가 일거에요. 2003년 타계하신 인간문화재 박동진 선생님 고수를 했던 적이 있는데 정신없이 선생님 소리에 맞춰서 북을 쳤어요. 선생님이 소리를 마치시고는 저를 보시고 “그놈 참 북 하나 잘 치네!” “그래 북은 그렇게 치는 거야” 하고 웃으셨던 적이 있어요. 그때 정말 기쁘고 보람을 느꼈죠. 박동진 선생님께 참 많은 걸 배웠어요.

 

▲ 정부차원의 지원이 우리국악에 필요함을 역설.

올해 계획은 어떻게 되시죠? 12월에 예정 된 공연이 마지막인가요?

올해는 이게 마지막이에요. 12월 공연은 예산을 못 받아서 못하게 됐어요. 

많은 공연을 통해 얻은 아이디어나 기획이 있으실 텐데, 예산이 뒷받침 된다면, 어떤 공연을 하실 계획인지요.

새울전통타악진흥회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악기를 전승해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리고 책자에 나와 있는 것만도 장단이 100개가 넘습니다. 전통 악기를 전부 활용해서 공연을 해보고 싶은데 예산이 부족해서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재미있어서 많이 찾고, 국악 하는 사람들도 신이 나서 하는 그런 공연을 해보고 싶어요.

김청만 선생은 우리 전통이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정부차원에서의 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사실 기업의 후원과 정부지원도 우리국악분야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으로 국악계는 총체적 난국에 빠져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예산이 없어 국악인이 공연을 취소해야 하는 상황에서 최근 기사화 된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임원들의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드러내는 현실을 보며. 이 웃지 못 할 모순적 상황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 국민들이 우리 국악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는 김청만 선생.

서울문화투데이 독자와 국악을 사랑하는 분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죠.

저는 제게 맡겨진 이 길을 계속 걸어 갈 겁니다. 공연 하나하나 즐겁게 임할 거고요. 그리고 세계에 우리국악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걱정스러운 게 요새 사람들은 우리 국악에 흥미를 못 가지는 것 같아요 관심도 없고요. 공연장에 와서 한번 보고 듣고 느끼면 그렇지 않은데 그 한번을 하기가 어려워요. 그러기 위해서 홍보도 해야 하고 공연도 찾아가면서 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아쉬워요.
국민들이 우리국악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공연도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또 서울문화투데이가 그 부분의 역할을 수행 할 수 있게,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으로 뻗어나가고 또 세계에 우리 것을 전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발전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은영 국장.

정리 김창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