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의 미술시장 이야기]미술시장 재편되어야 한다.
[박정수의 미술시장 이야기]미술시장 재편되어야 한다.
  • 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 승인 2016.07.14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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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미술시장이 난리가 아니다. 미술시장이라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 관심조차 없는 이도 있겠지만 작품이 판매되어야 활동할 수 있는 이들에게는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말이 좋아 시장이지 여기는 중심도 없고 상도도 없다.

미술품을 매매하여야 하는 시장에 아트페어 부스가 매매되고, 매매를 위한 화랑들이 모여야 할 사업자에 작가들이 직접 운영하겠다고 나선다. “갑질” “을질”의 문제가 아니라 오죽 답답했으면 직접 운영하겠다고 나섰겠는가.

2015년 이맘때 쯤 지인들과의 미술시장 담소에서 "2016년 한해가 가기 전에 100억 쳐야한다."고 말한 적 있다. 거기에 환기가 1번이고 경자가 두 번째 가능성이라고 했다. 얼마전 환기 작품이 54억 쳤다. 조짐의 시작이다.

경제규모가 세계 20위권 훨씬 안쪽에 있는데 최고 비싼 작품이 100억도 안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궁색한 이유 때문이기도 하였다. 세계 미술시장에 1천억이 넘는 작품 수두룩한데 우리나라 미술품이 100억도 안 된다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2015년 하반기부터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던 단색화가 힘을 잃어간다. 누군가의 작전이건 당연히 그렇게 되건 상관없이 미술품 거래에 대한 새로운 대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가다가 주춤거리는 단색화 대신에 미술시장의 주축을 7, 80년대 왕성한 활동을 했던 민중미술 1세대 작품과 한국형 구상미술이 시장의 축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또한 미술시장을 감당할 특별한 대안이 이것밖에 없을 것이라는 변명 아닌 변명에 힘이 실린다.

미술시장은 언제나 현금이 유통되어야 한다. 수백억이 넘는 작품이 유통되어야 30만원 70만원 100만원 시장이 살아난다. 젊은 예술인이라서 값싼 것이 아니라 인지도와 가치에 의해 결정되는 자본주의 시장을 인정하고 이해하여야 한다. 팔기위한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는 예술가적 자기 변론보다는 팔리지 않는 자신의 작품을 돌아볼 때가 되었다.

화랑에서 영업이 되지 않는다고 경기 탓만 할 것이 아니라 손님을 유입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여야 하고, 아트페어에서 손님도 없고 판매가 안 된다고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주최측에서 욕심을 조금만 버리면 더 나은 시장이 만들어짐을 기억해 두자.

미술시장 구조의 변화도 시작되어야 한다. 작가와 화랑, 화랑과 아트페어 주최측 사이의 연결고리가 한계에 왔다. 시장구조 변화가 시급하다. 화랑에서 영업이 힘들어지고 아트페어에 쏠림이 시작되자 온갖 아트페어가 전국을 산재한다.

작가주머니에서 아트페어 운영비가 충당되기에는 참가 횟수가 너무 많다. 전국에 산재한 아트페어 주머니가 분산되고, 작가들 지인판매 또한 극에 달했다. 더 이상 대안이 없다. 작가와 화랑과 아트페어 주최측과 구매자와 관람자와 사회의 분산 혹은 공동 책임에 대한 해법이 있어야한다.

아트페어 주최측에서 욕심을 덜 부려야 한다. 화랑이 참가하여 화랑이 비용을 낸다고 믿기 때문에(그렇다고 우기는) 참여 작가에 대한 일정 정도의 책임조차 질 필요를 안(?)느낀다. 아트페어(부스판매)의 최종소비자는 화랑이 아니라 작가임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스스로 한계점에 왔다고 믿는다면 최소한의 비용을 보존해주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작품매매에 대한 책임은 화랑과 구매자 사이의 일이라고 치부해도 어떤 방식으로든 일정 책임을 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판매된 입장권 금액의 일부를 참여 작가 혹은 화랑에 돌려주는 방식을 도입하자.

입장객의 많은 수가 작가 지인이거나 화랑지인이다. 구입한 입장권을 작가나 화랑에게 돌려주고 이를 주최측에서 현금으로 돌려주어야 한다. 현금을 제공한 이에게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

작가나 화랑에서의 입장셔틀이 사라지고, 시민의 문화 활동에 돈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인지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