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100년 전 경성 모던걸, 다시 정동으로…국립정동극장 예술단 <모던정동>
[현장스케치] 100년 전 경성 모던걸, 다시 정동으로…국립정동극장 예술단 <모던정동>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4.05.02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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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의 지역성 바탕으로 선보이는 모던 연희극
신민요·근대 유행가, 한국 창작춤·찰스턴 스윙 등 다양한 볼거리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 1920년 식민지 경성에는 모던 바람이 불었다. 당시 모던 걸은 머리가 짧은 외양을 의미하는 ‘모단(毛斷) 걸’이나 부정적인 인성을 강조한 ‘못된 걸’로도 표기했다. 현대적인 여성을 의미하는 ‘모던 걸(modern girl)’에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가 모두 포함된 셈이다. 

국립정동극장(대표이사 정성숙)은 100년 전 서울에 불었던 모던 바람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정동 거리를 무대 위에서 재현한다. 국립정동극장 예술단 정기공연 <모던정동>이 오는 4일까지 관객들과 만난다.

▲국립정동극장 예술단 정기공연 <모던정동> 공연 사진
▲국립정동극장 예술단 정기공연 <모던정동> 공연 사진

<모던정동>은 2024년을 살아가는 현대의 인물 ‘유영’이 100년 전 정동으로 타임슬립해 당대의 모던걸 ‘화선’과 ‘연실’을 만나는 이야기를 담은 연희극이다. 한국 최초의 근대식 극장 원각사의 복원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 국립정동극장과 근대 역사문화의 출발지인 ‘정동’ 지역의 특성을 살려 개발됐다.

지난달 30일 국립정동극장은 개막을 앞두고 일부 장면 시연과 간담회가 포함된 프레스콜 자리를 마련했다. No.0 프롤로그부터 No.7 봄맞이 처녀총각까지 공연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장면들을 약 70분 가량 선보였다. 

<모던정동>은 객원 배우 윤제원과 소리꾼 김유리가 해설자 격인 소리풍경으로 출연해 서사를 이끌고, 나머지 출연진은 대사 없이 70분 내내 움직임과 표정으로 감정을 전달한다. 작품 안에는 한국 창작 춤부터 찰스턴 스윙, 신민요춤, 레뷰 댄스까지 다채로운 장르의 춤이 녹아있다. 더불어 ‘사의 찬미’, ‘봄맞이’ 등 우리에게 익숙한 근대 가요도 함께 들어볼 수 있다.

▲국립정동극장 예술단 정기공연 <모던정동> 프레스콜, 창작진 단체 사진
▲국립정동극장 예술단 정기공연 <모던정동> 프레스콜, 창작진 단체 사진
(왼쪽부터) 임영호 연희감독, 신창열 음악감독, 정보경 안무가, 정성숙 예술감독, 안경모 연출가, 김가람 작가, 박진완 총괄프로듀서

이날 프레스콜에 참석한 정성숙 예술감독은 “여러분들이 이곳에 걸어오며 보고 느낀 정동은 근대문화의 출발지이며, 정동극장은 원각사 복원이라는 이념을 갖고 설립됐다”라며 “‘연희’라 하면 타악이나 풍물, 농악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으나 과거에는 공연예술 전반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모던정동>을 통해 연희의 개념을 확장하고 악가무(樂歌舞)를 활용한 전통을 선보이고자 했다”라고 공연의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이번 작품을 위해 안경모 연출과 김가람 작가가 의기투합했다. 정보경이 안무를, 신창열이 음악감독과 작곡을, 연희감독은 임영호가 맡았다. 

안경모 연출은 “이번 작품은 저를 비롯한 우리 창작진들 모두 처음 걸어본 길이었다. 드라마 구조는 있지만, 그 구조를 따라가기보다 구조 속에 담겨있는 인물들의 정서와 감정에 훨씬 집중했다. 일종의 탄츠테아터(TanzTheater) 같은 방식의 호흡들이 이뤄졌던 것 같다”라며 “경성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의 꿈과 갈망이 현실주의자로 살아가는 현대의 우리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라고 밝혔다.

안무를 맡은 정보경은 “100년 전과 지금, 그리고 100년 후에도 살아 숨 쉬는 에너지를 떠올렸다. 이를 통해 다채로운 안무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정서적인 연결점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타임슬립 서사 형식을 활용해 현재 배경은 비교적 평이하게, 100년 전은 밝고 명료하게 연출해 지루하지 않도록 구성했다”라고 작업 소감을 전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연희자들은 전통 연희를 할 수 없는 시기였다. 이와 더불어 신문물인 서양 악기들을 연주하게 됐는데 이에 대한 고뇌와 열망은 작품 안에서도 만날 수 있다. 임영호 연희감독은 “전통과 서양 문물 사이의 괴리감은 연기자들과 연습 과정에서 잘 풀어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음악적 어법 또한 음악 감독님이 잘 정리를 해주신 덕분에 서양 음악을 연희스럽게 연주하며 우리의 호흡을 찾을 수 있었다”라며 “뒤로 가면 전통 악기에 대한 갈망과 해방으로 전통 악기를 다시 연주하게 되는 장면도 있다. 이 과정에서 연희를 어떤 방식으로 도출시킬까 고민하고 정서적으로 접근한 부분도 있다”라고 말했다.

▲국립정동극장 예술단 정기공연 <모던정동> 공연 사진

이날 현장에서는 경성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역사적 상황에 비해 지나치게 낭만적으로만 그려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도 나왔다. 이에 대해 정성숙 예술감독은 “전막을 다 보여드리지 못했기에 나올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모던걸, 모던보이라는 표현이 희망과 신문물에 대한 새로움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비난과 오욕의 의미가 담겨있었다. 또한, 이 모든 것들은 일제강점기라는 억압적 환경 속에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라며 “이러한 역사적 상황과 이를 극복하는 당대의 모습을 전부 설명적으로 드러내기보단 하나의 이미지로 만들어, 낭만과 좌절이 응축된 이미지로 표현하고자 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한국 최초의 근대식 극장 원각사의 복원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 국립정동극장과 근대 역사문화의 출발지인 정동 지역의 특성을 살린 작품임에도 4일이라는 공연 기간이 너무 짧다는 의견도 있었다. 정 감독은 “작품이 담는 의미에 비해 공연 기간이 짧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앞으로 지방 공연 등을 통해 작품을 더욱 발전시켜 더 많은 관객들에게 선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