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작가 15인, 조각, 설치, 영상, 사진 등 작품 60여 점
루시 맥레이, 미카 로텐버그, 잭슨홍, 드리프트, 우주+림희영, 포르마판타스마 등
[서울문화투데이 김연신 기자]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탈피해 비인간 존재들, 혹은 ‘사물’의 시선에 주목하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김성희)은 《사물은 어떤 꿈을 꾸는가》전을 오늘(17일)부터 오는 9월 1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개최한다. 국내외 작가 및 디자이너 15명(팀)의 설치, 조각, 영상, 사진 작품 총 60점을 선보인다. 오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이번 전시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전시 제목 ‘사물은 어떤 꿈을 꾸는가’는 사물을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주체이자 현실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존재로 가정해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이번 전시는 ‘비인간 존재들을 인간과 동일한 주체로 만들어보자’라는 발상에서 착안했다. 다양성, 포용성, 지속가능성과 같은 가치에 주목해, 비인간 중에서도 특히 사물을 인간의 도구가 아닌 함께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존재로 바라보고, ‘사물’과 ‘인간’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하고 개념을 확장시켜보고자 한다.
사물의 세계
전시는 ‘사물의 세계’, ‘보이지 않는 관계’, ‘어떤 미래’ 3개의 섹션으로 구성돼 있다. 첫 번째 섹션, ‘사물의 세계’에서는 사물을 물건 또는 상품으로 동일시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해줄 작품들을 소개한다. 네덜란드 디자인스튜디오 드리프트(DRIFT)의 프로젝트 <머티리얼리즘>(2018~)과 이장섭의 프로젝트 <보텍스>(2023~)는 사물이 자연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사물을 해체하거나 만들어 나가는 과정으로 보여준다. 드리프트의 <노키아 3210>를 통한 휴대폰 해체 작업은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부품 재료들 역시 대부분 자연에서 왔음을 상기시키며 자연을 착취하는 인간과 사물의 관계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제시한다. <보텍스>는 해조류 분말 가루로 만든 바이오플라스틱으로, 치자나무, 파슬리, 숯 등 자연에서 온 재료들을 통해 어떤 색감과 패턴이 나타나는지를 드러내는 작업이다.
우주+림희영의 <Song From Plastic>(2022/2024)은 쓰레기를 디스크로 만들어 소리로 재생시키고, 김도영의 <80g> 연작은 건축 자재를 사진으로 인화해 본래 재질, 무게, 부피감 등을 잃은 이미지로 사물을 재해석한다. 신기운의 <진실에 접근하기>(2006) 시리즈는 사람들이 욕망하는 물건이 그라인더에 갈리는 영상으로 물건 표면의 상징이나 기호가 지워지면 물건은 물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꼬집는다.
보이지 않는 관계
두 번째 섹션은 얽히고설킨 사물과 인간의 관계를 자연, 기술, 경제, 과학의 영역에서 탐구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인간 중심 세상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사물이 인간의 삶에 얼마나 관여하고 있는지, 사물은 인간을 어떻게 인지하는지 짚어본다.
이탈리아 디자인 듀오 포르마판타스마(Formafantasma)의 <캄비오>(2020)는 나무가 자연에서 인간 세계로 넘어온 역사를, 아르헨티나 출신의 미디어 작가 미카 로텐버그(Mika Rottenberg)의 <코스믹 제너레이터>(2017)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인간 또한 사물처럼 옮겨 다닐 수밖에 없는 상품임을 사변적인 필름으로 전달한다. 필름은 ‘멕시코인들은 한때 거실 바닥에 구멍을 뚫어 미국으로 쇼핑을 다녔다’라는 이야기가 오갔던 국경에 위치한 두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박고은의 <감각 축적>(2024)과 박소라의 <시티펜스>(2022)는 디지털 기술 환경 안에서 사물과 인간의 역할이 뒤바뀌는 상황을 설정하고 이를 통해 사물의 영향력을 제고한다. <감각 축적>은 ‘센서가 되어보는 것’을 제안함으로써, 인간이 센서 안에 감지되기 위해 노력하는 역관계에 주목한다.
어떤 미래
세 번째 섹션에서는 이제껏 물건(object)으로 간주했던 사물의 개념을 가능성을 지닌 어떤 것(thing)으로 확장한다. 전시 공간에 가벽을 거의 사용하지 않은 것이 특징인데, 이는 다양한 미래가 어떻게 공존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호주 출신 디자이너 루시 맥레이(Lucy Mcrae)는 사물과 인간의 경계가 무너진 미래 사회 트랜스 휴먼을 상상한 설치와 영상 작품으로, 영국 디자인 듀오 수퍼플럭스(Superflux)는 대안적인 기술이 장착된 기계 장치가 등장하는 사변 필름 <교차점>(2021)을 통해 과거와 미래가 뒤섞인 낯선 시공간을 만든다. 잭슨홍의 신작 <러다이트 운동회>(2024)는 관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대형 볼 게임이다.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시대를 교차시킨 게임장에서 사물과 인간이 함께 매번 새로운 장면을 연출한다. 여러 경기의 룰을 섞어둔 듯한 게임장에서 인간은 어떤 룰을 따를지, 혹은 어떠한 룰을 만들어낼지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생명체를 사물로 간주하는 작가들의 작품도 소개된다. 김을지로는 태양열 전지판과 식물을 연결한 3D 영상 <기계 태양의 정원>(2024)을 선보이고, 김한솔은 옷과 어패류가 뒤섞인‘물명체’(물체+생명체)를 창안하며 인간에게서 자유로워진 옷을 <의태화된 의패류>(2024)라 칭한다.
전시장 출구와 연결된 공용공간에서는 이번 전시의 이해를 돕기 위한 신작 제작 작가의 인터뷰, 전시 주제와 맞닿아 있는 철학 및 문학 분야의 서적, 해외 작가 도록 등이 전시된다. 전시 도록에는 이동신(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앤서니 던과 피오나 라비(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 교수), 정승연(캘리포니아대학교 어바인 캠퍼스 미술사학과 조교수), 이정은(시각문화연구자)이 사변적인 미술과 디자인, 사회철학과 디자인 담론 등에 관한 비평, 에세이, 대담, 리서치 결과물을 기고할 예정이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팬데믹 이후 미술관이 지향해야 할 태도와 방향성을 반영하여 이제껏 주목하지 않았던 사물이라는 존재를 조명하는데 의의가 있다”라며, “사회철학 및 디자인 담론을 미술과 교차하는 다학제적인 접근을 통해 예술의 외연을 넓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