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연구회’와 ‘아악일무보존회’ 창립으로 궁중무용 전승에 앞장
“무형문화재 바라지 않아, 단지 전승교육사를 3명 정도로 늘여주길”
올해 ‘팔풍의 몸짓, 일무’ 10주년 공연…64명의 전장 공연 예정
“대한제국 시기의 복식 재현해 펼치는 새로운 공연 목표”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발행인ㆍ진보연 기자] 조선시대 궁중의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궁중무용, 특히 정재와 일무는 왕조의 권위와 예술적 정수를 보여주는 전통유산이다. 종묘대제와 같은 국가적 제례에서 선보였던 종묘제례일무는 최대 64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무용으로, 정교한 음악과 동작이 어우러져 완벽한 예술적 조화를 이룬다. 그러나 전승자 부족과 대중적 접근의 어려움으로 인해 이 소중한 문화유산은 한때 사장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를 지키고 전승하기 위해 정재연구회와 아악일무보존회를 이끌어 온 인물이 바로 김영숙 대표다.

김 대표는 스승인 심소 김천흥 선생의 권유로 종묘제례일무 전승에 나섰다.이후 1988년 종묘제례일무 전장을 처음으로 외워 발표하며 전승교육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소명이 됐다. 1996년에는 정재와 일무 연구 및 보존ㆍ전승을 위해 정재연구회와 아악일무보존회를 창립, 현재까지 국내외 공연과 교육을 통해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궁중무용은 대규모 인원이 필요하고, 이론적 배경과 동작을 모두 익혀야 하기 때문에 전승과 보존이 쉽지 않다. 김 대표는 종묘제례일무의 전장을 암기하고 발표할 수 있는 전승자를 양성하기 위해 매년 ‘팔풍의 몸짓, 일무’ 공연을 이어오고 있다. 올해 10주년을 맞는 이 공연에서는 64명의 무용수가 전장을 선보일 예정이다. 김 대표는 “생전에 실현 가능할 거라 기대하지 않았던 꿈이 이루어졌다”라며 이번 공연의 의미를 강조했다.
그는 전통을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한제국 시기 복식을 반영한 새로운 의상 제작을 목표로 삼아 시대의 변화에 맞춘 전통 재현을 준비 중이다. 또한, 종묘대제, 선농제, 사직대제 등 연례 행사에 참여하며 전통을 알리는 활동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국내 활동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궁중무용을 알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지난 2009년부터 2014년까지 그는 중국 항주사범대학의 석좌교수로 초청되어 한국의 문묘제례일무와 당악정재를 강의했으며, 오양선ㆍ수연장ㆍ포구락과 같은 당악정재를 무보로 정리해 출판을 준비 중이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김영숙 대표는 본지 <서울문화투데이> 제16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무용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김 대표는 이 상이 혼자 받은 것이 아니라 “전승자들이 함께 노력해온 결과”라며 앞으로도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전통을 이어갈 것임을 다짐했다. 오랜 시간 묵묵히 전통을 지키고 후대에 전하고 있는 그의 헌신은 오늘날 전통 궁중무용의 미래를 밝히고 있다.
지난 1월, 본지 서울문화투데이 창간 16주년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무용 부문 문화대상을 수상했다. 공연 일정으로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는데, 당시 전하지 못한 수상소감을 전한다면.
많이 알려지지 않은 무용을 하고 있는 나에게 상을 주신 것부터 너무 감사하게 생각한다. 활발하게 공연 활동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저 조용히 50년 동안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며 살아왔는데, 이를 알아주시고 보듬어주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쉽게도 해외 일정과 겹쳐 보존회 상임이사가 대신 시상식에 참석했는데, 그 상을 이달 1일 시무식에서 전달받았다. 개인적으로 전달할 수도 있었을 텐데 이수자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려는 상임이사의 배려가 더해져 더욱 의미가 있었다. 대리 수상소감을 통해서도 밝혔지만 “이 상은 나 혼자 받는 것이 아니라, (전승자) 여러분들이 그동안 함께 참여해줬기 때문에 가능했던 수상이다. 그저 내가 대표이기 때문에 여러분을 대표하여 받았을 뿐이다. 우리의 춤은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고 가치 있다.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앞으로도 잘 해내자”라는 소감을 다시 한 번 그날 자리에서 전하기도 했다.
수상 이후 근황이 궁금하다.
시상식에 꼭 참석하고 싶었지만, 이미 잡혀있던 중국 출장 일정이 있었다. 지난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중국 항주사범대학 음악학원 석좌교수로서 문묘제례일무와 당악정재 강의를 했다. 중국은 (당악정재에 대한) 기록은 있지만 춤은 전해지지 않으니 이에 대해 지도하고, 한국의 궁중무와 일무를 함께 전했다.
당시 알게된 교수가 교재로 쓸 수 있게 무보(舞譜)를 내줄 수 있냐는 요청을 해왔고, 5가지 당악정재 중 ‘오양선, 수연장, 포구락’ 세 가지를 작업하게 됐다. 집필과 편집은 모두 마친 상태고 이번에 중국을 방문한 건 출판사와의 계약 때문이었다. 중국어로 번역하고, 동작이 잘 이해될 수 있게끔 동영상을 갈무리한 사진을 첨부하는 등 신경 쓸 부분이 굉장히 많더라.

A4용지 7매를 가득 채운 이력이 그간 걸어온 길을 대변하는 듯하다. 처음 무용, 그중에서도 일무와 정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는지.
대학에서 김천흥 선생님께 춘앵전을 배웠고, 이후 국립국악원 무용단에 들어갔는데 지도사범으로 계셨던 (김천흥) 선생님께서 나에게 “일무를 전승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셨다. 일무라는 건 사실 학교 다닐 때도 배워본 적 없고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다. 그래서 오히려 안 해본 것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던 것 같다. 더불어, 이론적으로 전혀 볼 수 없었던 기록들도 함께 접할 수 있어서 흥미를 느꼈다.
왜 일무를 권하셨을까 생각해본 적은 없나.
전혀 그런 생각은 없었고, 선생님께서 해오시던 것을 나에게 이어가달라고 하시니 당연히 해야 되는 걸로만 생각했다. 이를 전승하는 과정에서, 국악고등학교 교사 부임 당시 교장선생님이셨던 관재 성경린 선생님께서 종묘제례악의 위기에 대해 말씀하셨다. 종묘대제에서는 종묘제례일무의 앞부분만 연행하기 때문에 뒷부분은 사장될 위기에 있다고 걱정하시며, 전장을 다 외워 전승을 해갔으면 좋겠다고 권하셨다. 이를 계기로 외우기 시작했는데 종묘제례악 자체가 어렵고 음악을 외워야만 동작도 맞출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렸고, 1988년도에 비로소 ‘종묘제례일무’ 전장 발표를 하게 됐다. 이후 선생님들께서 문화재청에 나를 추천해주셔서 1990년에 국가무형유산 종묘제례악 일무 전승교육사까지 지정됐다.
선생님은 보유자가 되실만한데.
종묘제례악은 단체종목이라 개인 지정이 더 어려운 것 같기도 하다. 법적으로 아예 안 되는 건 아니지만 평가가 자주 이뤄지지 않는다. 물론 보유자로 지정이 되면 좋겠지만, 사실 그보다 더 바라는 것이 전승교육사 지정 확대이다. 일무는 한 번 공연할 때 64명이 참여하기 때문에 내가 앞에서 지도하면 옆에서 동작을 교정해주는 등 보조해줄 인원이 필요하다. 처용무 같은 경우 5명이 춤추는 데 전승교육사가 3명이다. 그런데 일무는 64명이 추지만 전승교육사가 나 하나다. 이 부분에 대한 보완이 먼저 이루어지길 바라고 있다. 무형유산과에 이러한 의견을 전했지만, 담당자가 바뀌는 등 여러 절차적 문제로 아직도 해결이 안 되고 있어 이 부분이 참 아쉽다.
궁중에서 행해지던 무용인만큼, 사실 일무와 정재는 그것이 갖는 역사적 가치에 비해 대중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흥미를 확 끄는 요소도 없고, 찾아보기도 쉽지 않아 무용을 전공하는 이들마저 그저 특별한 것으로 치부한다. 그럼에도 궁중무용을 배우고, 가르치고, 지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친구는 나에게 “선생님은 다른 춤을 추셨어도 잘 하셨을 텐데 왜 일무를 하셨어요? 다른 종목을 하셨으면 보유자도 되셨을 텐데”라고 묻기도 했다. 이에 대한 나의 대답은 언제나 같다. 그저 소명이라고 생각했다. 선생님께서 나에게 일무 전승을 권하셨던 것도, 그리고 그 뜻을 이어 내가 이 길을 걷고 있는 것도 나에게 주어진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어떤 춤보다 종묘제례악이 중요하기 때문에 1호로 지정됐을 것이다. 이토록 귀중한 우리의 유산을 잘 이어가야 할 책무가 나에겐 있다.
그리고 과거에 선생님들이 걱정하셨던 부분을 오늘날의 내가 여전히 염려하고 있다. 종묘제례악 전장을 선보일 기회 자체가 많지 않고, 대부분 앞부분만 익혀 공연하다 보니 일부러 익히지 않는다면 언젠가 뒷부분은 사장될 수 있다. 앞서 말했듯, 보유자 지정 여부는 사실 나에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선생님들로부터 배운 이 춤과 전통과 역사를 잘 지켜 다음 세대까지 이어줘야 할 책무에 집중할 뿐이다.
정재연구회와 아악일무보존회를 주축으로 종묘제례일무의 전승을 이어가고 있다. 두 단체를 소개한다면.
정재연구회와 일무보존회 모두 1996년에 시작됐다. 그때만 해도 대학 졸업 후 무용단에서 활동을 하다가도 결혼을 하면 무용단을 그만둬야 하는 분위기였다.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워놓고 난 후 다시 복귀하고 싶다는 제자들이 있었고, 그 친구들을 데리고 김천흥 선생님께 가서 말씀을 드렸더니 ‘정재연구회’라는 이름을 작명해주셨다. 더불어 “무용하는 사람들도 일무는 잘 모르니까 당신들이 정재와 더불어 일무를 꼭 같이 공연해라”라고 말씀하셨고, 일무 연구를 위한 일무보존회가 같이 가게 된 것이다.
궁중무는 국악원 무용단이 아니면 외부에서 가르치는 사람들이 거의 없으니 배우기 쉽지 않다. 일반 민속무를 전공한 친구들도 개인 발표 등에 궁중무나 일무를 넣으면 레퍼토리도 더 풍성해지고 좋으니, 알음알음 소문이 나서 찾아오기 시작했다. 2008년 스페인 사라고사 엑스포 한국의 날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이때 예산을 지원받아 의상과 선유락에 쓰이는 채선, 가인전목단에 사용되는 화준 등 여러 가지를 장만할 수 있었다. 그 친구들이 정재연구회에 부담 없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작품비라든지 이런 걸 전혀 받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심소(김천흥) 선생님께 작품비나 이런 걸 드리고 배우지 않았기 떄문에, 나도 너희들에게 그대로 가르쳐 준다”라고 말했다.
종묘제례악보존회는 국가유산청으로부터 매달 지원금을 받고 있지만, 우리 단체는 별도의 지원을 받고 있지 않다. 어쩌다 의상 세탁이나 망가진 것들을 보수하는 정도지, 연습실이라든가 사무실 월세 등에 대한 지원은 전혀 없었다. 그동안은 전부 자비로 단체를 유지해왔다. 그러다 작년에 얘기해서 올해 처음으로 연습실 사용료로 1년에 100만 원을 지원받게 됐다.

왕조문화이기에 일무와 정재의 연구 및 전승은 국립단체의 몫으로 생각되기 마련인데, 민간단체인 정재연구회와 아악일무보존회에서 수십년에 걸쳐 꾸준히 공연과 연구를 지속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공연을 위해 대규모 인원을 모으는 일부터 모든 연습 및 공연 과정이 쉽지 않을 텐데.
일무는 대학 과정에서도 배우지 않으니, 이곳에서 처음부터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전 인원을 모아놓고 교육할 수 없다. 그래서 신입들이 두 번째 토요일에 하면, 2~3년 차는 세 번째 주, 4년 차 이상은 그다음 순으로 진행하고 있다. 또한, 정재와 일무 모두 이론적 배경을 알아야 춤을 더욱 깊이 있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이론적인 부분은 따로 스터디한다.
2007년부터는 정재연구회 산하에 화동정재예술단을 운영해, 초등학생들에게 노래와 장단, 춤을 가르치고 있다. 그 친구들이 벌써 성인이 되어 다시 정재연구회를 찾는다. 그중에는 일무 전수자와 이수자도 있다. 과거부터 해온 교육들이 현재까지 연장되고 있어, 매번 행사에 필요한 64명의 인원을 모으는 것 자체는 어려움이 없다. 다만, 연습도 해야 되고 5월의 뙤약볕 아래서 2시간 반 정도 의상을 갖춰 입고 서 있는 것이 중노동인데, 전승자 공개 행사 차원이라 페이는 적어 참여를 권하는 것 자체가 미안할 때가 많다. 이런 (예산) 문제는 우리 같은 민간 단체가 자체적으로 소화할 수 없으니, 국가 차원에서 좀 더 신경 써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종묘, 문묘, 사직의 일무 봉행을 통해 문화유산 전승에 이바지한 공을 인정받아 2016년 12월에는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당시 소감을 통해 “선생님들께서 주신 ‘종묘제례일무 전장 암기 및 전수’라는 숙제를 완수하기 위해 노력했다”라고 전했는데, 본인도 제자들에게 이 가르침을 이어서 전하고 있나.
그렇다. 이수한 친구들을 모아 해마다 ‘팔풍의 몸짓, 일무’라는 타이틀로 전장 발표를 한다. 이를 외우는 과정이 너무 힘들다 보니 참여 인원이 많지는 않다. 그동안 매해 20여 명 정도 참여해왔다. 올해가 10회째인데, 이번에는 64명이 모여보자는 의견이 이수자들 사이에서 자발적으로 나왔고 국립국악원 예악당 대관 신청을 통과해 11월 29일 공연하게 됐다.
그동안 64명과 함께 전장 발표를 해보는 게 꿈이라고 말하면서도, 과정이 너무 힘드니 생전에 실현 가능할 거란 기대는 크지 않았는데 그 꿈을 이루게 되어 매우 기쁘다.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닌 만큼 다들 기대와 의지가 남다르다. 아울러 종묘제례악보존회에 직접 연주로 공연에 함께해달라고 특별히 부탁했다.
종묘제례일무 전장을 최초로 외워 공연한 기록을 갖고 있다. 전장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전장을 암보하는 이수자들이 매우 적은 것으로 아는데, 사장되는 것에 대한 염려도 들 것 같다. 후학 양성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과거에는 종묘대제 때 선보였던 종목들만 연습해서 이수 평가를 받고 이수자가 된 경우도 많았다. 이후, 내가 유산원 측에 전장을 다 하는 걸 요청했고 지금은 이수자가 되기 위해서는 종묘제례일무 전장을 암보해야만 한다. 이수를 했다고 해서, 외웠던 것이 계속 머릿속에 저장돼 있는 건 아니니까 1년에 한 번씩이라도 발표할 기회를 만들어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고 있다. 특히 이번 10주년 공연으로 64명의 전장 공연을 선보이고 나면, 새로운 친구들이 배우러 올 것으로 기대한다. 그동안 20~30명씩만 참여했기 때문에 64명이 하는 공연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이번 기회에 잘 해낸다면 이것이 선례가 되어 계속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나는 종묘지례일무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한다. (웃음)
지난 2016년에는 국립현대무용단의 렉쳐퍼포먼스 ‘춤이 말하다’에 한국전통춤 대표자로 참여해 관객과 소통한 바 있다. 당시 공연 내용과 이를 통한 감상이 궁금하다.
어떻게 나를 섭외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춘앵전과 종묘제례 일무를 주제로 두 차례 공연했다. 렉처 퍼포먼스라는 형식을 처음 접하는 거라 방향을 잡는 것부터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당시 안애순 단장님이 몇 가지를 이야기해주신 것에서 힌트를 얻어 나와 춤의 접점을 중심으로 풀어가게 됐다. 궁중무는 박자가 느리고 춤 자체도 지루하기 때문에, 최대한 유머러스하게 풀어서 표현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고 다행히 좋아해주셨다. 반응이 괜찮았는지 다음해에 지방에서 약 10회 정도 추가 공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을 꼽아 본다면. 그 이유도 함께 듣고 싶다.
나는 사실 무대 체질은 아닌 것 같다. 아프다가도 무대에만 서면 신명이 나서 날아다니는 분들도 계시는데, 나는 확실히 그런 타입은 아니다. 무대 위에서 퍼포먼스적으로 기억에 남는 것보다, 흔히 할 수 없는 공연을 통한 기억이 더욱 인상적으로 남게 되는 것 같다.
국가유산진흥원에서 주관하는 궁중문화축전 행사 중 종묘 정전에서 하는 ‘종묘제례악 야간 공연’이 있다. 정전 자체가 문화재이니 원래 조명 시설 설치가 안 되는 곳이지만, 이 기간만큼은 허용되는 것이다. 우리는 보통 정전을 향해 공연하니, 등판만 보여준다. 하지만 축전 기간에는 정전을 배경 삼아 박석 양쪽으로 악대가 앉고 이를 중심으로 좌우로 네 줄씩 일무원들이 서서 앞으로 밀고 들어온다. 정전 뒤의 조경과 조명, 주변 전경이 가지는 웅장함이 어우러져 신묘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평소에도 종묘에 가면 위엄을 느낄 수 있지만, 밤에만 느껴지는 분위기는 또 달랐다. 압도되는 기분마저 들었다.
올해 공연 계획은.
앞서 전했던 11월 ‘팔풍의 몸짓’ 외에는 매년 고정적으로 선보이는 행사들로 채워질 것 같다. 4월 선농제(先農祭)에 이어, 5월에는 종묘 대제가 있다. 다만, 올해는 조금 특별하게 진행될 예정이다. 지난 2021년 종묘 정전 수리를 위해 신주를 창덕궁 선원전으로 이안했는데, 오는 4월 24일 정전이 보수를 마치고 환안제가 봉행된다. 이안제가 다소 미흡하게 진행됐던 만큼, 환안제는 왕실예법에 맞게 진행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9월 마지막 토요일에는 사직대제, 11월 첫 토요일에는 종묘 추향대제에 참여한다.
앞으로의 목표와 아직 해보지 못한 일 중 이루고 싶은 바는 각각 무엇인지.
현재 의상은 조선 후기의 옷들이다. 그런데 대한제국 시기에 오면 의상 색깔이 조금 바뀐다. 일무원 같은 경우 대한제국 이전에는 남주의를 입고 36명이 6일무를 추는 것에서 대한제국이 되면서 홍주의를 입고 64명이 추는 8일무로 바뀌는 것처럼, 왕도 이전에는 붉은색 곤룡포를 입다가 대한제국이 되면 황룡포를 입는다. 또한 9장복 9류 면류관이 12장복 12류 면류관으로 바뀐다. 이처럼 대한제국 시기를 전후로 복식의 차이가 상당한 편인데, 이를 반영하여 새로운 의상으로 시대를 반영하고 싶다. 대한제국 시기의 궁중무를 선보이고 싶은데 가장 중요한 의상이 준비되어야 가능할 것 같다. 내년이면 창단 30주년인데, 알뜰하게 조금씩 모은 돈으로 내년에는 새로운 의상으로 새로운 공연을 선보이는 것이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