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칼럼] 돈과 그림
[미술칼럼] 돈과 그림
  • 박정수 / 미술평론가
  • 승인 2011.07.14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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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에서 듣는 박정수의 미술이야기
인간미 없고 정떨어지면서 화만 나는 이야기를 주절거려 본다. 공손하지도 않고 친절하지도 않은, 그러면서 은근히 열 받게 하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얼마 전 뉴스에 네 살짜리 꼬마애가 그린 추상표현 그림이 이천육백만원에 판매가 되었다고 한다. 그림을 알면 얼마나 알고, 돈이 있으면 얼마나 있기에 4년산 인생의 그림이 그렇게 비싼 가격에 사고파는가.

드라마‘최고의 사랑’에 나온 독고진의 대사처럼“평생이 7년인 넌 벌써부터 사물에 감정이입 하고 그러지 않아도 돼....하지만 37년을 산 나는 감정 이입이 되서 도넛을 먹지 못 하겠다”는 식의 드라마 대사가 무색해 진다. 사십년을 그려도 이 모양인데 평생이 4년인 그녀보다 지명도도 못하고, 잘 팔지도 못하는 사실에 환장할 따름이다. 추상표현이라는 것이 의미적 접근보다는 조형적 요소가 강조되는 그림이다 보니 그럴 수 있다 넘길 수 있지만 정말 예술 할 맛 안 난다.

원숭이가 그려도 몇 백 만원, 코끼리가 그려도 수 백 만원에 팔리기도 한단다. 그런데 만물의 영장 중에서 창의에 힘쓰는 그림이 이렇게 팔리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말이 안 된다. 원숭이 그림보다, 코끼리 그림보다, 평생이 4년이 그녀(?)보다 못한 그림을 그리는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글 쓰는 자신에게 물어본다. 1억 줄 테니 글 쓰는 직업 버리라면 지금 당장 버리고 만다(글 값이 평생 1억이 안될지도 모른다는 자책에 쓰나미가 앞을 가린다). 1억이 그리 많은 돈이 아니라고 말은 하지만 그게 어디 작은 돈인가. 개인전 두 번한 이십대 후반에게 묻는다. 1억 줄 터이니 그림 그리는 직업 버리라고. 어림도 없다. 10억을 줘도 그림 그리는 직업과 바꾸지 않겠단다.  개인전 다섯 번 한 삼십대 중반에게 묻는다. 5억 줄 터이니 그림 그리지 말라고. 고개를 갸웃 거린다.

10억과는 바꿀 요량인가 보다. 40대 이상에게는 묻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 그림 그리기로 성공했거나 오기만 남았거나, 아직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한 분들이기 때문이다. 물어보면 서로가 불편해진다. 속내는 얼마인지 모르지만 겉으로는 절대로 돈과 바꿀 수 없는 창의와 열의가 있다.

되돌아가 가기에도 너무 늦었다. 다른 직업을 선택할 수도 없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곤 그림 그리는 것과 그림 그리기 위해 싸워온 세월을 돌아보는 것밖에 없다.  얼마의 돈이면 그림그리기를 멈추겠는가. 돈을 줄 터이니 그림 그리기를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돈의 유혹과 돈의 타협을 뿌리치고 예술의 열정을 다하는 분들이 있기에 세상이 발전한다. 다만, 지금 당장을 힘겨워하는 많은 분들의 기운 빠지는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예술가님들! 자신의 몸값이 무척 비싼 줄 알아야 한다. 창의라는 사회구조의 중요한 역할을 제공하는 것에 수억 원, 그림을 그리고자하는 열정에 수억 원, 지금까지 투자된 시간과 연구 활동비 수억 원, 앞으로 성장할 가능성에 수십억 원을 더하면....(많다) 차라리 지금 하고 있는 그림을 그리는 편이 세상에 도움이 되겠다.  

예술가는 돈을 그리지 않는다. 다만 돈과 교환할 뿐이다. 돈을 그린 그림과, 돈과 교환하는 그림의 차이는‘살아 지느냐와 살아가느냐’와 같다. 예술은 살아지지만 예술가는 살아가야 한다.
의지와 개척과 창의 정신으로 아무도 모르는 미래를 미리 맛보고 설명한다. 살아지는 데도 돈이 들고, 살아가는 데도 돈이 든다.

예술가로서 살아가는 것에 드는 돈까지 개척해야 하는 어려움을 가까운 사람들이 많이 알아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