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의 미술시장 이야기]예술가와 나이, 그들은 언제나 청춘
[박정수의 미술시장 이야기]예술가와 나이, 그들은 언제나 청춘
  • 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 승인 2015.10.18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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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나이든 어른 예술가가 젊고 아름다운 여성예술가에게 데이트 하자고 하면 나이든 어른이기 때문에 웃으면서 그것을 반길지 모르지만 속마음으로는 ‘늙은 아저씨가 주책이야’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대학교수들과 어린제자와의 추문이나 추생이 심심치 않게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보면 서로간의 나이와 상관없는 감정보다는 스승이기 때문에 혹은 상대의 사회적 권위에 눌려서 이거나 자신의 어떤 이익 때문에 그러한 상황을 참고 지나가는 것 같다.

이러한 현상은 예술계의 일만은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곳에서는 늙기 싫어하고, 자신이 늙었다고 인정하는 이 아무도 없다. 보통사람이 삶에 대한 욕망이라면 예술가는 예술가의 욕망이다.

적당한 명성과 적당한 사회적 지위를 지니고 있는 예술가는 괴롭다. 그러나 이들의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며, 스스로는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한다. 여든이 넘은 국민 엠씨 송해(1927)선생은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로 대중적 인기를 다시금 얻고 있다.

일흔이 넘은 노래하는 가수가 어린 여성가수에게 남자친구 하자고 들이대는 프로그램을 본일 있다. 텔레비전에 공개된 그 가수의 행적을 보아 왔을 때 시청자들을 위한 재미만은 아닌 것 같다.

나이든 예술가는 자신의 나이를 잊고 어린 상대가 자신을 이성으로 봐주기를 욕망한다. 그 욕망은 상상을 넘어 현실에서 실천으로 옮겨질 때 사회적 문제로 번지게 된다.

예술가에 있어서 욕망이란 무엇인가. 욕망은 욕심과 엄연히 구분된다. 욕망(欲望/慾望.desire)은 부족함에 대한 충족이나 욕심(欲心/慾心.greed)은 충분함에도 더 많이 탐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구분해야 한 것은 욕망과 욕심의 욕(慾.欲)의 한자를 구분해야하는데, 욕(慾)은 부족분에 대한 인간의 욕심(心)이 있는 것이며 욕(欲)은 사회적 요건으로서 부족분에 대한 채워짐을 의미한다. 물질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굳이 분리될 이유가 없으나 예술가와 보통사람의 정신적 관계를 굳이 분리하자면 욕망(欲望)과 욕망(慾望)으로 구분하고 싶다.

욕망은 허구이며 만들어지고 제작되어지는 정신 기술적 측면에 작용하는 전기 자극이다. 욕망은 존재하지 않음에도 존재하며, 삶의 가치에 관여하고 미래를 운영하는 조건이기도 하다.욕망에 대하여 자크라캉은 프로이드가 말하는 생물학적 요구에서 한층 진보된 심리학적 관계설정으로 확장시킨다.

프로이드는 생존의 요건과 관련된 사회집단의 요구라 보았고 라캉은 인간과 인간. 집단과 집단간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정신의 영역으로 보았다. 라캉에 있어 예술은 정신적 욕망 실현을 위한 관계설정의 역할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예술가적 욕망 실현은 불가능의 영역으로 보기도 하였다. 욕망은 생존 본능의 영역과 직접적 관련성을 지니고 있으나 먹고 자는 등의 생존 본능과는 다른 부분에서 개발되어 진화하고 발전해 나간다. 따라서 예술가의 욕망은 미래의 본성이 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욕심은 욕망의 부분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욕심은 자본주의 사회가 운영되면서 만들어진 물질 소유욕에서 형성된 소망이다.

본래는 생물학적 본능이었으나 자본주의에서 발전된 사회학적 본능으로의 전환이다. 따라서 일반인이거나 예술가이거나 상관없이 욕심과 욕망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지만 사회적 책임이다.

욕망의 확장이 욕심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사회학적 요구와 취득이 성사되면 생물학적 요구 요건인 욕심의 충족으로 타자와의 관계설정이 이어진다할지라도 욕심에 대한 책임이 나이가 된다. 예술가적 욕망과 인간적 욕심은 구분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