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의 미술시장 이야기] 팔리는 그림 좀 걸지?
[박정수의 미술시장 이야기] 팔리는 그림 좀 걸지?
  • 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 승인 2016.10.14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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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팔리는 그림 좀 그려!”라는 말을 듣는 이가 있다면 가난한 미술가임 분명하다. 작품 활동 열심히(만?)하고 끊임없이 미술품을 생산해 내는데 노력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우직하게 자신이 원하는 작품형식을 추구하면서 그것이 현실에 맞아 떨어지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팔리는 그림이 어떤 그림인지 잘 알지 못한다. “예쁜 꽃 그림이나 고향 풍경”이라 말하고 “색깔 예쁘게 칠해진 비구상”이라는 말 등을 서슴지 않는다. 누군가 팔리는 그림을 잘 그린다면 이미 유명작가이며 세상 제일의 부자다. 그릴 때마다 팔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트페어에서 간혹 “팔리는 작품 좀 걸어”라는 말을 듣는다. 젊고 낯선 작가를 주로 소개하는 입장에서 여간 껄끄러운 말이 아니다. 화랑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팔리는 그림이 무엇인지 정확히 잡아낼 수는 없지만 팔리지 않는 그림이 어떤 것인지는 분명히 안다.

어느 화랑에서는 수 천 만원의 작품이 매매되고 어느 곳에서는 매매가 전혀 없을 수 있기 때문에 속이 타 들어가는 경험을 수없이 반복한다. 작품이 잘 팔린다는 소문이 들리면 젊은 작가를 중심으로 아트페어에 참여하여 낯선 작가를 소개하는 화랑으로서는 여간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처음이라는 것은 언제나 낯설고 어색하다. 처음이라는 것이 있어야 두 번째가 되고 세 번째가 된다. 대관이 아닌 초대전의 경우 화랑에서 첫 전시를 초대한다는 것은 다소 부담이 되기도 한다. 작품 매매를 통한 영업이익을 기본으로 하는 화랑이기 때문에 지인의 도움 없이 처음 참여한 젊은 작가의 작품이 매매될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트페어에서도 마찬가지다.

아트페어에서는 미술품 매매를 전문적으로 하는 이들이 많으므로 작가의 예술성과 함께 투자의 가능성을 같이 생각한다. 지속적이 작품 활동을 통한 예술가의 명성과 작품에 대한 인지도가 상승하여야 투자의 가능성이 발생한다. 따라서 작품의 낯 섬과 어색함이 아니라 언제 작품 활동을 그만둘지 모르는 초보 예술가로 인식되기  때문에 쉽사리 미술품이 매매되지 않는다. 

어떤 작품이 매매되느냐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의 첫 번째가 죽을 때 까지 작품 활동을 할 것인가에 대한 믿음이다. 경제적 능력에 따라 가격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트페어에서의 미술품 구매는 항상 비싸다. 비싼 가격으로 미술품을 구매하기 때문에 꾸준한 활동에 의한 가격 상승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여기에 대한 정확한 지표는 아니지만 경험치로 정리해 보자면(작품에 대한 예술적 관심도를 제외하고) 개인전 9회 이상, 현시점에서 과거 3년 정도의 기간 동안 그룹전이나 기타 전시와 국제 아트페어 등에 꾸준히 참여한 이들을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작가의 입장과 화랑의 입장에서 ‘팔리는 그림’은 개념을 달리한다. 작가의 입장에서 잘 팔리는 그림이란 보통 사람들이 보았을 때 익숙하고 잘 알려진 이미지로서 장식이 수월하고 향수(鄕愁)를 자극하는 그림이라 이해되고 있다. 화랑에서 팔리는 그림이란 인사동을 비롯한 화랑 등지에서 거래가 활발한 작품을 우선한다.

하나는 대중성을 중심으로 인식되고 다른 하나는 경제 논리에 기준이 맞춰진다. 양자모두 판매에 기준이 설정되지만 양자모두 현실과는 다소 동떨어진 관념의 입장이다. 예술작품의 감상에 있어서 의미와 모양에 대한 감상접근의 방식이 다를 수 있다. 예쁘다는 개념 또한 외양(外樣)이나 외형(外形)의 것과 담겨진 의미나 사상의 것과 비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트페어에 참가는 하는 화랑이나 창작하는 예술가나 팔리는 작품을 선호하지만 그것은 사회적 요건이며 가치 판단의 문제이기 때문에 단순한 접근으로서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