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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의 미술시장 이야기] 진화된 갤러리스트가 필요하다
2017년 10월 27일 (금) 13:40:01 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sctoday@hanmail.net
   
▲ 박정수 미술평론가/정수화랑 대표

미술관, 아트센터, 갤러리, 화랑이란 이름의 문화공간에는 미술작품과 운영자와 관계자들이 산다. 누구는 관장이고, 누구는 학예사이며 큐레이터라 불리는 이들은 자신들의 영역과 공간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산다. 상호명(商戶名)은 다르지만 하는 일은 비슷한 작은 화랑이나 갤러리에서는 관장이 대표이고, 대표가 큐레이터 역할을 한다.

큐레이터라는 용어가 유입되어 일반화 된지 30년이 되어가지만 이들에 대한 정체성은 여전히 불분명하다. 미술감독, 아트딜러, 아트디렉터, 아트마케터, 아트매니저 등을 통칭해 큐레이터라 하기도 한다. 근래에 이르러 큐레이터니 학예사니 하는 말보다는 미술계 일각에서는 그냥 갤러리스트로 지칭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귤이 강을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지만 큐레이터에 대한 외국의 입장이나 개념을 차치하고 볼 일이다.  

이들의 직함은 우아하지만 경제적 실속과 정체성은 모호하다. 미술관의 학예사를 제외한 보통으로서의 큐레이터란 화랑에서 손님맞이하고 아트페어에서 그림팔고, 기획전할 때 인쇄물 디자인하는 등의 1인 다역을 하여야 하는 자리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미술시장이 협소한 관계로 중국이나 대만, 홍콩을 비롯하여 미국이나 유럽 등 전 세계에 산재한 다양한 아트페어에 출품하여야 하기 때문에 어학에도 능숙해야 한다.

화랑에서는 더 이상 영업이익을 창출하기 어려운 시대다. 화랑을 운영하여야 하는 입장에서는 아트페어에 참여하는 것이 가장 최선이다. 호텔에서 진행하거나 지자체의 소규모 아트페어를 합하면 100여개에 이르는 아트페어가 열린다. 작품 판매보다는 부스판매에 신경을 더 쓰는 주최측의 무성의를 무시하고 아트페어에 참여한 이산 판매량이 큐레이터의 능력을 가늠하기도 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그들만의 리그다. 미술사적, 혹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료나 문화적 가치를 위한 본래적 의미의 활동과 함께 현실 여건에 맞는 영업활동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세상은 변하고 문화는 발전한다.
 
진화하는 세상에서 진화된 갤러리스트의 역할이 필요하다. 작품을 팔아 영업이익을 취하는 한계를 극복하면서 미술가에 대한 옹호와 그들을 위한 역할로 돌아설 때가 되었다. 미술가의 생존이 작품의 존재가치를 강화하고 있음을 이해하여야 한다.

미술작품이 아무리 유명하고 비싸다 할지라도 미술가 없이 존재할 수 없다. 화랑의 영업이익을 만들어주는 미술작품을 현존시키기 위해서는 좋은 미술가를 위한 사회적 활동이 필수적이다. 

예술작품이 사회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분명하다. 미술가 스스로가 사회의 한 부분을 차지하기에는 역할 분담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미술작품이 자신의 역할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미술가에 대한 사회적 활동을 지원하여야 한다. 그것이 미래를 위한 대안이며 품격이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으로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진행 되고, 기업의 후원 및 지원 또한 늘어나고 있다. 문화예술에 대한 새로운 지명도와 새로운 가치가 확산되고 있음이다. 과거의 집중되어 오던 영업이익 창출에서 경제적 가치와 사적 가치가 공존하는 방안이 모색되고 있다. 현재의 입장에서 어떠한 예술작품이 두 가지 경우를 만족시키는가에 대한 문제는 아직 미지의 영역이지만 현재보다 나은 미래는 분명 도래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술계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갤러리스트로서 자신의 직종에 대한 정체성 확립이 우선돼야 한다. 미술문화의 저변이 확대되고 미술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있는 시점에서 그들만의 리그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진정한 전문가로 거듭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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