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 애가·哀歌' 이만주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출간
'삼겹살 애가·哀歌' 이만주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출간
  • 이가온 기자
  • 승인 2018.11.13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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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부조리나 인간 만행 고발하고 비판하면서도 그 비판이 풍자와 해학으로 승화돼 딱딱하지 않고 즐겁게 읽혀"

목 축이는 새
 
-전략-

달고 단, 물 한 모금
얼마나 돌고 돌아, 예 왔을까
10년 전, 바이칼 호수의 물이
100년 전, 대서양의 물이
1000년 전, 천산산맥의 눈이
수증기 되고
구름 되어 떠돌다
이곳에 와
비로 내렸는지도 몰라

강렬한 볕으로
소음이 잦아진 텅 빈 오후
새 한 마리가
공원 수조에서
물 한 모금 쪼고 있다
 
                               - 캘리포니아 몬트레이(Monterey)에서

탄생(誕生)
 
100억 년 전, 대폭발로 우주가 탄생했다는 주장은
별 의미 없다
내가 첫울음을 터뜨렸던 것은
나의 탄생과 함께, 비로소
우주가 탄생된 기쁨에서였다
 
-중략-
 
우주는 존재의 목적이 없다
있다면
내 존재를 확인시키기 위한 것이 목적일 뿐
내가 존재치 않는다면
은하계도 안드로메다대성운도 있거나 말거나다
내가 적멸하는 순간
우주도 소멸한다 -후략- (끝)

▲이만주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삼겹살 애가』,다미르출판사 刊. (10,000원)

‘읽히는 시’를 표방하며 2015년 12월 출간되어 우리 사회와 시단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던 이만주 시인의 첫 시집, 『다시 맺어야 할 사회계약』이 그러했듯이 이번 시집, 『삼겹살 애가』도 예사롭지 않다. 최소한, 시집을 덮는 순간 읽은 시간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시인과 시는 많아도 시가 멀어진 시대에 시집 『삼겹살 애가』는 읽히는 시들로 채워져 있다.

이만주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을 받아든 사람들 중에는 이번 시집이 이 시인의 ‘두 번째’라는 것에 의아해 사람들이 많다. 그 주변에서 조차도 그의 시집이 열권쯤 되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이니 말이다. 이는 어디서 기인한 것인가를 따져보면 그가 기행문을 비롯, 무용평론 등 산문을 끊임없이 써 왔지만 어느 자리에서든 시를 가까이 하고 기꺼이, 자주 들려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서정시가 주를 이루는 우리 시단에서 서사와 아우른 깊은 사색이 담긴 시로 한국 시의 지평을 넓히고 있는 이만주 시인. 그에 대해 충북대 국문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문학평론가이기도 한 임보 시인은 “이만주의 시풍은 호방하다. 시야가 거시적이다. 사회의 부조리나 인간의 만행에 대해 고발하고 비판하면서도 그 비판이 풍자와 해학으로 승화되어 있어 딱딱하지 않고 즐겁게 읽힌다”라고 했다.

호방과 해학에 더해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시들이 내용과 형식에 있어 스펙트럼이 실로 넓다는 점이다. 자본주의의 현실을 다루는 짙은 서사풍의 시가 있는가 하면 인생을 관조하는 맑은 서정시도 있고 시가 전 세계를 누비고 동서의 역사에 닿아 있다. 장시가 있는가 하면 제목보다도 본문이 짧은 단시도 있다. 그러면서도 시가 쉽게 씌어졌기에 독자들의 스펙트럼 또한 넓다. 그의 독자 중에는 대학교수나 경제학박사인 광팬이 있는가 하면 재미와 감동 때문에 독서를 전혀 안 하지만 그의 시집만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다는 사람들이 있다.

시집이 시작되는 첫 시인 ‘삼겹살 애가’는 ‘코리언 드림(Korean Dream)’을 찾아 한국에 왔다가 돈사 똥통에 빠져 죽은 20대 네팔 청년들에 대한 진혼시의 성격을 띤다. 독자들은 이 시를 읽으며 자본주의 사회의 냉혹함을, 나아가 인생의 허무함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서 각자  자기의 삶을 돌아보며 인생이란 걸 다시 생각한다.

▲이만주 시인

이렇게 시작된 시집은 단순함이나 단일함에 머물지 않고 내용에 있어서 파노라마를 펼친다. 세계를 여행하며 쓴 기행시들은 일반적인 기행시들과 달리 상투적 감상을 벗어나 문명비평적인 시각을 견지한다.

시집은 이밖에도 여러가지 흥미로운 특징을 갖는다. 시집 표지에 돼지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것은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일 것이다. ‘피라미드’라는 시에는 각기 크기가 다른 피라미드 꼴의 시어 나열이 들어 있다. 시들 한 편, 한 편은 독자적인 시들이나 시집 전체로 보면 성경 구약의 '창세기'로부터 시작하여 불교사상인 '윤회의 고리를 끊는 것‘으로 끝나는 어떤 맥락성을 갖는다. 또 시집 중간의 <합일> 같은 시는 섹스 묘사에 ‘천부경’까지 인용해 썼다.

어느 문예평론가가 했다는 다음의 말은 ‘삼겹살 애가’가 어떤 시집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선 세련된 표지 장정부터 범상치 않다. 마법에 이끌리듯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까지 쉬지 않고 읽었다. 남의 삶에 대한 공감과 시인 자신의 시간에 대한 성찰이 교직되어 있는 세상의 버라이어티에 대한 스케치이자 자신의 안과 밖을 향한 따뜻한 풍자라는 표현 외에 ‘쉽게 폭 잡히지 않는 웅혼한 영성의 찬가’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시집의 이름에 엘레지(Elegy)가 들어 있으나 나는 여기 실린 시 전편을 사람과 세상을 향한 담담하면서도 사려 깊은 오드(Ode)로 읽었다. 그 끝은 한마디로 감동이다.”

첫 시집이 나왔을 때 부산에 사는 주부가 보내 온 것이라는 다음 촌평은 이만주 시인의 시 세계를 알게 한다. “시집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몇 자 올릴게요, 보통의 시가 반짝이는 언어로 사람들의 아름다운 감성이나 슬픔을 표현했다면 이 시는 담담하게 흑백으로 담아낸 한 편의 인간다큐드라마 같았어요. 잘 보았습니다.”   (다미르출판사. 1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