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시대의 지성’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별세
[부고]‘시대의 지성’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별세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2.02.28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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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언론인·작가·교수 등으로 활약…암과 싸우며 말년까지 집필
국립국어연구원·한예종 설립, 전통공방촌 건립, 도서관 업무 이관 등 4대 사업으로 문화정책 기틀 마련
내달 2일 국립중앙도서관서 영결식 열려
▲2010년 본지와 인터뷰하는 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 ⓒ서울문화투데이 DB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문화부 초대 장관(1990~1991)을 지낸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가 지난 26일 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89세. 

고인은 1933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호적상 1934년생)한 고인은 문학평론가, 언론인, 작가, 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우리 시대 최고 지성으로 불렸다. 

서울대와 동(同)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고인은 20대 초반에 문단 원로들의 권위 의식을 질타한 ‘우상의 파괴’를 1956년 한국일보 지면을 통해 발표하며 평단에 데뷔했다. 1960년 서울신문을 시작으로 1972년까지 한국일보, 경향신문, 중앙일보, 조선일보 등의 논설위원을 역임하면서 당대 최고의 논객으로 활약했다. 고인은 20대 초반인 1956년 문단 원로들의 권위 의식을 질타하는 ‘우상의 파괴’를 신문 지면에 발표하며 평단에 데뷔했다. 1972년에는 월간 <문학사상>을 창간하고 1985년까지 주간을 맡았다. 

고인은 노태우 정부 때 문화공보부를 공보처와 문화부로 분리하면서 1990년 출범한 문화부의 초대 장관을 맡아 이듬해 12월까지 재임하며 문화정책의 기틀도 마련했다. 관료가 아닌 문화예술인 장관으로서 문화부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장관 재임 2년 동안 국립국어연구원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 전통공방촌 건립, 도서관 업무 이관 등 공약했던 ‘4대 기둥 사업’을 마무리하고 물러났다. 

더불어 고인은 1988년 서울올림픽 개폐막식 식전행사 기획자로도 활약했다. ‘화합과 전진’이라는 주제의식과 역동성을 모두 표현해낸 명문으로 평가받는 ‘벽을 넘어서’ 구호와 개막식에 등장한 굴렁쇠 소년 기획 모두 고인의 아이디어였다.

저술 활동도 쉬지 않았다. 고인은 <흙 속에 저 바람 속에>(1960), <축소지향의 일본인>(1984), <이것이 한국이다>(1986), <세계 지성과의 대화>(1987), <지성에서 영성으로>(2010) 등 수많은 저서를 펴냈다. 아울러 <장군의 수염> 등 소설과 희곡, 시집 등도 펴냈다. 고인은 2006년 신문에 연재한 에세이를 모은 <디지로그>에서 디지털 기반과 아날로그 정서가 융합하는 세상을 말하며, 비빔밥과 같은 우리 문화와 정서가 가진 조화의 힘을 이야기했다.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 이화여자대학교 명예석좌교수가 암 투병 끝에 89세를 일기로 26일 별세했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

2010년 초, 고인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아날로그는 우리가 감청할 수 없는 필요 없는 요소들까지 고루 들어가 있다. 그에 반해 서양의 디지털은 압축을 통해 불필요한 부분을 깔끔히 제거한다. 다만 디지털 음악은 뭔가 감정이 끓어 오르는 것이 없다”라며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전통이라도 태어났을 그 당시 사회의 산물이기 때문에 요즘의 디지털인 것들과 어울려 한 단계 진화와 변화를 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라고 ‘디지로그’의 탄생 계기와 필요성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고인은 2009년부터 10년에 걸쳐 <한국인 이야기-탄생 너 어디에서 왔니>를 집필했다. 책을 쓰던 중 2017년 암이 발견돼 두 차례 큰 수술을 받았지만, 항암치료를 받는 대신 저서 집필에 마지막 힘을 쏟았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기도 한 고인은 지난해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관 문화훈장을 받았다. 2021년 10월에는 고인과의 마지막 인터뷰 내용이 담긴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 출간됐다. 책에서 고인은 육체와 마음과 영혼, 삼원론으로 삶과 죽음을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아울러, 고인은 지난해 10월 시대변화에 따른 문화적 방향성을 제시하는 한편, 교수로 재직하면서 수많은 후학을 양성해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관 문화훈장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6일 저녁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빈소를 방문해 조문하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6일 저녁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 장관의 빈소를 방문해 조문하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청와대

26일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도한 문재인 대통령은, 트위터·페이스북 등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어령 선생님의 죽음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애도한다”라며 “오늘 하늘도 큰 스승의 부재를 매우 아쉬워하는 듯하다. 슬픔에 잠겨있을 유족과 제자들, 선생님을 추억하는 국민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이어령 선생님은 우리 문화의 발굴자이고, 전통을 현실과 접목해 새롭게 피워낸 선구자였다. 어린이들의 놀이였던 굴렁쇠는 선생님에 의해 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한국의 여백과 정중동의 문화를 알렸다”라고 고인의 생전 업적을 기렸다. 이어 "우리 곁의 흔한 물건이었던 보자기는 모든 것을 감싸고 융합하는 전통문화의 아이콘으로 재발견 됐다”라며 “우리가 우리 문화를 더 깊이 사랑하게 된 데는 선생님의 공이 컸다”라고 강조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고, 장례는 문화체육관광부장으로 치러진다. 영결식은 내달 2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