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투데이 젊은예술가상 수상자 인터뷰]무용가 전건호 “‘장르 파괴’는 나의 예술적 지향점”
[서울문화투데이 젊은예술가상 수상자 인터뷰]무용가 전건호 “‘장르 파괴’는 나의 예술적 지향점”
  • 이은영 발행인ㆍ진보연 기자/사진 김재성 작가
  • 승인 2022.03.16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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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발전 위해 무용가도 ‘평론’ 알아야
무용의 영상화, 대체재 아닌 부가적 콘텐츠로써 긍정적 평가
관객의 무대 참여, 작품 관심도 높여
“환갑 넘어서도 창작으로 무대 오르고 싶다”

[이은영 발행인ㆍ진보연 기자/사진 김재성 작가]“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그가 그녀를 사랑하기에 눈이 푹푹 내린다. 참으로 허무맹랑한 소리이나, 시가 보여주는 사랑의 환상성에 애틋한 심상이 든다. 시인 백석이 출근하기 전에 그의 연인 자야에게 내밀었다는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아름다운 시어들이 지난 2012년 움직임으로 다시 태어났다. 

▲청주시립무용단 ‘나와 나타샤와 시인’ 공연 장면
▲청주시립무용단 ‘나와 나타샤와 시인’ 공연 장면

청주시립무용단이 <나와 나타샤와 시인>은 백석 시인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바탕으로 시 속의 흰 당나귀를 화자(話者)로 설정해 나귀의 시선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옛 시인의 아름다운 사랑의 시편을 오늘날 관객이 공감하고 간직할 수 있도록, 사랑의 연대기 또는 사랑의 풍경화로 승화시킨 것이다. 

<나와 나타샤와 시인>은 원작의 ‘흰 당나귀’를 의인화하여 사랑의 화신으로 춤추게 하고, 단순한 시적 시공간을 다양한 무대언어와 무용작법으로 펼쳐냈다. 무용가 전건호는 이 작품에서 흰 당나귀의 움직임을 사실적으로 표현해, 몽환적이면서도 탐미적인 이미지 구현하며 무용계에 이름을 각인시킨다.

전건호에게 <나와 나타샤와 시인>은 여러 모로 특별한 작품이다. 개인적인 침체기에 만나, 작품으로 하여금 다시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음식점 서빙을 하면서 안무를 생각하고, 밥을 비벼가면서 당나귀의 동작을 머릿속에 그렸다. 어렵게 공연을 준비한 만큼 배역에 대한 욕심도 커서 다양한 표현 방식을 연구했다. 그 결과 전건호는 무용계의 호평을 받았고, <나와 나타샤와 시인>은 제33회 서울무용제 대상의 영광을 안게 된다. 

그는 청주대학교에서 현 국가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예능 보유자인 박재희 교수의 문하생으로 본격적인 무용 활동을 시작했다. 청주시립무용단 수석 단원으로 활동했으며, 한성대학교 예술대학원 무용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충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무용학과 무용학 박사과정 중이다. 현재 박시종무용단 상임안무가, 한국무동인회 부회장 및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아울러 그는 무용수를 넘어 제24회 전국무용제 출품작 ‘도하․어’와 제41회 서울무용제 경연부문 출품작 ‘내 노래의 씨’ 등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안무자로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의 활동을 통해 제20회 전국대학무용경연대회 대상, 제15회 전국무용제 개인 연기 상, 2006년 청주 신인 예술상, 제24회 전국무용제 단체 은상과 개인 안무상을 수상하였고, 제41회 서울무용제 경연부분에 선정이 되어 한국춤의 무한한 확장성과 경계를 뛰어넘었다 는 작품평을 받았다. 또한 국내 뿐 아니라 한·중·일 동아시아 문화도시 초청공연으로 중국 취안저우시(작품:천년 지애), 닝보시(작품:화조), 일본 니카타 마츠리춤 축제(작품:심봉사 답답하야) 등 국제 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무용가 전건호 ⓒ박재성 작가
▲무용가 전건호 ⓒ김재성 작가

전통을 바탕으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한국 창작춤을 선보이며, 창의적인 재해석으로 전통과 현대를 잇는 전건호는 ‘나이 듦’을 받아들이며 절제하고 여백을 두는 법을 익히고 있다. 몸의 속도를 새로운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그가 말하는 춤 이야기를 들어봤다.

제13회 문화대상 젊은 예술가상 수상을 다시 한 번 축하한다. 상을 받은 소회와 수상 이후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근황이 궁금하다.

영광스럽게도 상을 받게 된 것이 나에게는 큰 동기부여가 됐다. 현재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충남대의 정은혜 교수님도 나의 수상 소식을 알고 세종국제무용제 참여 제안을 주셔서,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한국무동인회(韓國舞同人會)에서도 전통무용 공연을 준비 중이다. 4월에 공연이 예정되어 있는데 코로나로 인해 연습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무용만 하는 게 아니라, 청주에서 음식점 운영을 하고 있다. 월남쌈밥집을 하고 있는데, 코로나 때문에 상황이 많이 안 좋아져서 직원들하고 아주 힘겹게 운영을 하고 있다. 상을 받은 후 자부심도 생겼지만, 그것만 바라보고 있기는 어려운 상황이라 생업에 몰두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공연도 계속 취소되고, 준비할 수 있는 것도 그리 많지 않아서 예술가로서 굉장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세종국제무용제에 초청을 받아서 작품을 올릴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설렌다. 사실 무용수로서는 나이가 좀 있는 편이다. 보통 이 나이쯤 되면 안무가로 많이 전향을 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나의 목표는 환갑이 지나서도 창작무용 무대에 오를 수 있는 몸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트레이닝을 꾸준히 하고 몸 관리도 열심히 하고 있다. 

수상 당시 “춤의 뿌리인 국가무형문화재 92호 태평무 예능보유자 벽파 박재희 교수님, 인생에 버팀목이 되어주시는 박시종 선생님”이라며 가르침을 받은 스승님을 가장 먼저 언급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춤 인생에 있어 스승님들은 어떤 존재이고 의미인가.

수상 소감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스승님들은 나의 ‘뿌리’이다. 박재희 교수님은 나에게 어머니와도 같은 분이다. 교수님도 나를 막내아들처럼 여겨주신다. 지금까지 내가 춤을 열심히 출 수 있었던 건 박재희 교수님의 한결같은 응원 덕분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내가 춤을 추면 흐뭇하게 바라봐주신다. 표정에서 교수님의 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교수님이 앞에 앉아 계시면 떨리지 않냐’고 묻는 동료, 후배들도 있는데, 나는 오히려 좋다. 교수님의 표정 하나하나가 나에겐 용기가 된다. 교수님으로부터 배운 전통 무용 동작들은 내가 어떤 창작 작품을 하든, 흔들리지 않는 ‘나’를 이루는 뿌리가 됐다. 

박재희 교수님이 뿌리라면, 박시종 선생님은 나에게 나무와 같은 분이다. 박재희 교수님이라는 뿌리에서 시작된 박시종 선생님이라는 나무는, 전건호라는 가지에서 잎사귀와 열매가 잘 자라날 수 있게 끊임없이 애써주신다. 하나의 공동체라고 생각한다. 훌륭하신 스승님들이 계셨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 그분들은 나의 자부심이다. 

지난해 말, 대한민국무용대상 박시종무용단의 ‘춤타올라’ 무대에서의 활약도 굉장히 돋보였다.

매번 솔리스트로 주역을 많이 했다가, 박시종 선생님이 이번 무대에서는 군무를 제안해주셔서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하고 부딪혀봤는데, 굉장히 힘들었다. 10여 년 동안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는 무용가 전건호 ⓒ박재성 작가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는 무용가 전건호 ⓒ김재성 작가

솔로만 하다가 군무진과 함께 호흡을 맞추려니 너무 달라서 놀랐다. 계속 맞춰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어떤 색감을 조금 버리고 하다 보니 오히려 다듬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이번 기회를 통해 군무진의 고충을 깨닫게 됐다. 솔리스트도 굉장히 고뇌가 깊고 어려운 역할이지만, 그보다 함께 합을 맞춰야 하는 군무가 더 힘들다고 느꼈다. 

춤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고등학교 때, 기독교 신앙을 가지면서 문학의 밤 행사로 뮤지컬을 준비하게 됐는데 갑자기 주역 캐스팅 제안을 받게 됐다. 노래하면서 연기하고 춤까지 춰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분장 선생님이 무용 선생님이셨는데, 무용을 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권유를 받았다. 이전까지 나는 무용과 거리가 멀었다. 여자들만 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지만, 궁금해서 학원에 구경을 갔는데 너무 아름다운 모습에 가슴이 뛰었고 무용의 세계에 뛰어들게 됐다. 

당시만 해도 남자가 무용을 하는 게 흔치 않은 일이다 보니, 주변의 만류도 당연히 있었다. 특히 고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이 많이 염려하셨다. 청주 상업고등학교에서 은행원이 될 준비를 하고 있던 애가 갑자기 무용으로 대학을 가겠다고 하니 완강하게 말리셨다. 남자가 무용을 해서가 아니라, 굉장히 힘든 예술 중에서도 남자가 드문 무용을 하겠다고 하니 걱정이 되신 거다. 나를 붙들고 굉장히 엄하게 “어중간한 마음가짐으로 할 거면 시작도 하지 말아라. 정신 바짝 차리고 목숨 걸고 해야 한다”라고 하시더라. 선생님의 엄포에 정신이 번쩍 들었고, 마음을 더욱 굳히게 됐다. 

다양한 무용 장르 중 한국무용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우선 발레나 현대 무용을 하기엔 키가 좀 작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 때 아킬레스건 부상 이후 포인이 잘 안 된다. 아직까지도 통증이 있어 치료를 계속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외국 무용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더불어 한국의 전통 음악과 춤이 가지는 맛이 나랑 잘 맞아서 더 그쪽으로 마음이 갔다. 그리고 쫄쫄이 바지가 입기가 싫었다.(웃음) 멋있는 한국무용 의상에 조금 더 끌렸던 게 사실이다. 

대학교 1학년 때는 발레, 현대무용, 한국무용 세 가지를 모두 배웠다. 2학년 올라가면서 정확하게 한국무용으로 진로를 정하게 됐다. 박재희 교수님 문하생으로 있으면서 한국무용의 매력과 깊이를 느끼게 됐고, 이 춤이 내가 가야할 길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한국 무용가로서 전건호의 춤이 가지는 강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전공인 한국 창작 무용과 외국 컨템퍼러리 댄스, 댄스 스포츠 등이 결합된 시도를 많이 해오고 있다. 색감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이는 박재희 교수님의 단아함, 박시종 선생님의 서정적인 시적 표현을 토대로 나만의 해석이 더해진 새로운 표현이다. 일방적인 퍼포먼스가 아닌 행위자가 공연을 통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관객이 반응으로 답하는 상호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놀이와 같은 총체적 공연 형태를 즐긴다. 점점 ‘장르 파괴’ 작품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나 또한 그 사이에서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다. 한국 춤의 정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파괴를 위해서는 정체성을 깨고 나오는 새로운 시도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고정관념에 갇혀 있지 않고 도전하는 나의 예술적 지향점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2012년에는 무용인들의 꿈의 무대인 서울무용제에서 대상 수상작인 박시종무용단의 <나와 나타샤와 시인> 주역 무용수로 출연하며 ‘전건호’라는 이름이 무용계에 더욱 각인된 계기를 만들었다. 큰 무대에서 중요한 역을 맡았는데 호평으로 이어졌으니 그 감동이 더욱 컸을 것 같다.

청주시립무용단 수석무용수 자리를 내려놓고 나온 후 만났던 작품이다. 7년 9개월 정도 무용단 생활을 하다 보니 내 안에 갈증이 생기더라. 반복적인 루틴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고 싶어졌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선 우선 돈이 필요한데, 무용만으로는 큰 수입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시작한 게 음식점 경영이었다.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와 나타샤와 시인> 작품 출연 제안을 받았다. 음식점 서빙을 하면서 안무를 생각하고, 밥을 비벼가면서 당나귀의 동작을 머릿속에 그렸다. 어렵게 공연을 준비한 만큼 배역에 대한 욕심도 커서 다양한 표현 방식을 연구했다. 그 중 말에 대한 육감적인 움직임을 안무로 생각해냈는데 그게 반응이 좋았다. 문득 떠오른 하나의 표현이 작품을 받치는 기둥이 된 경험이 굉장히 고무적이었다. 

이렇게 즐겁게 작업한 작품이 대상까지 받게 되니 더없이 기뻤다. 모두가 치열하게 준비했지만 상에 대한 기대는 없었다. 포기하고 있던 순간 호명이 됐는데, 그 순간은 아마 평생 잊지 못 할 것 같다.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상은 그 어떤 보상보다 큰 자부심을 준다. 그때의 감동이 나를 지금으로 이끌었다. 진정성으로 다가간 캐릭터가 사랑받은 경험이 매우 귀했고, 다른 캐릭터들에도 욕심이 그리고 자신감이 생겼다. <나와 나타샤와 시인>을 만나기 전 개인적으로 침체기가 있었는데, 작품으로 하여금 다시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는 점에서 참 감사하다.

▲무용가 전건호의 활동 모습
▲무용가 전건호의 활동 모습

국내뿐만 아니라 한ㆍ중ㆍ일을 비롯한 동아시아 전반에 걸친 활동 반경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국 무용 그 중에서도 한국 창작춤은 대중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냉정한 현실인데, 해외에서의 반응은 어떠했나?

외국에서는 창작춤이라 하면 보통 컨템퍼러리 댄스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때문에 그들에게 전통춤은 조금 낯선 장르일 수 있다. 그럼에도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가지고 나갔을 때 항상 반응이 좋았다. 꽃이나 부채를 사용하는 안무들의 아름다움과 학 의상을 입고 선보이는 학춤을 매우 흥미로워했다. 

갑자기 초청을 받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한 번은 가족들과 일본 여행을 갔다가 공연 출연 요청을 받았다. 한·중·일 동아시아 문화도시 초청공연의 일환인 일본 니카타 마츠리춤 축제 무대였는데 즉석에서 솔로로 ‘심봉사 답답하야’를 하게 됐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과 중국, 일본의 젓가락 문화를 한자리에서 선보이는 ‘젓가락 페스티벌’에도 초청을 받았다. 이 무대 역시 급하게 연락을 받았는데, 피아노와 가야금, 첼로 연주자 분들을 섭외해서 일주일 만에 창작물을 탄생시켰다. 일주일 준비한 것 치고 만족스러운 결과였다.(웃음)

전통을 바탕으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한국 창작춤을 선보이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용은 여전히 대중들과 거리가 있는 공연 장르이다.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필요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대중에게 무용은 여전히 소외되어 있는 순수예술이다. 이에 대한 대안은 새로운 콘텐츠의 개발이며, 이러한 콘텐츠들이 플랫폼 안에서 많이 노출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댄싱9을 시작으로 여러 장르의 춤이 매체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다뤄지고 있다. 방송 쪽으로도 그렇고, 예술가들이 스스로 새로운 콘텐츠를 많이 개발해서 대중에게 끊임없이 어필해야 한다. 

천재만이 예술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옛날 철학적 예술 사조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메를로 퐁티가 말한 ‘지각의 현상학’의 내용처럼, 우리는 세계를 사유하면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지각하며 세계를 이해한다. 부딪히고 직접 느끼면서 새로운 세계를 이해하게 되는데, 대중에게 이를 보여주지 않고 이해받길 원하는 것은 욕심이라 생각한다. 예술 하는 사람들끼리의 잔치로 남겨선 안 된다. 예술을 모르는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관심을 가질만한 콘텐츠가 필요한 시점이다. 

코로나 시대가 불러온 ‘메타버스’ 붐을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가상공간 속 극장에 영화처럼 편집된 무용 작품을 선보이며, 실제로 보고 싶다는 감각의 전이를 일으키고 싶다. 발전된 영상 기술로 무용가들의 발 디딤 하나, 숨소리 하나까지 재현해낸다면 실제로 보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하기에 충분할 것 같다. 

▲청주시립무용단 ‘나와 나타샤와 시인’ 공연 장면

무용의 영상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공연의 영상화가 점차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데,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무대예술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가 현장성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찰나에만 느낄 수 있는 감동과 그 잔향을 간직할 수 있는 희소성은 영상으로 대체될 수 없을 것이다. 공연 영상을 실제 관람의 대체재로서가 아니라 부가적 콘텐츠로 보는 것이 더 마땅하다고 본다. 실황 영상을 관람하는 관객 중 촬영분에 만족하는 사람보다 직접 공연장에 가서 관람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라는 뜻이다. 즉, 무대예술의 영상화는 관객을 공연장으로 데려올 수 있는 하나의 홍보 콘텐츠이다. 

단순히 무용(영상)만 올려서 그걸 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접근하는 방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부분이다. 에리카 피셔-리히테의 <수행성의 미학>을 바탕으로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예전처럼 사각형 무대 안에서 행위자들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 또한 행위자가 될 수 있다. 공동체가 되어 작품을 함께 영위하고, 역치성으로 인해 변화가 생기는 것이다.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소통 루트들이 개발되어야만 대중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

공연예술은 실연을 관람한 관객을 통해서만 기억될 수 있다. 기록되지 않는 장르를 기록으로 남긴다는 점에서 공연예술 평론은 문학⋅미술⋅영화 등의 장르에 비해 훨씬 위력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중 무용 평론은 다른 공연예술 장르에 비해 그 수가 적다는 점에서 더욱 희소성을 갖기도 하며 영향력 또한 크다. 평론뿐만 아니라 관객들과 더욱 활발하게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마련되어야 무용이 더욱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무용하는 사람도 평론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재적 평론, 메타 비평 등 평론의 방식도 점차 다양해지고 있다. 평론의 방식, 기준에 대해 인지하고 있어야 작품에 대한 평가를 이해하기가 수월하고, 이를 토대로 발전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작품을 본격적으로 선보이기 전, ‘프리뷰’ 기간을 두지 않나. 이를 통해 언론의 반응을 살피기도 하고 내부적으로 수정 방안도 논의하는데 이 기간이 좀 더 효과적으로 활용되었으면 한다. 관객들이 어려워하다보니 이를 지나치게 의식해, 예술작품이 점점 대중들의 관점에만 맞춰지는 경우도 생기는 것 같다. 작품 제목 따로, 음악 따로 안무가의 의도 따로. 이에 대한 내부적 성찰도 필요하다. 댄서들은 안무가의 요청과 의도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안무가들이 지금보다 조금 더 공부해서 작품성을 끌어올리는 노력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는 무용가 전건호 ⓒ김재성 작가

지역 무용계가 대ㆍ내외적으로 위축되고 있는 가운데, 충북을 기반으로 한 ‘창작 춤 집단 휘랑’은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지난해 이육사의 시 ‘광야(廣野)’를 모티브로 한 <내 노래의 씨>를 서울무용제 경연무대에서 선보이며 호평을 받기도 했다. 어려운 창작 환경에서도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인가?

예술가로서 진보적인 성향과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의식이 아닐까. 그런 것이 없으면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매일 정체되지 않고 앞으로 계속 발전해나가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가 있다. 안무하고 작품을 출품하는 과정은 힘들지만, 출품하고 난 뒤의 기쁨은 더할 나위 없다. 작품에 대한 욕심이 많다 보니 돈도 많이 쓰게 된다. 몇 백 들여 세트를 만들어 놓고 무대에 올리지 못 한 경우도 있다. 아쉽긴 하지만 작품에 있어서 이런 시행착오는 나의 경험이 되기 때문에 전혀 아깝지 않다. 무용에 빠질 수 없는 게 음악이다 보니, 무용 음악 작곡도 생각하고 있다.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음악을 찾다 보니 모든 장르에 욕심이 생기는 것 같다. 24시간이 모자라다. 하루가 48시간이었으면 좋겠다.(웃음)

무용도, 사업도 다 잘 해내고 싶지만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이다. 문화부 기자인 아내와의 시너지가 있는데 이것이 나를 지치지 않게 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가라앉을 때마다, 등짝을 때려주고 위로해준다. 예술이라는 공통적인 관심사가 있어서 대화도 많고, 그 대화가 굉장히 건설적이다. 아내가 타 장르에 대해서도 지식이 해박하다 보니 이야기도 많이 듣고 도움도 받는다. 오히려 내가 무용과 관련해 물어보는 경우도 생긴다.

아내와 아이들은 무용 활동뿐만 아니라 내 삶의 원동력이다. 식당 때문에 무용을 그만둬야 할 상황이 생긴다고 그만둘 일은 없을 테지만, 만약 내가 무용을 하는 게 가족에게 짐이 된다면 그만둘 것이다. 그만큼 가족이 소중하다. 

그렇다면 ‘전건호’를 움직이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욕심인 것 같다.(웃음)

올해 공연 계획이 궁금하다.

규모가 작은 작품부터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 변화된 상황에서 앞으로 나아가기가 두려울 때, 박지성 선수를 떠올린다. 박지성 선수가 네덜란드에 처음 갔을 때 공이 오는 것 자체가 두렵고 떨렸다고 하더라.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패스, 드리블부터 다시 차근차근 해나가며 스스로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북돋았다고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소규모 작품부터 시작하며 ‘잘했어, 건호야’라고 나 자신을 다독이며 대작으로 나아가는 기회를 다시 밟아보고 싶다. 다른 분들의 작품에 참여하는 것을 제외하고, 내가 만든 작품으로는 올해 단 하나의 작품만을 염두 해두고 있다. 10월 정도로 예상하고 있는데 아직 날짜가 픽스된 건 아니다.

어떤 무용가가 되고 싶은지?

올해는 그간 해오던 장르를 파괴해, 대중에게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는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소재는 삶과 죽음이다. 진부한 진리이지만,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문제이다. 산다는 건 결국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 아닌가. 어떻게 죽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죽음을 통해, 어떻게 살았느냐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마련되길 바란다. 이 작품을 보고 느껴지는 먹먹함이 관객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가 죽음 앞에 후회 없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값진 삶을 살아가고 싶지 않을까. 덧붙여 소통하는 무용을 하고 싶다. 처음 보는 사람에겐 무용의 언어가 어렵지 않나. 그걸 최대한 쉽게 표현하고 싶다. 

▲무용가 전건호 ⓒ박재성 작가
▲무용가 전건호 ⓒ김재성 작가

앞으로의 포부를 전하자면?

올해 46살인데 갈수록 아픈 곳이 많아지고, 움직임에도 과부하가 오고 있다. 하고 싶은 움직임을 조금씩 내려놓게 된다. 20대의 움직임과 같을 수 없겠지만, 나는 지금의 움직임이 너무 좋다. 절제하고 여백을 두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 깨달음을 가지고 더 성숙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전건호‘라 하면 테크니컬하고 아크로바틱한 움직임을 떠올리셨을 텐데, 이제는 그 이미지가 바뀌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부터는 ‘전건호의 춤이 맞나’라는 의심을 가질 수 있게끔 변신을 시도해보려 한다. 수상 소감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변화를 통해 다시 한 번 수상의 영광을 얻을 수 있기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