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신의 장터이야기 60
언제부턴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장(場)에 나오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한복보다 편한 옷이 많아진 까닭도 있지만, 그보다 생활문화가 바뀐 탓이다.
요즘 들어 편리하다는 이유로 멋을 잊어가는 것 같아 아쉽다.
다기(茶器)를 이용해 서너 번 우려 낸 녹차를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마셔야 제맛을 느낄 수 있는데,
테이크 아웃처럼 들고 다니면서 마시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한복 입기의 절차가 녹차를 우려 마시는 행위와
묘하게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부쩍 든다.
내가 어렸을 적에는, 장날이면 온 동네가 잔치집처럼 분주했다.
앞집이건 뒷집이건 토방 위에 하얀 고무신이 가지런히 누워있었고,
동구 밖 태극기가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동네 어르신들이 장롱속에 든 한복을 차려입고 장터 나들이를 갔었다.
햇빛이 내리는 날,
하얀 한복을 입고 저수지 강둑을 걸어가는 동산 아재의 뒷모습을 떠올리면
내 고향 마을이 생생하게 살아나 내게 말을 걸어온다.
옛날 사진 속에는 내 고향이 들어 있고,
장터만의 고유한 멋이 들어 있고,
그 너머에 정(情)이 들어 있다.
저작권자 © 서울문화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