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nterview]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 “서울이 좋은 도시인 이유, SeMA 덕분이길 바라”
[Special Interview]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 “서울이 좋은 도시인 이유, SeMA 덕분이길 바라”
  • 이은영 발행인ㆍ이지완 기자/김바울 사진 기자
  • 승인 2023.10.11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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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 6개월, 198명의 직원 만나 SeMA 구석구석 알아가
‘서울’을 향한 세계 미술계 관심, 잘 활용해야 해
한국계 미술계 중진으로써, 각자의 다양성 지키며 협력하는 관계 추구
국공립 미술관 역할 ‘공공성’, 공공의 역할 언제나 생각해야해
내년 SeMA, 상반기 ‘건축 축제’ 하반기 ‘소장품 전시’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발행인ㆍ이지완 기자/김바울 사진 기자] 지난 달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개막을 앞두고 있는 18일에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을 만났다. 본격적인 인터뷰 전, 사진 촬영이 먼저 이뤄졌다. 미술관 외부에서 진행된 사진 촬영에서 눈에 띤 것은 최 관장의 신발이었다. 최 관장은 비엔날레 준비와 여러 가지 일들로 현장을 뛰어다니고 있다며, 편안한 운동화를 신고 있는 자신의 차림새에 대한 얘기를 덧붙였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앞에서 최은주 관장이 미소를 띠고 앉아있다. ⓒ김바울 사진 기자

사진 촬영을 진행하면서, 사진 기자는 최 관장의 표정이 정말 부드럽다고 말했다. 이에 최 관장은 활짝 미소를 띠며 “제가 예전 경기도미술관장을 했을 때, 큐레이터들이 ‘친절한 은주씨’라고 불러줬습니다”라는 이야기로 화답했다. 최 관장은 이후 관장실로 올라가서, 당시 경기도미술관장 임기가 끝날 때 직원들로부터 받았던 명함 사이즈의 사진을 보여줬다. ‘친절한 은주씨’라는 글자가 적힌 사진이었다.

최 관장은 전시와 현장에 아주 밀접한 느낌이 드는 인물이다. 언론간담회나 공식석상에서 만나는 관장의 모습보다도, 현장에서 직원들과 함께 움직이며 뛰어다니는 모습이 더욱 익숙하다. 최 관장은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미술이론으로 석사, 미술교육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5년간 재직하며 학예연구실장, 덕수궁미술관장 등을 지냈다. 2015년 경기도미술관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2019년부터 최근까지 대구미술관 관장으로 근무했다. 국립미술관의 학예사로 시작해, 국립미술관과 지자체미술관을 모두 경험했고 수도권과 지방 미술관에서 경험을 축적해왔다.

1989년 큐레이터로 미술계에 진입해, 그는 차곡차곡 자신의 경력을 쌓았다. 그가 걸어온 길들은 이론과 실무로 차곡차곡 다져진 아주 비옥한 토양과도 같은 느낌이다. 인터뷰가 진행된 관장실 책상 위엔 도서관에서 빌린 여러 서적들이 놓여 있었다. 한 명의 작가를 알기 위해, 그의 개인전부터 그의 작품이 걸렸던 단체전과 기획전의 도록까지 빼곡하게 놓여있는 책상을 보면서 하나의 전시를 만들기 위해 쏟아 부어야 하는 시간과 열정, 에너지를 상상하게 됐다.

두 시간여 진행된 인터뷰는 최 관장이 걸어온 시간과 그 시간을 지닌 미술계 중진으로서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서울시는 최 관장 임명 당시 “선발시험위원회에서 영어로 발표한 국제적 역량 및 해외 교류사업 계획을 높게 평가했다. 후보자는 발표를 통해 해외 유명도시 및 작가와의 국제적 네트워킹을 통해 다수의 전시를 유치해, 서울시립미술관을 서울을 상징하는 공공미술관으로 성장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라고 임명 이유를 밝힌 바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경기도미술관, 대구미술관에서 최 관장은 국내 미술계에 대한 이해와 시야에 깊이를 더하면서 동시에, 세계 속으로 나아가고 있는 한국 문화예술과 함께 나아갔다. 올해 들어서 세계 미술계 속 ‘서울’이 가지고 있는 입지가 더욱 넓어지고 있다. 최 관장은 기관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곳을 움직이고 있는 이들의 성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말은 기관을 이끌어가고 있는 본인의 성장도 염두에 둔 발언일 것이다.

서울시립미술관(SeMA)의 관장이 된 지 6개월, 어떻게 보면 관장과 미술관이 합을 맞춰가고 있는 시기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마(SeMA)를 사랑하고 세마 조직과 함께 걸어가며, 세마의 미래를 꿈꾸는 최 관장의 대답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뚜렷하고 단단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것은 최 관장 스스로가 걸어온 길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본다. 서울의 미술관, 그리고 서울을 토대로 세계로 나아가는 서울시립미술관의 앞으로를 만나봤다.

서울시립미술관장으로 지난 3월 30일 취임 이후, 6개월 정도 흘렀다.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10월이 되면 딱 6개월에 들어선다. 많은 이들이 잘 아시다시피, 서울시립미술관 조직이 방대하다. 프로젝트도 많은 편이고, 6개월 간 업무를 파악하고, 직원 면담도 모두 실시했다. 공무직 직원들도 다 진행했는데, 면담을 끝내고 나니 인사이동이 이뤄졌고, 새로 들어온 직원들도 다시 만나는 자리를 만들었다. 현재 미술관의 정규직원은 96명이고, 기타 임기제 직원과 공무직 직원까지 합치면 198명이 된다. 한 사람 한 사람 다 만나서, 고충사항이나 희망사항 같은 것을 들어봤다.

공무직 면담까지 진행한 것은 이례적인 것 같다.

맞다. 공무직은 잘 안 만나는데, 이번에 면담을 진행했다. 꼭 만나고 싶단 생각이 있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본관, 분관 체제를 가지고 있고 그렇다보니 눈에 드러나지 않는 구석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다 만나봤고, 만난 게 굉장히 성공적이었다고 본다.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 공무직은 아니고, 시설직 직원과의 면담 사례다. 현재 우리 미술관 본관이 2002년에 완공이 됐는데, 옛 대법원 건물을 활용하게 되면서 미술 전시관으로서 완벽한 기능을 갖추고 있진 못하다. 항온, 항습 기능을 아예 못 갖추고 있다. 그래서 올해 에드워드 호퍼 전시를 열 때 많은 걱정들이 있었다. 특히 올여름은 유난히 덥고 습해서 항온, 항습 문제가 미술관의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그런데 다행히 캐리어 에어컨 회사에서 전시 기간 중에 에어컨 십 여대를 무상으로 설치해줬다. 전시가 끝나고는 이제 에어컨을 모두 철수하기로 했는데, 시설직 직원 면담 중에 직원분이 내게 “관장님, 에어컨을 기증받으시면 안 되겠습니까?”하고 제안을 했다.

항상 전시장을 관리하는 그 시설 직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에어컨이 있기 때문에 전시장 컨디션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만약 에어컨이 없어지면, 전시장이 지금 같은 상황으로는 유지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 얘기를 듣고 바로 캐리어와 만남을 가졌고, 결론적으로는 기증을 받게 됐다.

탁상공론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방대한 조직을 관리하다보면, 접점이 없는 분야에선 개선해야할 지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현장의 시각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개선이 있을 수 있었다. 직원 입장에서 제안을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일일 수 있는데 용기를 내줬고, 미술관에 큰 도움이 됐다. 정말 감사했다.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다.

▲인터뷰 질문에 답하고 있는 최은주 관장 ⓒ김바울 사진 기자

이건희컬렉션 기증 이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덕수궁관을 중심으로 박물관지구가 형성되고, 키아프, 프리즈의 서울 공동 개최 등으로 ‘서울’은 세계 미술계의 집중을 받게 됐다. 이 가운데 서울시립미술관장을 맡으면서 포부가 있을 것 같다.

프리즈는 개최되는 도시와 항상 긴밀한 관계를 맺는다. 프리즈 런던, 프리즈 LA등 항상 도시와 협력하는 구조를 띤다. 이번에 프리즈가 개최되는 시기에 ‘서울 아트 위크’도 함께 열렸다. 서울시가 프리즈 서울을 지원하는 걸 직접적으로 보고, 들을 수 있었다. 코엑스가 있는 삼성동에서 서울의 중요 지점으로 교통편을 운영한다든가, 팝업스토어나 인포메이션 센터 등을 운영하는 걸 봤다. 서울시립미술관도 프리즈 기간에 행사를 운영했다.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사전 행사를 열었고, 세계적인 미술계인사들이 현장을 찾아줬다. 미술관에서 운영하고 있는 작가들의 창작 스튜디오 공개행사도 열었는데, 관계자들이 작가들의 포트폴리오도 직접 보고 굉장히 좋은 반응들을 전했다. 세마의 성격을 잘 드러낼 수 있는 기회였다.

프리즈가 앞으로 3년 더 서울에서 개최된다. 지금부터 내년, 내후년을 준비하고 있다. 9월에 많은 미술계 인사들이 서울을 찾는다. 그렇기 때문에 1년 전시 중 가장 상징적인 전시를 9월에 선보여야 한다. 특히 국제적인 지점과 맞닿아있는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연구계획, 출판계획, 전시계획 등을 토대로 준비하고 있다. 올해보다 내년이 더 풍성한 축제가 될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5년 간 재직했고, 2015년엔 경기도미술관장을 역임했다. 2019년부터 최근까지 대구미술관장으로 근무했다. 국립 미술관과 지역 미술관 운영의 경험을 모두 가지고 있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면.

미술관을 분류할 때 사립, 공립, 대안 미술관의 영역으로 분류한다. 국공립 미술관은 공공성이 가장 중요한 지점이고, 이것이 국공립 미술관의 공통점이다. 왜나하면, 국립미술관은 거의 전적으로 국가에서 운영예산이 나오고, 서울시립미술관은 서울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 국공립 미술관은 공적 재원, 즉 세금에 대한 예산 의존도가 90% 이상이다. 그만큼, 공적인 역할에 집중해야 하고 그 가치가 흔들리지 않도록 노력해야한다.

그 공적인 역할이 무엇인가 살펴보면, 국민의 세금, 시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재원을 가지고 소장품을 구축하는 일, 연구하는 일, 전시를 만드는 일, 교육을 하는 일이다. 그리고 미술관을 토대로 진행되는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까지도 이 공공성을 기반으로 움직여야 한다. 국립미술관, 지자체 미술관은 우리가 ‘공공성’이라고 얘기하는 영역 안에서 의식을 정립하고 활동해야 한다.

차이점은 자리의 무게, 시야의 범위 같은 것이라고 느낀다. 국립미술관에서 일할 때는 알게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어깨가 무거웠던 것 같다. 주무부서장, 학예실장, 덕수궁관 관장 등을 맡았는데,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행동의 한 가지가 큰 무게감이 있었다. 무겁다는 것은 그런 것들이다. 국가 기관의 조직이 50년을 갈지, 100년을 갈지, 그 이상을 갈 수도 있을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올해의 작가’를 선정한다고 했을 때, 내 말 한마디 단어 선택 하나가 언제까지 남아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단어, 말들이 가지게 될 힘들이 무거웠던 것 같다. 그래서 실행 단계부터 결과에 이르는 모든 단계가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메르세데스 아스필리쿠에타, 〈다섯 번의 주문과 노래 한곡 I~V>, 2023. 제12회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이것 역시 지도》 전시 전경, 서울시립미술관, 2023. ⓒ글림워커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지자체 미술관의 경우 포커스가 지역 사회로 좁혀진다. 어떻게 보면, 원래 하고 있던 일의 범위가 줄어들어서 위축될 수도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되레 지역 사회로 시야를 좁히면, 그 지역 안에서 굉장히 살려낼 것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지자체 미술관에선 그것들을 살려 온 시간을 보냈다. 만약 내가 서울 중심으로만 활동을 했다면 못했을 경험들을 참 많이 했다. 경기도미술관장을 하면서 경기도를 이해하게 됐고, 대구에선 대구를 이해하게 됐다.

경기도가 정말 넓은 지역이라는 걸 알게 됐다. 경기도는 서해, 강원도, DMZ, 충청도와 모두 맞닿아있다. 그리고 경기도라는 곳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다 집중돼 있는 곳이었다. 경기도에 공단이 만들어지면서 노동, 산업 문제를 만날 수 있었고 공장노동자 대다수가 여성이었기에 여성문제도 만났다. 아파트, 신도시의 문제도 얽혀있고 DMZ도 맞닿아있어 분단의 문제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경기도미술관장으로 부임했던 때가 2015년 4월이었는데, 딱 세월호 참사 1주기 3일 전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사회적 참사의 현장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때 경기도에서 만 4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서울에만 있었으면 미술계의 우물 안 개구리였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걱정을 과감하게 떨치는 시간이었다.

대구는 또 서울, 경기권을 벗어난 경험을 하게 해 준 도시였다. 대구라는 도시는 우리나라에서 문화예술의 전통이 강하고 센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곳에서 정말 훌륭한 작가들을 많이 만났다. 서울에서 서울 중심으로 대구를 잠깐 잠깐 만났다면, 할 수 없는 경험들을 했다. 대구를 더욱 깊이 있게 들여다봤고, 그렇기 때문에 대구미술관 10주년 기념전 《때와 땅》을 기획할 수 있었다. 1920년부터 1950년까지의 대구 근대미술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다티스트’라는 연례전을 통해 대구에서 높은 예술적 기량을 가진 작가들을 전국구로 소개할 수 있었다. 대구미술계를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자부하는 시간들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은 3개의 분관 이외에도 서울시립 미술 아카이브, SeMA 창고 등 여러 공간들을 가지고 있다. 서울 곳곳에 흩어진 이 공간들을 잘 아우르고 이끄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이에 대한 계획이나 비전이 있다면.

관장이 되고 업무를 파악하면서, 세마가 분관 체제를 잘 운영하고자 하는 고민을 정말 열심히 해왔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 각지로 미술관이 흩어져있기 때문에, 자칫하면 미술관들이 ‘서울시립미술관’이라는 이름만 같이 갖고 있고 다 따로 놀 수 있다. 그런데 세마가 어떻게 이 체제를 운영하고 있는지 봤더니, 20년도부터 매해 기관 의제와 전시 의제를 설정하고, 그 의제를 중심으로 전관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왔다. 즉, 각 관의 다양성은 가지면서도 이 의제 안에서는 조화롭게 같이 움직일 수 있도록 구조가 돼 있는 것이다. 20년부터 그 의제가 쭉 전개돼 왔고, 지금도 내년 의제에 맞춰서 맹렬하게 움직이고 있다. 전시 계획뿐만 아니라 연구 계획, 출판물 계획까지도 의제들을 따라서 돌아가고 있다.

오는 24년에 1기 의제 설정이 끝난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25년부터 29년까지의 차후 5년의 의제를 개발하는 작업에 들어가려 하고 있다. 현대미술의 트렌드 방향성, 한국 현대미술의 특성, 한국현대미술에서 간과된 지점을 이끌어내려 한다. 또 24년부터는 서서울미술관과 사진미술관 등 새로운 두 곳이 더 생기기 때문에, 사진과 미디어분야까지 아우를 수 있는 흐름들을 담으려 하고 있다.

미술관 리모델링과 분관 개관 등을 앞두고 내년 서울시립미술관의 전시 의제가 ‘건축’으로 설정됐다. 미술관의 행정적인 사업을 연구적인 측면에서도 다룬다는 것이 새로웠다. 미술관에서 ‘건축’을 다룬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 어떤 계획들이 있는지.

세마가 왜 ‘건축’의제를 택했을까 추측해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던 것 같다. 먼저 서소문 본관의 리모델링 의제가 있고, 또 새로운 분관의 개관이 준비되고 있었다. 건축 의제는 세마가 꼭 한 번 다뤄야 하는 주제였다. 그리고 내년도 기관 의제가 ‘연결’이다. 내년도는 이제 미술관의 분관들이 더욱 견고하게 드러나는 때인데, 이 과정에서 미술관이 어떻게 정체성을 찾고 분관별 연결점을 잡아나갈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었다. 당연한 순서였다.

미술관은 ‘건축’의제를 통해서 해외의 건축 거장을 초청하려하고 있고, 지금 굉장히 맹렬하게 접촉하고 있다. 세마의 리모델링과 분관의 개관, 또 얼마 전 개관한 서울시립아카이브관에 대해 시사점을 줄 수 있는 건축 거장을 찾았고, 마지막 방점을 찍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단계다.

건축 주제전도 2개 정도 준비하고 있다. 하나는 좀 큰 주제를 다루고, 하나는 좀 작게 갈 것 같다. 요즘은 건축에도 여러 실험성들이 요구되고 있다. 건축적 요소가 인테리어로 스며들고, 인테리어적 요소는 또 현대미술하고도 연결된다. 그런 지점에서 키워들을 뽑아서 전시를 기획하고자 한다. 그리고 현재 분관 개관, 리모델링을 앞두고 있는 미술관에서는 건축 소재 전시물들이 굉장히 많이 파생될 수 있다. 새로운 공간들을 만들기 위해서 논의됐던 수많은 건축적 자료들이 남아 있고, 그것도 전시가 될 수 있다. ‘세마의 공간들이 어떻게 형성돼 갔고, 지금 어떤 활동을 하고 있고, 이것이 어떻게 연결될 거다’ 이런 걸 좀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내년 상반기는 이런 식으로 ‘건축 페스티벌’ 느낌을 만들어보고 싶다. 그리고 하반기에 프리즈 기간에는 ‘연결’이라는 의제로 전관을 세마의 소장품으로 묶을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아마 10월 말, 11월 초면 내년도 전시 계획을 발표할 텐데 그때 좀 더 완벽하게 준비된 계획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복도에서 최은주 관장이 촬영에 응하고 있다. ⓒ김바울 사진 기자

한국미술계의 중진으로 자리하고 있다. 관장이 아닌, 미술계 인사로서 한국미술계 안에서 꿈꾸고 있는 일이 있다면.

1989년 큐레이터 일을 시작해서, 기관장도 여러 번 겪으면서 지금에 왔다. 돌아보고, 만나보면 미술계의 고질적인 병폐도 있고, 한국이라는 나라의 미술계가 갖는 한계도 있다. 그런데 지금이 그 병폐와 한계가 저절로 깨져가고 있는 시점인 것 같다. 대한민국이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의 국가로 진입했다. 그것은 생활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몇 년간 미술 시장의 주요 이슈는 MZ세대의 시장 진입이었다. 그런 경향은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소득수준이 달라졌기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이었다. 물론 부동산, 비트코인 등으로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다고 하지만 한 번 생긴 운동성은 완전히 과거로 돌아가진 않는다. 이 방향성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세계적인 차원에서도 서울이 뜨고 있는 상황이다. 홍콩은 중국의 정치적 상황으로 죽어가고 있고, 일본은 도쿄가 가지고 있는 아날로그적 성향과 불안정한 일본 경제 상황들로 저물어가는 수순이다. 어떻게 보면 세계 미술계의 시선이 한국으로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지금 한국 미술계를 위한 조언을 한다면, 미국 뉴욕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뉴욕에는 모마, 휘트니, 구겐하임 등 정말 세계적인 미술관이 다 모여있다. 그런데 그 한 도시에 그런 미술관들이 함께 공생하고 서로를 존중하면서 각자 미술관의 독자성과 개별성을 지켜나가고 있다. 한국의 서울도 할 수 있다고 본다.

지구는 둥글다. 서울과 뉴욕은 정말 멀고, 서울도 세계적인 매력 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 서울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 세마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믿고 나아가야 한다. 이렇게 기회가 왔을 때 잘 키워나가야 한다. 그래서 세계 미술계가 1년에 한 번은 꼭 한국에 가야한다, 그곳에 가면 뛰어난 작가들을 만날 수 있고 활발한 미술계를 만날 수 있다는 얘기를 할 수 있게끔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본다. 그 과정에 세마가 큰 일조를 할 수 있게끔 하고 싶다.

개관 35주년을 맞은 서울시립미술관은 이제 청년기에 돌입했다. 앞으로 미술관을 어떻게 이끌어 나가고 싶은지.

기관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관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성장해야 한다. 기관장을 하면서, 나는 나 혼자 성장하지 않았다. 나와 함께 경기도미술관과 대구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이 성장할 기회가 있었다.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들의 역량을 발굴하고 육성하고,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싶다. 그리고 탁월한 인재들이 눈에 보인다. 성심성의껏 육성하고 싶다.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잘 소화하게끔 환경을 만들고 지원할 것이다. 내가 이 자리를 떠나도, 기관이 잘 성장할 수 있는 틀은 만들어놓고자 한다. 큐레이터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그들의 관심사가 뭔지 파악하고, 그들의 관심사가 기획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마침내 그 기획이 성공적으로 완수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기관에서 일하는 이들이 ‘내 성장이 기관의 성장이다’라는 확신이 들고 그렇게 움직일 때 기관은 변하고, 주목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조직을 이끌어가고 싶다.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가 개막했다. 비엔날레를 찾는 시민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

올해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는 처음으로 예술감독을 공개모집해 비엔날레를 꾸렸다. 예술감독이 네덜란드와 한국을 오가면서, 굉장히 착실하고 성실하게 비엔날레를 준비해줬다. 프리즈 기간에 중간 점검도 했었고, 모든 것이 아주 순조롭게 진행됐다. 연결, 나눔, 공유 등을 키워드로 ‘이것 역시 지도’라는 주제에 충실한 작가들이 많이 참여했다.

이번 비엔날레는 서울시 곳곳에서 펼쳐진다. 현대미술이 우리와 나의 삶으로 다가오는 자리를 만드는 비엔날레가 될 것이다. 내 의지로 새로운 지도를 그리고, 내 발걸음으로 지도를 그릴 수 있는 자리라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하고픈 말이 있다면.

지금 미술관의 분위기는 아주 좋다. 한 번은 아침에 직원이 찾아와서 “관장님 우리가 최고예요!” 이렇게 말하고 나가더라. 그 말은 서울시립미술관이 정말 최고라는 뜻도 있지만, 최고가 되고 싶다는 뜻도 담겨있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미술관 분위기가 고양돼 있고, 건강한 선의의 경쟁이 일어나고 있다. 앞으로의 전시를 기대해달라고 말하고 싶다.

많은 뉴요커들이 뉴욕을 사랑하는 이유가 뉴욕에 모마와 구겐하임 같은 세계적인 미술관이 있어서라고 한다. 나는 서울이 고향이다. 서울 사람이고, 서울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 나뿐만아니라 서울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 많은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 분들이 “세마가 있어서 서울이 참 좋아!”라는 말을 할 수 있길 바란다. 세마가 열심히 노력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