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Interview]김성용 국립현대무용단장 겸 예술감독 인터뷰 “‘정의로운 예술’ 하는 무용수들의 동료 될 것”
[Culture Interview]김성용 국립현대무용단장 겸 예술감독 인터뷰 “‘정의로운 예술’ 하는 무용수들의 동료 될 것”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3.11.15 1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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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하우스’ 신규 개관, 독립안무가 및 일반 관객 위한 열린 공간으로 활용
‘세종, 대구, 부산, 광주’로 이어질 지역상생 프로젝트…국내ㆍ해외 소개
내년 1월 오디션 통해 아시아 무용수 선발 ‘인잇’, 6월 해오름극장 공연
“임기 중 선보일 레퍼토리 작품 선발 인원, ‘시즌 무용수’로 활동”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발행인ㆍ진보연 기자]공기가 제법 서늘했던 지난 8일 인터뷰를 위해 찾은 국립현대무용단 댄스하우스에서, 엄마 손을 잡은 어린이들이 김성용 단장보다 먼저 기자들을 맞았다. 

무용단의 새 공간에서 마주한 낯선 광경은, 입구 유리문에 붙은 <한국x영국 어린이 무용 워크숍 대기실>이라는 문구로 설명됐다. 국립현대무용단은 이달 8일부터 12일까지 초등학교 1~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어린이 무용 워크숍을 개최했다. 타이틀이 제법 무거워 보이지만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는 매우 단순하면서 다정하다. ‘현대무용’을 낯설어하지 않도록, 어린이들을 춤의 세상으로 초대한 것이다. 참여 어린이들은 영국 무용수 에바 레카차ㆍ마이클 크로위와 함께 몸을 움직이며 자신이 생각하는 춤과 움직임을 상상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펼쳐내는 시간을 가졌다. 국립현대무용단은 어린이 무용 워크숍을 비롯해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토대로 추후 어린이 무용학교를 정규 프로그램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김성용 국립현대무용단장 겸 예술감독 ⓒBAKi
▲김성용 국립현대무용단장 겸 예술감독 ⓒBAKi

“무용은 말로 할 수 없는 말이다”라는 철학을 가진 김성용 단장은 ‘가장 진실한 표현도구’로서의 춤을 추구하며, 무엇보다 솔직하게 표현되어야 하는 예술임을 강조한다. 말로는 도저히 표현되지 않는 것들을 움직임으로 구현해내는 그에게 안무작업은 늘 새로움의 보고 속에서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가 개발한 ‘감각과 반응’에 집중한 무브먼트 리서치 ‘프로세스 인잇(Process init)’은 이런 그의 작업과정을 더욱 공고히 한다. 비정형적이면서도 창의적인 움직임을 이끌어내는 ‘Process init’을 통해 그의 안에 들어온 예술적 영감은 무대 위에 가시적인 형태로 구체화된다. 

15세에 무용을 시작한 그는 1997년 20세에 동아무용콩쿠르 금상을 최연소 수상, 일본 나고야 국제 현대무용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입상하는 등 무용수로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100여 편 이상 선보인 그의 안무작들은 해외 유수의 극장 및 국내에서 공연됐으며 다수의 수상 이력을 통해 그 능력을 검증한 바 있다. 김 단장은 2014년 제5회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 젊은예술가상 무용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대구시립무용단에서 보여준 행정능력은 40대 젊은 단체장으로서 새바람을 일으키며, 특유의 소통과 공감능력을 바탕으로 무용수들의 역량을 키우고 다양한 시도를 통해 무용단을 다각도로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지역상생 프로젝트’를 추진해, 지역 예술환경 개선에도 앞장설 예정이다. 세종, 대구, 부산, 광주 등의 주요 극장들과 협력해 이들 권역의 안무가들을 선정하고 이들의 작품을 제작, 2024년 하반기 축제형 플랫폼을 통해 소개할 계획이다.
김성용 단장은 지난달 21일부터 이달 초까지 현대무용에 관심있는 참가자들과 함께 <프로세스 인잇> 렉처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김 단장과 김미영 작가 그리고 무용수들은, 참가자들과 현대무용을 만드는 과정을 공유하며 장르에 대한 흥미를 높이고 문턱을 낮췄다. 아울러, 지난 3일 댄스하우스 개관식에서 행사 방문객들과 함께 프로젝트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MODAFE 2023 개막작으로 선정된 김성용 단장의 취임 후 첫 작품 <정글-감각과 반응>을 샘플로, 현대무용 작품의 제작과정을 관객들과 함께 들여다봤다. 

무용수에서 안무가로, 행정가로 자신의 창의적인 노선을 구축하고 있는 김성용 단장이 그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만들고자 하는 국립현대무용단은 어떤 모습일까? 김성용 단장을 만나, 그가 이끄는 국립현대무용단의 첫 움직임과 이어질 다음 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5월 취임 후 약 6개월이 지났다. 그간의 소회를 밝힌다면?

낯섦은 좀 덜해진 것 같다. 아직도 일을 계속 배워야 하겠지만, 그래도 매일 만나는 분들과는 편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을 정도의 분위기는 잡혔다. 공연도 한번 올라갔고 또 하나의 작품이 시작될 예정이니 여러모로 적응했다고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시스템 파악이 더 필요하다고 느끼기도 한다. 조밀하게 들어가면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부분들을 발견하게 된다. 규모는 다르더라도 하는 일은 비슷할 거로 생각했는데, 대구시립무용단에 있을 때와는 또 다르다. 신경 써야 하는 범위가 훨씬 넓어졌다. 생각 이상으로 국립현대무용단의 존재감이 크고, 사람들의 기대감도 높다는 것을 알았다. 설레기도 하고 긴장도 된다. 앞으로 더욱 편안하게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안무가에게 단장 겸 예술감독 자리를 맡겼을 땐 기대하는 예술적 역량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임무를 계속 상기하게 된다. 무용단의 정체성을 좀 더 강화하고, 더불어 우리나라에 부재한 안무센터 역할을 국립현대무용단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위에서 ‘국립현대무용단의 정체성이 뭔지 잘 모르겠다’라는 이야기를 왕왕 듣는다. 예술감독의 작품은 잘 안 보인다든가, 여러 사람(안무가)들의 작품이 국립현대무용단의 이름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더욱 혼란을 주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이 부분을 보다 분명하게 정리하고, 예술감독의 역량이 잘 비춰질 수 있도록 신경쓰려 한다. 더불어, 어떤 작품을 제작하고 레퍼토리화 하는 과정에서 우리 조직이 가지는 목적과 이를 어떻게 관리하는지가 정확하게 보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지난 9월 11일 기자간담회에서 국립현대무용단 신규 프로젝트 계획을 발표하고 있는 김성용 단장 ⓒ국립현대무용단
▲지난 9월 11일 기자간담회에서 국립현대무용단 신규 프로젝트 계획을 발표하고 있는 김성용 단장 ⓒ국립현대무용단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예술감독과 무용수들이 구심점이 되어 선보이는 무대를 통해, 국립현대무용단의 색채를 선명히 만들고 정체성을 강화하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취임 전 외부에서 봤을 때 무용단의 정체성은 무엇이라 생각했으며, 앞으로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강화해나갈 계획인지?

국립현대무용단 1대 감독님이 오셨을 당시, 무용수들 수업을 하는 게스트 티처 역할로 이곳에 출입했었다. 국립무용단이나 국립발레단이 있는 것처럼 국립현대무용단도 있어야 한다는 바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단체였지만, 모든 시작이 그렇듯 처음엔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 있었다.

학연, 지연 등에 얽매여 있지 않은 감독님이 수장이 되어 이끌어 가는 모습을 사람들이 보고 싶어 했고 기대가 모였던 단체였다. 시간이 흐르며 단체의 규모가 커지면서, 누군가 의도한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처음의 정체성이 조금씩 흐려지게 된 것 같다. 앞서 언급했듯, 안무센터가 부재하기 때문에 작품 제작 기회를 줄 수 있는 프로덕션 체제 운영 기관은 국립현대무용단이 거의 유일하게 됐다. 안무센터 역할을 해야 하는 기관의 부재로, 여러 역할이 합쳐지니 오히려 성격이 모호해진 것 같다. 외부에서 봤을 땐, 에이전시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어느 순간 예술감독의 작품은 보이지 않고, 외부의 프로덕션을 서포트하는 모양새가 된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 부분을 잘 정리해야 할 것 같다. 

완성된 작품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고자 하는 시나리오에 맞는 안무가를 초청하고 오디션을 통해 무용수를 선발해 프로젝트 팀이 꾸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야 원래 취지에서 벗어나지 않는 정체성을 계속 유지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서울 역삼동에 작품창작 및 관객개발을 위한 공간 ‘댄스하우스’가 개관했다. 물리적 기반이 부족한 독립 예술가들을 위한 작업 공간 및 일반 관객들을 위한 교육ㆍ체험 공간으로써의 역할을 할 것이라 밝힌 바 있는데, 앞으로의 활용 계획이 궁금하다. 

국립현대무용단은 예술의전당에 상주하고 있지만,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은 N연습동에 있는 작은 공간 두 곳뿐이다. 작품 리허설만 해도 이미 공간이 모자란 상황에서, 대국민 교육프로그램들과 무용수들을 위한 클래스들을 함께 진행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다. 가장 기본적으로 사용 가능한 공간들이 필요했고, 전용극장이 없는 무용단의 안정적인 공간 확보도 시급했다. 현재 예술의전당에 상주하고 있지만 자유소극장 이용도 대관 심사를 받아야 하는 입장이다. 작게나마 이런 것을 대체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것이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작업 환경이 열악한 독립안무가들을 위한 공간 제공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우선 우리 프로그램을 소화해보려 한다. 시범운영을 먼저 해보고, 실질적으로 이용 및 대관 가능한 시간 등을 검토해볼 예정이다. 사실 운영 과정에 있어서는 아직 해결되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있다. 공간이 생긴 것은 좋지만 이를 관리하는 것부터가 새로운 문제의 시작이다. 모든 것은 여러 부처의 예산과 연관이 되는데 유효한 예산 심사는 내년부터 가능하기 때문에, 지금은 직원들이 돌아가며 시설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아울러, 일반 관객들을 위한 교육ㆍ체험프로그램도 이곳에서 좀 더 다양하게 진행해보려 한다. 기존에는 공연 연습 스케줄을 우선으로 하고, 남는 짜투리 시간에 일반인 대상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실정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댄스하우스 오픈으로 공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프로그램 양 자체를 늘릴 수 있게 됐다. 대표적으로, 꾸준히 진행해 온 무용학교는 이번 주부터 월요일, 목요일, 토요일 이렇게 세 클래스로 돌아갈 예정이다. 또한, 코로나로 공연이 어려웠던 시기에 공들여 촬영했던 댄스필름을 좀 더 큰 스크린에서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상영회도 연말에 준비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분들이 현대무용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계속 다가가려 한다. 그냥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직접 몸을 움직여보는 프로그램도 있다. 이달 초까지 진행됐던 렉처 퍼포먼스 ‘프로세스 인잇’을 내년에는 좀 더 레귤러하게 운영할 예정이다. 

전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생김으로 인해, 자유롭게 창의적인 프로그램들을 기획해 볼 수 있는 게 가장 큰 메리트가 아닌가 싶다. 

댄스하우스 개관에 맞춰 선보인 ‘프로세스 인잇’은 일반 관객과 현대무용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공유함으로써 움직임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장르의 문턱을 낮추는 굉장히 좋은 시도다. 다만, 관객에게 현대무용 작품 안에서 보편적으로 표현되는 기본 동작의 해석을 알려주는 시간이 마련된다면 더 부담 없이 작품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관객들이 작품을 관람하며 동작이 지니는 의미를 궁금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말씀하신 부분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게 아니다. 그런데 이것이 오히려 작품에 대한 선입견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표현 방식은 사람마다 전부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키워드로 설명될 수 없다. 움직임 자체가 그 뜻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오히려 알려주고 싶었다. 무용은 움직임 행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정서가 표현되는 것이다. 음악과도 같다. 답을 주기보단, 관객들이 자기 나름대로 해석할 수 있는 접근법을 함께 찾아가고 싶다. 이 방법(렉처 퍼포먼스)이 절대적으로 맞다고 말씀드리기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이런 과정들이 사람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무용을 연극처럼 배운 것 같다. 메시지나 주제를 정하고, 도입과 전개 과정 그리고 결말의 흐름을 찾으려 한다. 모든 춤이 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하나의 주제나 메시지가 아니어도 된다는 인식이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 몸이 반응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 표현 방식이 다양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난 후에 비로소 무용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들어오면서 보니 엄마들 손을 잡고 온 어린이들이 많더라. 오늘 댄스하우스에서 진행된 어린이 프로그램은 어떤 것인지?

올해 무용학교는 일반 성인 대상으로 진행됐지만, 앞으로는 어린이 무용학교를 레귤러 프로그램으로 넣으려고 여러 시도를 해보고 있다. 오늘 진행한 프로그램도 그중 하나다. 묻고 답하고 몸을 움직이며 자신이 생각하는 춤과 움직임을 상상해볼 수 있는 어린이 무용 워크숍 ‘한국x영국 어린이 무용 워크숍’으로 영국 안무가 에바 레카차와 마이클 크로위가 참여했다. 글쓰기, 그리기 및 음직임 등 다양한 활동과 춤을 연결해 탐구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우리나라는 사실 어린이 무용 역사가 거의 없다. 과거 이탈리아에서 어린이 국제영화제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됐는데, 어린이를 존중하는 마음이나 접근하는 방법부터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정부의 예산으로 운영되는 기관이기 때문에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몇 년 정도는 지켜보고 제대로 진행해 성과를 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이를 위해 어린이 무용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이들과 함께 여러 프로그램을 시도해보고 있다. 

▲김성용 단장이 국립현대무용단 부임 후 처음 선보인 <정글-감각과 반응> 공연사진 ⓒ황인모
▲김성용 단장이 국립현대무용단 부임 후 처음 선보인 <정글-감각과 반응> 공연사진 ⓒ황인모

임기 내 ‘지역상생 프로젝트’ 신규 추진 계획을 밝혔다. 이곳에 오기 전 5년간(2017~2022) 대구시립무용단에서의 경험이 큰 영향을 줬으리라 생각되는데, 현재 지역 예술가들의 창작 환경은 어떠하며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대구에서 활동하면서 지역 무용 생태계의 상황을 제대로 알게 됐다. 30명 이상 상임 단원이 있는 무용단의 작품 제작 예산이 20년 동안 1억 원 남짓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 지역 무용인들이 지금도 살아가고 있다. 서울과 지역의 공정한 경쟁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서울 쏠림 현상이 너무 심각하다. 대구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들도 마찬가지이다. 조금 더하고 덜하고 차이일 뿐이다. 생존을 위해 서울로 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국립현대무용단은 뭘 하고 있을까? 이런 환경을 알기나 할까?’ 이런 생각을 계속하게 됐다. 지역에도 아주 열심히 하며, 서울과는 다른 맛을 내는 친구들이 많다. 그런데 이런 작품들이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서울권에서 형성된 트렌드나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이에 대한 대책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함께하게 됐다. 대구시립무용단 감독으로 있을 당시, 국립현대무용단 이사회 멤버로 회의에 참석해 ‘국립현대무용단은 우리나라 대표 단체이지 서울만의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하며 지역 무용인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요청드린 바 있다. 당시엔 국립현대무용단으로 올 거라는 생각을 못 했지만 말이다. 이곳에 오자마자 생각하고 있던 걸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정부의 정책 방향과도 잘 맞았다. 

다른 장르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판단하기에 수도권의 무용 작품을 단순히 지역에 소개하는 것으로는 ‘상생’할 수 없다. 훨씬 좋은 컨디션에서 만들어진 공연을 보고 나면 오히려 지역의 무용가들은 당연히 서울로 가고 싶어 한다. 작업 환경에서 큰 차이가 나는 걸 직접 경험하기 때문이다. 국립현대무용단은 해프닝이 그 지역에서 일어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지역 무용인들이 (국립현대무용단의) 작품을 제작하고, 그 안에서 무용수들과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싶다. 무용가뿐만 아니라 프로듀스도 해당 지역에서 배출될 수 있도록 발굴ㆍ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역별로 프로젝트팀을 꾸려 그들만의 고유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세종시(충청권역)와 부산을 다녀왔고 이달 말 광주와 대구 무용인들과도 만날 예정이다. 

선별된 작품들은 추후 축제 형태로 풀어낼 때, 국립현대무용단 레퍼토리와 같이 무대에 설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더불어, 서울과 지역 작품 구분 없이 한 팀으로 묶어 해외에 소개될 수 있는 유통 과정까지 케어할 예정이다. 서울 사람들이 오히려 지역을 부러워할 수 있는 환경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내년 1월 오디션을 통해 아시아 각국의 무용수를 선발해, 아시아 프로젝트 <인잇>을 6월 국립극장에서 선보인다. 이 프로젝트의 창작진은 모두 국내 스태프로 구성되고, 무용수들만 국내ㆍ해외로 구성되는 것인가? 구체적인 작품 내용과 추후 공연 계획까지 자세히 듣고 싶다. 

크리에이티브 팀은 국내 팀이 우선이지만, 해외 팀원의 참여 가능성도 열려있다. 아시아 각국에서 모이는 무용수는 가급적 한 나라에 한 명씩 선발하려 하고 있다. 우리나라 무용수들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람만 많이 모아놓고 구색 맞추기용으로 외국 사람 몇 명 끼워 넣는 방식을 가장 지양한다. 국립현대무용단이 만드는 컴퍼니 성격을 띤 팀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이 세계 각지에서 공연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세계 각국의 무용단에서 아시안들은 항상 주축을 맡고 있음에도 무시당할 때가 많다. 콧대를 꺾어놓겠다 보다는 우리도 뭉치면 이 정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김성용 국립현대무용단장 겸 예술감독 ⓒBAKi
▲김성용 국립현대무용단장 겸 예술감독 ⓒBAKi

국립현대무용단의 정규단원 문제는 이전부터 끊임없이 오고 갔다. 무용단이라면 상임 단원이 있어야 할 것 같다가도, 국립현대무용단은 오히려 프로젝트팀을 계속 발굴해내며 새로운 창작을 해 나가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도 드는데 이에 대한 의견이 궁금하다. 

장단점이 아주 확실한 논제인 것 같다. 대구에 있으면서 처음엔 (정규단원이 있는 것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나중엔 그들과 의지하면서 작품을 만들어 가게 됐다. 솔직히 모든 단원이 다 그랬던 건 아니다. 하지만 몇 명의 무용수라도 믿음을 주면 그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어 가는 건, 처음 만나서 단기간 내에 만드는 것과는 깊이가 다를 수밖에 없다. 이게 ‘컴퍼니 워크’구나, 느낄 수 있었다. 지금 국립현대무용단에서 그 부분은 좀 힘들다. 

정규 단원은 없지만, 무용단에 와서 처음 선보인 <정글>이라는 작품을 위해 선발한 18명의 무용수를 나름의 ‘시즌 무용수’라고 생각한다. 임기가 이제 2년 6개월 남았는데 적어도 나의 임기 동안은 이 작품은 계속 살아있고, <정글>이 무대에 오르는 동안만큼은 국립현대무용단의 무용수 하면 이 작품에 참여하는 이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감독의 임기가 있기 때문에 상임단원은 힘들 수 있지만, 그 임기 동안 함께할 수 있는 무용수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 활동하는 동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무용수로 알려질 수 있도록 단장으로서 많이 노력하겠다. 그들이 그 안에서 많은 걸 얻어가 다음에 좀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이들을 ‘시즌 무용수’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다. 
임기 중 마지막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게 2025년인데, 아직 공개하진 않았지만 스트릿 댄서들과의 협업도 생각하고 있다. 

무용수를 선발할 때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봤나?

18명을 뽑는데 150명이 지원했다. 그만큼 쉽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수동적으로 기량이 뛰어난 무용수보단 스스로 해석할 줄 알고 나름의 자기의식을 가진 무용수를 선발했다. 안무가의 자질을 갖춘 무용수를 원했다. 그런 친구들에게서 훨씬 다양한 것들이 나온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정글>을 처음 선보였지만, 작품이 완성됐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년 4월에 토월극장에서 비로소 완성된 작품을 선보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조금 더 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았지만, 그걸 끌어내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인간적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작업이고, 이를 위해서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작품이란, 아주 감각적인 작품보단 진정성이 담겨있는 것이다. 작품이 완성되기까지의 고민한 흔적과 시간이 담긴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 목표이다. 

임기 내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새로 시작하는 사업들이 자리를 잘 잡도록 하는 것이 가장 우선인 것 같다. 다음 감독님이 판단하시기에 좋은 사업이라면 이어 나갈 수 있도록, 팀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감독이 되고 싶다.

어떤 무용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벌써 10년 전인 것 같다. 이은영 대표님과의 인터뷰에서 ‘정의로운 예술가’가 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의’의 기준이 조금 변할 순 있지만, 적어도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무용가가 되고 싶다. 무작정 욕심을 좇기보단, 내가 좋아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않고 끝까지 무용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마지막으로 동료 무용가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용수로서 똑같이 고민하고 고생해봤기 때문에, 항상 그들의 편에 서고 싶다. 그리고 지금 있는 자리가 당연히 높은 자리가 아니라는 것도 인지하고 있다. 무용수들의 옆에서 지켜봐 주며, 전해야 할 내용들이 있으면 메신저 역할을 할 것이다. 무용수들의 정말 좋은 동료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