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현장과 현상 사이]최승희와 노재신
[윤중강의 현장과 현상 사이]최승희와 노재신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24.01.1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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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동양의 무희’로 알려진 최승희의 제자는 누군가? 김민자와 김백봉은 잘 안다. 최승희 제자로 훗날 영화배우로 이름을 날린 사람을 아는가? 노재신(1913. 7. 26 ~ 2003. 10. 27)이다. 

1930년, 6월 27일, 최승희무용발표회가 사리원에서 열렸을 때, 노재신은 몇몇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노재신 장계성 김은파양의 ‘농촌소녀의 춤’은 만장의 환영을 받았다.” (조선일보, 1930.07.02.) 최승희 무용공연을 본 기자는 특별히 그들의 장래성에 주목한다. 

아악춤과 정악춤 

같은 해 11월 14일, 경성 장곡천정공회당에서 열린 최승희무용발표회는 어떤가? 최승희는 조선음악에 바탕을 둔 두 작품을 발표했다. ‘조선아악’이라고 소개한 ‘장춘불로지곡’에는 김민자 장계성 김은파가 참여했다. ‘조선정악’이라고 소개한 ‘정토(淨土)의 무희’는 영산회상을 춤음악으로 삼은 것으로 짐작되며, 노재신, 장계성의 2인무였다. 

1931년 최승희는 심혈을 기울인 신작을 내놓는다. 1931년 9월 1일부터 3일간 단성사에서 열린 이 공연에서 노재신의 활약은 두드러진다. ‘미래는 청년의 것이다’ (재신, 민자. 정자, 경신. 정임) 등에서 활약했고, 막간의 번외(番外) 프로그램에선 노재신 솔로의 ‘소야곡’이었다. 같은 해 11월 23일, 역시 장곡천정공희당에서 열린 최승희무용발표회에서도, 막간에 ‘남양(南洋)의 밤’이란 제목의 노재신과 이정자 듀오였다. 노재신이 ‘남방무용’까지 가능했던 걸 알게 해준다. 1932년 1월 30일, 재만동포 위문공연 형태의 최승희와 토월회의 합동공연에서도 노재신은 ‘수도원’이란 작품에 출연했다. 

최승희무용연구소 1기 연구생 

스승 최승희와 제자 노재신은 어떻게 만났을까? 1929년 11월, 고시정(동자동) 19번지에 최승희 무용연구소가 개소되고 연구생을 모집했다. 당시 숙명여중을 다니다 가정 형편상 중퇴한 17세 소녀 노재신이 응모했다. 그녀는 최승희의 신임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최승희는 공연의 막간에 노재신을 적극 투입했고, ‘무대 체질’인 그녀는 그 순간에 관객을 사로잡았다. 그러함에도 노재신은 최승희 문하에서 나온다. 스승과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아니다. 제자 간의 문제였던 것 같다. ‘소내(所內)의 여러 가지 말 못할 원인으로 초지(初志)를 관찰하지 못하고 탈퇴’라는 기사를 통해서 짐작이 간다. 

춤계를 떠난 노재신은 이후 연극과 영화로 눈을 돌린다. 단역부터 시작해서 주역까지 따내게 된다. 이 시기는 또한 그녀의 결혼과 출산의 시기이기도 하다. 발성영화 춘향전(1935) 향단역할을 맡았고, ‘아리랑 고개’에선 양반집 규수(아랑) 역할로 격조가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노재신 일대의 최고작은 오몽녀(1937년 개봉)가 아닐까? 노재신은 엄앵란을 낳고도, 연기에 집중했다. 훗날 엄앵란도 어머니처럼 배우가 되었다. 

1930년대 영화판에서 활약한 김유영(1907~1940)은 ‘동작이 율동적으로 개성적 배우로’ 노재신을 평한다. 춤을 했던 것이 연기에 잘 반영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김유영은 사생활에서도 모범이 되는 노재신을 가리켜, ‘진실하고 아담함에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아담(雅淡)한 승무가 보고 싶다 

노재신이 최승희의 제자로 오래도록 남아 있었으면 어땠을까? 그녀는 배우를 하면서도 춤과 무대에 대한 열망은 늘 함깨 했던 것같다. 1939년 8월 15일, 조선일보의 한 가지가 쓴 기사를 옮긴다. 
 
“최승희여사의 문하에서 한동안 신무용을 연구하였던 만큼 재신(載信)양의 여흥은 아무래도 춤이요, 춤 중에서도 조선춤이요 그 중에서도 승무(僧舞)이다. 몇 해 전 그가 무대에 처음 나왔을 때 그는 단연 조선춤으로서 막간(幕間)을 장식하였다. 새카만 장삼을 입고 붉은 간덩이 같은 띠를 어깨에 메고, 흰 고깔을 쓴 재신! 그러나 어떻게 규격을 갖추고 추는 춤보다도 그냥 긴 치마 버선발로 추는 것이 더욱 좋다니 이거야말로 여흥장소에서 그를 만나면 꼭 한번 청하고 싶은 것 중의 하나다. ” 

노재신의 승무는 상상한다. 노재심의 승무는 아담(雅淡)했을 것이다. 아담하다란 말을 요즘은 적당히 자그마하다는 뜻으로 사용하지만, 원래 아담의 뜻은 고상하면서 담백하다는 말이다. 노재신의 연기가 그렇듯, 춤도 그럴 것이다. 지난해에도 많은 승무를 봤고, 올해도 그럴 것 같다. 저마다 춤 잘 춘다는 소문이 났지만, 아담(雅淡)한 승무는 만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