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진섭의 비평프리즘] 침묵의 언설 속에서 II
[윤진섭의 비평프리즘] 침묵의 언설 속에서 II
  • 윤진섭 미술평론가
  • 승인 2024.03.06 11: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펄섞인 원색의 횡적 주름
김근중 단색화 개성이자 고유성
▲윤진섭 미술평론가

<지난 호에 이어서>

그렇게 김근중은 모란에 집중하게 되었으며, 영어 단어를 비롯하여 만화에서 사용하는 말풍선, 동양화의 고전 등등이 바탕 전면에 깔리거나 모란의 옆에 병기되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변주를 이룬다. 색채가 현란한 가운데 모란꽃, 새 등 화면 전체를 화려하게 수놓은 대상들은 팝적 효과마저 발산하고 있다. 
                      
 “2천년대 중반부터 시작한 화조화 연작은 90년대 초반 이후 김근중이 시도해 온 다양한 화풍 중에서 가장 첨예하게 민화를 수용하여 밀고 나간 결과다. 이번 전시는 2005년에 가진 개인전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고 판단된다. 보다 화려해진 색채감에 영어 단어의 등장이 새롭게 눈에 띄고, 옛 민화의 이미지를 출력하여 그 위에 모란이나 파초 등을 그린 기법상의 새로운 시도가 그의 고뇌를 읽게 해 준다. 그러나 그의 화려한 언설은 이 시대에 한국화 화단이 처한 고뇌와 초조를 스치듯이 보여줄 뿐, 시대적 조류에의 편승에서 벗어나 김근중의 전 회화적 역량이 실린 것이라곤 보기 어렵다.”

- 졸고, <당대의 현실과 작가의 과제>, 미술세계 2008

이러한 지적은 김근중의 모란 그림이 지닌 팝적 당대성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지만 좀 더 무게있고 진중한 작업을 촉구한 것이다. 그 이후에 김근중은 팝적 가벼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보를 보였는데, 그러한 움직임은 2015-6년에 제작한 <꽃 이전>과 <존재 내 세계> 연작에 이르러 보다 추상화(抽象化)되고 해체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김근중의 작업에서 단색화적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2017년 무렵이었다. 이 시기에 이르면 꽃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면서 단색의 화면에 집중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군데군데 사포에 갈리고 남은 돌가루의 거친 물질감이 화면의 여기저기에 나타난 형국이었다. 노랑, 빨강, 청색, 베이지 등등 단색으로 이루어진 이 시기의 그림은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김근중 단색화의 초기적 양상을 보여준다. 

김근중은 2018년에 접어들어 현재 보는 것과 같은 단색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의 <자연존재/Natural Being)> 연작은 캔버스에 검정색이 가미된 돌가루를 대여섯 차례 바른 뒤 다양한 원색의 안료를 발라 사포로 갈아내서 바탕을 조성하는 끈질긴 노동의 산물이다. 다른 유형의  작품은 거즈를 바른 뒤 빨강, 노랑, 파랑, 녹색 등 원색의 안료를 칠하고 갈아내고 다시 칠하는 반복적인 과정을 수행한다. 김근중의 단색화 작품에는 공통적으로 원색의 진주색(pearl)이 첨가되는데, 그 이유는 고색창연한 옛날 색깔을 벗어나기 위해서라고 작가는 말한다.    

김근중의 단색화는 화면에서 조성된 마티엘 효과로 인해 퇴락한 벽을 연상시킨다. 반면에 거즈를 부착한 화면에서는 횡적으로 죽죽 간 주름의 흔적들이 도드라지게 나타나 있다. 이러한 질감들은 펄이 섞인 원색과 함께 작가의 독특한 취향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김근중의 단색화가 지닌 개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김근중 작품의 고유한 성질인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김근중의 작품 전반을 살펴보다가 1999년에 제작한 <본성-소통/Natural Being)> 연작들을 보게 되었다. 기관의 해체를 비롯하여 분리, 중첩, 등등 인체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을 통해 “몸이란 무엇인가?”란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 이 시기의 작품들은 그러나 끝내 미발표작으로 오랫동안 사장되었다. 나는 이 작품들을 보면서 만일 당시에 발표가 이루어졌다면 지금 김근중의 작업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보았다. 추후에 좀 더 충분한 시간을 갖고 면밀히 살펴보았으면 하는 희망과 함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