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학고재, 백남준·윤석남·김길후 3인전 《함(咸)》…“함께 만드는 새로운 길”
[현장스케치] 학고재, 백남준·윤석남·김길후 3인전 《함(咸)》…“함께 만드는 새로운 길”
  • 김연신 기자
  • 승인 2024.03.21 06: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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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 학고재 본관, 학고재 신관 지하 2층, 학고재 오룸
회화, 조각, 설치 등 총 36 점…백남준 작품 3점 출품
윤석남, 버려진 개 1,025마리를 나무로 형상화
김길후, 인생작 ‘사유의 손’과 드로잉 작품 공개

[서울문화투데이 김연신 기자] 백남준, 윤석남, 그리고 김길후. 저마다의 분야에서 강한 개성을 드러내 온 세 예술가의 작품이 모였다. 학고재갤러리에서 내달 20일까지 학고재 본관, 학고재 신관 지하 2층, 학고재 오룸에서 백남준·윤석남·김길후 3인전 《함(咸): Sentient Beings》이 열리고 있다.

▲백남준 Nam June PAIK, 구-일렉트로닉 포인트 Sfera-Punto Elettronico, 1990, 혼합 매체 Mixed media, 320x250x60cm (사진=학고재)
▲백남준 Nam June PAIK, 구-일렉트로닉 포인트 Sfera-Punto Elettronico, 1990, 혼합 매체 Mixed media, 320x250x60cm (사진=학고재)

함(咸)은 함께(together)라는 우리말에 들어가는 어근이다. 이번 전시는 백남준(白南準, 1932-2006)ㆍ윤석남(尹錫男, 1939-)ㆍ김길후(金佶煦, 1961-) 세 작가의 작품에 담겨 있는 ‘함께’에 주목한다. 

백남준은 세계의 ‘단절’에 주목했다. 1974년 백남준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가 같은 서구사회임에도 유럽에서는 읽히고, 미국에서는 읽지 않는 것을 보고 문화적 차이와 정보의 단절에 관심을 가지고 ‘정보 고속도로’라는 개념을 창안하게 된다. 그는 전세계적으로 이어진 ‘정보 고속도로’를 통해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연결되고, 소외받지 않는 사회를 꿈꿨다. 

백남준의 작품은 <W3>ㆍ<구-일렉트로닉 포인트(Sfera-Punto Elettronico)>ㆍ<인터넷 드웰러(Internet Dweller)> 총 세 작품이 출품된다. 64개의 TV 모니터로 이루어진 <W3>는 『주역』의 64괘를 뜻하는 동시에 미래의 인터넷 세상을 예견한다. <구-일렉트로닉 포인트>는 1990년 작품으로 냉전 종식 후 펼쳐진 당시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제창한 세계 화합의 가치를 기리는 작품이다. <인터넷 드웰러>는 1994년 인터넷으로 지식정보가 보편화돼 인류가 평등의 세계를 건설할 것이라는 작가의 믿음을 반영한다. 출품된 작품들은 우리가 세계(우주)와 ‘함께’하고 있음을 말한다. 

▲기자간담회 중 작품 옆에 서 설명하는 윤석남 작가의 모습이다.
▲기자간담회 중 작품 옆에 서 설명하는 윤석남 작가의 모습이다.

여성주의 작가로 입지를 다져온 윤석남 작가는 ‘여성’에서 ‘동물’로 주제를 확대해오며 여전히 약자들에 귀 기울이고 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남성중심주의를 넘어서 인간중심주의에서 탈피하고자 한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인 <1,025: 사람과 사람 없이>는 2008년에 완성한 연작으로, 버려진 나무를 수집해 버려진 유기견의 형상을 깎아 그 위에 먹으로 그려 완성한 작품이다. 작가는 버려진 개 1,025마리를 키우는 이애신 할머니의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고 그 길로 달려가 할머니와 개들을 만났다. 그 중 300여 마리는 아픈 개들이었고, 그 모습을 보고 작가는 버려진 개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개의 형상을 구현해내기 쉽지 않아 처음 2년은 나무 작업은 거의 하지 못하고 드로잉에만 매진했다. 그렇게 어느정도 익숙해진 다음, 이후 3년동안 1,400마리의 나무 개를 완성했다. 작업 시간만 하루 10시간에 달했고, 그렇게 완성된 개들은 전부 다른 모습과 표정을 하고 있다. 윤석남의 작품은 사람과 동물이 동등하다는 가정 하에 ‘함께’를 강조한다.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김길후 작가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김길후 작가

표현주의 작가, 김길후는 회화에 ‘김길후만의 표현성’을 담기 위해 재료나 양식을 바꿔가며 다양한 시도를 행해왔다. 그는 ‘현자(賢者)’와 ‘바른 깨우침(正覺)’의 의미를 회화로 표현하는 방법을 화두로 던진다. 작가는 “그림의 진실한 추구에서 여래(如來)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김길후의 회화 세계는 현자(부처)와 함께한다. 

김길후의 작품의 차별점은 속도와 무게를 동시에 가진다는 것이다. 작가는 오랜 시간 물성이 강한 작업을 통해 견고하고, 육중하고, 강렬한 느낌을 담아왔다. 그는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세계가 ‘자아의 상실’이라고 말한다. 작품에서 ‘자아’를 배제하기 위해, 빠른 필치로 무겁고 육중한 작품에 ‘속도감’을 더했다.

▲김길후 KIM Gil-hu, 사유의 손 The Thinking Hand, 2010, 캔버스에 혼합매체 Mixed media on canvas, 227x182cm (사진=학고재)
▲김길후 KIM Gil-hu, 사유의 손 The Thinking Hand, 2010, 캔버스에 혼합매체 Mixed media on canvas, 227x182cm (사진=학고재)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 중 <사유의 손>은 김 작가가 인생작으로 꼽아온 작품이다. 작가는 항상 말하는 작품의 감상법이 “그림 속에서 작가를 찾지 말고 너 자신을 찾아라”라는 것이라며,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흡족하진 않지만, 이 그림은 보는 사람마다 작품을 통해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는 점에서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본지 수상자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실제로 마주한 작품은 세월을 담듯 두텁게 중첩된 선들과 부드럽게 균열을 끌어안는 듯한 거대한 형상이 숙연한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학고재 신관에 전시중인 김길후 작가의 드로잉 작품들.
▲학고재 신관에 전시중인 김길후 작가의 드로잉 작품들.

학고재 신관에서는 그간 드로잉 작품을 공개하지 않았던 김 작가의 드로잉 연작도 만나볼 수 있다. 화사한 색채를 품은 드로잉 작품들은 ‘꿈 같은 삶’을 주제로, 작가가 일상에서 느껴온 감정과 생각을 담았다.

한편, 김길후 작가는 지난 1월, 본지 ‘서울문화투데이’ 제 15회 문화대상 수상자로 선정, 수상자 인터뷰를 진행한 바 있으며, 윤석남 작가는 지난 11월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두 작가의 웅숭깊은 작품세계를 담은 김길후 작가의 수상자 인터뷰와 윤석남 작가의 인터뷰 내용은 서울문화투데이 인터뷰 카테고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