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근대성·시간성을 비추는 ‘미지의 구름’…《호추니엔: 시간과 클라우드》
아시아 근대성·시간성을 비추는 ‘미지의 구름’…《호추니엔: 시간과 클라우드》
  • 김연신 기자
  • 승인 2024.06.13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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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8.4, 아트선재센터
역사와 신화, 현실과 상상, 과거와 현재 넘나들어
다양한 매체 통해 아시아 근대성, 역사, 정체성 탐구

[서울문화투데이 김연신 기자] 비판적 시각 연구자, 호추니엔의 20년에 걸친 작업 세계를 밀도 있게 다루는 전시가 열린다. 아트선재센터는 6월 4일부터 오는 8월 4일까지 싱가포르 작가, 호추니엔(Ho Tzu Nyen)의 전시, ≪호추니엔: 시간과 클라우드(Ho Tzu Nyen: Time & the Cloud)≫를 개최한다. 

▲호추니엔 작가. ⓒ남서원
▲호추니엔 작가. ⓒ남서원

호추니엔, 아시아 근대성과 시간성

이번 전시는 동시대 아시아의 복잡한 근대성의 층위를 지리적 국가적 경계를 넘어, 사회 문화 정치 경제를 가로지르는 호추니엔의 작업세계를 탐구하고자 한다.

호추니엔(b.1976)은 역사적, 철학적 텍스트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싱가포르의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영화감독이다. <동남아시아 비평사전>을 비롯한 일련의 작업들은 서구의 변증법적 역사관에서 획일적으로 치부되어 온 동남아시아, 나아가 아시아의 개별적 문화 정체성과 독특한 근대성을 논한다. 작가는 순차적 재생이 아닌 알고리즘으로 재생되는 영상작업을 통해 역사의 단일한 시간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과거와 현재가 중첩, 충돌되며 파생되는 아시아의 다차원적 시공간을 다룬다. 

▲호추니엔, 뉴턴, 2009, 단채널 영상, 스테레오 사운드, 4분 16초.
▲호추니엔, 뉴턴, 2009, 단채널 영상, 스테레오 사운드, 4분 16초.

호추니엔은 싱가포르라는 단일 국가를 넘어 좁게는 동남아시아, 넓게는 아시아 근대성의 형성과 작동 그리고 현재와의 영향 관계를 사회, 문화, 정치, 경제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집중적으로 탐구해 왔다. 근대성은 중세적 세계관에서 벗어난 존재와 사유에 대한 과학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삶의 태도로 요약될 수 있다. 작가에게 아시아 근대성은 서구의 변증법적 발전 논리로 설명될 수 없는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문화적 현상이며, 복수의 근대성이다. 호추니엔은 제국주의적 근대성이 야기한 파국인 식민주의를 피식민자로서 관통한 많은 아시아의 역사를 탐구하면서 아시아가 제국주의적 근대성이 야기한 힘의 논리와 어떻게 교섭하고, 그것을 전유하며, 그러한 과정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으며, 자신의 시간성을 발명하고 있는지를 이번 전시를 통해서 드러낸다.

이러한 작가의 관점은 그의 대표작 <동남아시아 비평사전(Critical Dictionary of Southeast Asia)>(2012-현재)에서도 확인될 수 있다. 동남아시아와 근대성이라는 두개의 큰 축으로 수집된 다양한 데이터 베이스들이 알파벳 순서로 나열되고, 알고리즘에 의해서 작동되는 이 사전은 근대적 의미의 백과사전과 같은 형식으로 정리될 수 없는 동남아시아의 혼종적 근대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지속적으로 데이터가 증식되고 변형되는 이 프로젝트는 개별 단어들에 대한 집중적인 탐구를 수행하는 프로젝트로 진화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게 되는 <시간(타임)의 티(T for Time)>는 작가의 이러한 연구 방법론이 집결된 프로젝트이자 작가가 궁극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아시아 근대성과 시간성에 대한 총체적인 연구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호추니엔, 호텔 아포리아, 2019, 6채널 프로젝션(43포맷, 컬러, 24채널 사운드), 팬, 조명, 변환기, 컨트롤시스템, 84분 1초(파도 12 min; 바람 24 min; 보이드 24 min 1 sec; 어린이 24 min).
▲호추니엔, 호텔 아포리아, 2019, 6채널 프로젝션(43포맷, 컬러, 24채널 사운드), 팬, 조명, 변환기, 컨트롤시스템, 84분 1초(파도 12 min; 바람 24 min; 보이드 24 min 1 sec; 어린이 24 min).

복수의 근대성을 비추는 구름

이번 전시는 아시아에서 근대적 경험에 대한 경외와 감탄, 환상과 공포, 희망과 좌절이 동시대 사회 문화 속에서 여전히 유령처럼 부유하고 있음을 드러내고자 한다. 제국주의의 여파와 식민주의의 경험, 그리고 이러한 시간을 지나온 사람들의 현재와 모순적이지만 해학적인 상황들을 전시장에 펼쳐낸다. 다양한 근대성들이 충돌하고 오해하며, 전유하고 다시 화해하면서 만들어진 우리의 현재가 광대한 우주적 시간의 흐름 속에 펼쳐지는 상황을 연출한다. 

이번 전시에서 ‘클라우드, 구름’은 중의적인 의미를 갖는다. 클라우드, 구름은 하늘에 떠 다니는 자연 현상으로써 구름을 의미하기도 하며, 신화적이고 영적이며 종교적인 상징물이기도 하고, 모호하고 알 수 없는 어떤 미지의 대상이기도 하며, 미술에서 화면을 나누는 시각적 장치이기도 하다. 그리고 온라인을 통해서 액세스할 수 있는 서버와 이러한 서버에서 작동하는 소프트웨어와 데이터베이스를 의미하기도 한다. 작가에게 클라우드는 물질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 모두를 포함하는 대상을 투사하기도 하고 감추기도 하는 빈 화면, 스크린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클라우드, 구름의 의미는 작가 호추니엔의 작업세계를 관통하며, 그의 세계관을 개념적으로 물리적으로 미학적으로 작동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번 전시의 이중 스크린은 바로 이러한 작가의 클라우드, 구름의 물리적 변형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이번 전시가 집중적으로 살피는 세 작품, <미지의 구름(The Cloud of Unknowing)>(2011), <호텔 아포리아(Hotel Aporia)>(2019), <시간(타임)의 티>(2023-현재) 등은 동시대 아시아인의 삶과 그 현재에 대한 진지한 질문이자 그 해답을 찾아가는 작가의 광대한 여행이다. 아트선재센터가 호추니엔의 작업세계에서 특히 이 작품들에 주목하는 이유는 일상-정치/문화-시간으로 이어지는 작가의 근대성에 대한 탐구가 이 작품들을 통해서 집중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작가는 서구와 아시아, 아시아와 아시아, 제국과 식민지, 식민지와 식민지가 만나고 충돌하며 형성되는 새로운 공간으로써 아시아의 현재를 탐구한다. 그러나 작가의 이러한 탐구는 단순한 이분법적 대립 구조를 넘어, 수많은 다양한 근대성이 충돌하고 부서지며, 그것을 이해하면서도 오해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생성하고 확장하는 아시아의 현재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호추니엔, 미지의 구름, 2011, 단채널 프로젝션(169포맷), 컬러, 5.1 서라운드 사운드,  28분.
▲호추니엔, 미지의 구름, 2011, 단채널 프로젝션(169포맷), 컬러, 5.1 서라운드 사운드, 28분.

‘미지의 구름’부터 ‘시간의 티’까지

이번 전시는 아트선재센터의 아트홀, 스페이스1, 스페이스2 세 가지 공간에서 전개된다. 아트홀에서는 싱가포르의 허름한 공동 주거단지에 거주하는 8명의 인물들이 경험하는 초현실적인 사건들이 펼쳐지는 <미지의 구름>과 더불어, 3개의 영상작업이 순차적으로 설치 상영된다. 2011 베니스비엔날레 싱가포르관에서 처음 선보인 작업인 <미지의 구름>은 구름이 갖고 있는 문화사적인 의미를 차용해 무기력해 보이는 일반 시민들의 탈주를 위한 환상적이고 폭발적 에너지를 드러낸다. 

서구 근대성의 가장 중요한 두 개의 발명품인 과학과 예술의 개념을 비트는 <뉴턴(Newton)>(2009)과 <굴드(Gould)>(2009-2013)는 아시아계 알비노가 등장하여, 유사과학적 탐구행위와 유사예술적 실천행위를 무한 반복한다. 유럽 바로크와 낭만주의 화가들의 도상을 차용하여 재난이후 지구의 묵시론적 풍경을 드러내는 <지구(Earth)>(2009-2017)는 현재가 되어 버린 미래의 우리를 드러낸다. 이 작업들은 서구 근대성의 유산을 코믹하게 비틀 뿐만 아니라, 그 파국의 잔해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인간과 지구가 대면한 현재의 상황을 성찰하게 하면서 우리가 대면할 미래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 

▲호텔 아포리아  ‘보이드’ 설치 장면. ⓒ싱가포르아트뮤지엄
▲호텔 아포리아 ‘보이드’ 설치 장면. ⓒ싱가포르아트뮤지엄

스페이스1에서는 일본 제국주의가 서구적 근대성과 직접 대결하고 발명하고자 했던 아시아성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담은 <호텔 아포리아>가 영상설치작업으로 전시된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이 작업은 일본의 패권적 아시아주의에 대한 싱가포르인 작가 호추니엔의 비판적 주해다. 말레이계 화교로 싱가포르에서 태어나고 자란 작가는 싱가포르와 동남아시아가 경험한 역사적 제국주의와 세계화된 자본주의 형태로 변형된 동시대의 제국을 일본 제국주의를 관통하며 성찰한다. 작품은 교토학파, 대동아공영권, 가미카제 특공대와 그들의 마지막 연회가 이루어진 기라쿠테이,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와 애니메이션 감독 요코야마 류이치로 이어지는 이어지며 일본이 꿈꾸었던 패권적 아시아주의의 분열과 자기애를 시적으로 비판한다. 

스페이스2에서는 아시아의 근대적 시간의 발명에 대한 총체적 연구인 <시간(타임)의 티>와 <시간(타임)의 티: 타임피스>(이하 타임피스)가 설치 상영된다. 이 작업은 아트선재센터와 싱가포르아트뮤지엄이 엠플러스 홍콩과 협력하여, 도쿄도현대미술관, 샤르자미술재단,  한국국제문화교류재단의 지원을 받아 완성된 작업이다. <시간(타임)의 티>는 2채널 영상 설치 작업으로 근대성과 시간성의 문제를 동서양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과 더불어 펼쳐 보인다. 이 작업은 시간에 대한 동양과 서양의 신화적 문화적 인식에서부터, 시간에 대한 철학적 사유, 시간을 계량화하는 도구의 고안, 서구의 근대적 시간의 발명과 지구라는 공간의 균질화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개인적 경험과 다층적 탐구가 작업 전체를 관통하며 장대하게 펼쳐진다. 43개의 모니터 영상 설치 작업인 <타임피스>는 <시간(타임)의 티>를 구성하는 42개 챕터의 또 다른 응축적 이미지 영상물이다. 이 작업은 <시간(타임)의 티>의 문을 열고 그 내용을 증폭시키면서, 우리에게 시간을 사유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호추니엔, 미지의 구름, 2011, 단채널 프로젝션(169포맷), 컬러, 5.1 서라운드 사운드,  28분.
▲호추니엔, 미지의 구름, 2011, 단채널 프로젝션(169포맷), 컬러, 5.1 서라운드 사운드, 28분.

아트선재센터 관계자는 “이번 전시를 통해서 작가 호추니엔의 아시아 근대성에 대한 탐구를 재맥락화하고,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대한 동시대적 맥락을 다시 살펴보며, 근대성 이후의 문제를 시간의 의미와 더불어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한편, 2022년 아트선재센터와 싱가포르아트뮤지엄은 엠플러스 홍콩과 협력하여, 도쿄도현대미술관, 샤르자미술재단, 한국국제문화교류재단의 지원을 받아 호추니엔의 예술 세계를 탐구하고,<시간(타임)의 티(T for Time)>을 공동 제작하기 위해 협력했다. 2022년 11월 22일 아트선재센터는 심포지엄 ≪호추니엔 비평사전: 동시대성과 지역성≫을  ‘동시대성과 지역성’이라는 주제로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2022 한-아세안 문화예술 공동협력 프로젝트’  일환으로 싱가포르 미술관과 함께 개최했다. 이 공동 작업은 두 가지 버전의 전시, ≪호추니엔: 시간과 호랑이(Ho Tzu Nyen: Time & the Tiger)≫(2023.10.23. - 2024. 3. 3., 싱가포르아트뮤지엄),  ≪호추니엔: 시간과 클라우드≫(2024. 6. 4. – 2024. 8. 4., 아트선재센터)으로 이어졌다.  이 두 전시는 아트선재센터와 싱가포르아트뮤지엄의 협업의 서로 다른 결과물이며, 동시대 미술에 집중하는 아시아 두 미술기관의 새로운 협업모델의 결과물이다.≪호추니엔: 시간과 호랑이≫는 싱가포르아트뮤지엄과 아트선재센터가, 헤셀미술관, 무담 룩셈부르크현대미술관-그랑 뒤 장과 협력하여 주최했다. 

호추니엔의 주요 개인전으로는 《에이전트의 A》(도쿄도미술관, 2024), 《시간과 호랑이》(싱가포르아트뮤지엄, 2023), 《보이스 오브 보이드》(일본 야마구치 정보예술센터, 2021), 《미지의 구름》(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2015) 등이 있으며, 주요 그룹전은 《밤의 세헤라자데》(팔레 드 도쿄, 파리, 2022), 《상상된 경계들》 (제 12회 광주비엔날레, 2018), 《아시아 연결하기》(아시아 아트 아카이브, 홍콩, 2014) 등이 있다. 작가는 2011년 제54회 베니스비엔날레 싱가포르 파빌리온 대표 작가였으며, 대만 작가 슈 차 웨이(Hsu Chiawei)와 제7회 아시아미술비엔날레 《산과 바다를 넘어온 이방인들》(국립대만미술관)을 공동 기획하였다. 2014년부터 2015년까지 베를린 DAAD 장학금을 받았고, 2015년 APB 재단의 시그니처 예술 대상을 수상했으며, 2024 샤넬 넥스트 프라이즈를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