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홍재는 한국 퍼포먼스계의 중진이다. 1987년에 작가로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총 100여 회 이상의 퍼포먼스 작품을 발표했다. ‘한국행위예술가협회 회장’이란 직함은 활발한 그의 대내외적 활동상을 대변한다. 그만큼 심홍재는 예술에 열정적이며, 평생을 전업작가로 살아온 그의 이력은 예술이 곧 삶이고, 삶이 곧 예술일 정도로 삶과 예술이 일치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 말은 어느덧 환갑을 넘긴 심홍재가 자신의 삶을 오로지 예술에 바쳤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는 그에 상응한 예술적 평가와 사회적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음을 은연중 내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내가 이전에 쓴 글의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80년대에 행위예술을 시작한 세대의 작가들 중에서 심홍재는 중진에 속한다. 경력이 40년에 가깝고 횟수로 치면 100회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의 독창성이나 예술적 재능은 아직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수년 전에 나는 전국에 흩어져 행위작업을 펼치는 이들을 가리켜 ‘진귀한 버섯들의 군락지’라고 평하고 비평가와 큐레이터들이 관심을 가져줄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제22회 심홍재 개인전 도록에서, 2022-
전주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심홍재는 말하자면 ‘진귀한 버섯들이 군락’을 이룬 맹주(盟主)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계가 아직 인물을 알아보지 못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를 최근의 미술동향에 비쳐보면,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최한 [한국 실험미술 60-70년대]전이 뉴욕의 구겐하임미술관을 거쳐 현재 L.A의 해머뮤지엄에서 전시 중인데, 초대작가 중에서 강국진, 김구림, 성능경, 이건용, 이승택, 정강자, 정찬승 등이 당대의 뛰어난 퍼포먼스 작가들이란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60-70년대에 ‘미친 짓’으로 치부된 해프닝과 이벤트 등 행위미술에 투신, 세계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1세대 행위미술가들이다.
심홍재는 이 계보에 속하는 행위미술가이다. 그러면서도 거의 같은 비중으로 회화와 오브제, 설치미술에 주력하는 작가다. 1987년 이후 근 40년에 가까운 세월을 개성이 강하고 독창적인 작품을 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심홍재의 어떤 작품이 독창적이며 개성이 뚜렷한가? 나는 그가 오랜 세월 심혈을 기울여 제작해 온 자개 ‘획(劃)’ 연작을 주목하고 싶다. 한국에서 자개 작업을 펼치는 작가들은 여럿이 있지만, 심홍재의 작업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매우 독창적이며 독보적이다. 첫째는 버려진 자개농을 수집, 활용하여 거기에 글자, 상징, 기호 등을 투각, 오브제화(化) 한다는 점이다. 둘째, 전통적인 문화유산인 십이간지(十二干支)를 능숙한 서체로 자개판 위에 쓴 다음, 이를 따내는 독창적인 방법을 개발, 뚜렷한 개성을 드러낸 점이다. 셋째, 리사이클링(Recycling)과 업사이클링(Upcycling)을 통해 자원을 재활용하는 독창성의 선례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나는 심홍재의 예술이 지닌 이러한 측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쓴 바 있다.
“광기에 찬 예술적 열정으로 신의 세계와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심홍재의 퍼포먼스는 서양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동양, 그 중에서도 특히 몽골리안 조상의 유전자가 핏속에 면면히 흐르는 한국적 사유의 원형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른바 원형으로 전개되는 방위명을 능숙한 필치의 한문으로 쓰는 행위가 그것이다. 심홍재는 강렬한 빨강색 바탕 위에 낡아서 버린 자개 장롱의 무늬 부분을 오려낸 후 이를 자신의 고유한 조형언어로 바꾸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나는 그의 작업이 지닌 날 것 특유의 야생성을 주목해 보고자 한다.”
“옛 것이 가고 새 것이 몰려온다. 근대란 결국 옛 것을 밀어내고 새 것이 주류로 부상되는 현상을 이름이 아닌가?"
심홍재는 이 현상을 주목한다. 버려진 자개 장롱의 미적 가치를 오늘의 현실에 되살리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장롱에서 자개 부분을 도려내 한자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조형 언어를 펼쳐나간다. 매우 세심하고 까다로운 작업인데 바탕색과 자개가 영롱하게 빛을 발하는 글자 부분의 색조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자개를 사용한 작가들의 작업은 더러 눈에 띄지만 기성 오브제를 사용한 심홍재의 작업은 선례가 없다는 점에서 매우 독창적이다.
-제22회 심홍재 개인전 도록에서,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