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신의 장터이야기 94
장터에 가면 지역민들이 산과 들과 밭에서 채취한
싱싱한 농산물을 펼쳐놓은 난전을 찾아간다.
옆에 앉아 할매들 삶을 들여다보면
도서관을 찾아 책을 보고 있는 듯, 살아있는 지혜를 배운다.
간혹 이들과 장단이 맞아 이름을 물어보면 난색을 표명하는 할매에게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할매 시집 보내줄라고 물어 보는디 쪼까알케줏씨요”
이때 마주 앉은 할매들과 온갖 생것들이 갑자기 발끈거리고 일어나,
온 장터가 초록 웃음으로 피어난다.
몇해전 오십년째 생선장사를 한 봉덕할매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예말이요, 장시헌다고 새끼덜 목구멍으로 밥 넘어가는 것도 못보고,
산 죄밖에 없는디, 가난 헌것은 어째 똑같을께라,
넘들은 오십년 넘게 장사 했승께 돈좀 벌었지라 그란디,
모아둔 돈이 없승께 새끼덜헌때 젤로 미안허제라”
열심히 산 죄밖에 없다는 할매 말이 계속 나를 따라다녔다.
땅바닥에 질펀하게 앉아, 파장할 때까지 단순한 동작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나도 모르게 할매 손을 맞잡게 된다.
“일만허는 손이라서 물짜, 꼭 소가죽 같제라,
그래도 이 손으로 새끼덜 먹이고, 갈쳤승께 장한 손이제”
사람이 그립고, 사람이 보고 싶은 할매는 돈 만지는 재미보다
사람 보는 재미가 큰 듯, 어디서 왔느냐, 밥은 먹었느냐며
난전에 펼쳐놓은 무라도 한입 넣어줘야 마음 편한
어매의 정(情)이 뚝뚝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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