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식·박고석·임직순·이대원 작품 한자리에…현대화랑 《한국 구상회화 4인》展
윤중식·박고석·임직순·이대원 작품 한자리에…현대화랑 《한국 구상회화 4인》展
  • 김연신 기자
  • 승인 2025.01.23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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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2.23, 현대화랑

[서울문화투데이 김연신 기자] 한국 근현대 미술의 중추적인 역할을 해온 4인의 작품들을 한자리에 소개하는 전시가 열렸다. 현대화랑은 내달 23일까지 《한국 구상회화 4인전 : 윤중식, 박고석, 임직순, 이대원》을 개최한다. 

▲이대원, 농원, 1984, 캔버스에 유채, 112.1 x 162.2 cm
▲이대원, 농원, 1984, 캔버스에 유채, 112.1 x 162.2 cm

이번 전시에는 네 작가들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시기인 1970–1980년대 작품들이 출품된다. 현대화랑과 작가들이 맺어온 깊은 인연을 바탕으로, 각 작가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재조명하고 미술사적 가치와 중요성을 재확인하고자 한다.

윤중식(1913–2012)은 평양 출신으로, 1939년 일본 제국미술학교(帝國美術學校)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해방 후에는 제2회 국전에서 특선을 수상, 이후 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위원장과 홍익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작고 후 유족은 수십 점의 작품들을 기증했다.

▲윤중식, 태양과 비둘기, 1977, 캔버스에 유채, 136.5 x 106 cm
▲윤중식, 태양과 비둘기, 1977, 캔버스에 유채, 136.5 x 106 cm

강렬한 색채와 굵은 윤곽선, 중후한 톤이 돋보이는 윤중식의 회화는 6.25전쟁과 분단의 비극 속에서 겪었던 실향민으로서의 그리움과 상실감이 근간을 이룬다. 대동강, 비둘기, 석양, 농촌 풍경 등 어린 시절의 기억을 소재로 한 그의 작품은 잊혀 가는 고향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다시금 환기시킨다. 

박고석(1917–2002)은 평양 출신으로 평양 숭실학교를 졸업한 뒤, 1935년 일본 유학을 떠나 1939년 일본대학(日本大學) 예술학부 미술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과 친목을 쌓았고, 이 가운데 이중섭, 한묵과의 깊은 우정은 그의 예술적 여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당대 아카데미즘에 염증을 느낀 작가는 1957년 유영국, 황염수, 이규상, 한묵 등과 함께 ‘모던아트협회’를 창립하며 새로운 미술을 모색했다. 

▲박고석, 선인봉, 1972, 캔버스에 유채, 60.6 x 50 cm
▲박고석, 선인봉, 1972, 캔버스에 유채, 60.6 x 50 cm

1968년부터는 산행을 통해 그의 작업에서 주된 모티브인 ‘자연’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북한산, 설악산, 백양산, 지리산 등을 여행하며 사계절을 화폭에 담아내었던 작가는 강렬한 색채 대비와 힘찬 필치로 한국의 명산이 내뿜는 강렬한 기운을 전했다. 1970–1980년대에는 원근법을 무시한 공간 구성과 두터운 유화물감의 질감으로 산의 웅장함과 생명력을 표현하며, 그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확립해 나갔다.

임직순(1921–1996)은 충청북도 충주에서 출생했다. 1936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일본미술학교(日本美術學校)에서 공부하며 회화적 기초를 다진 그는, 귀국 후 1961년부터 오지호의 뒤를 이어 14년간 조선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광주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임직순, 실내의 여인, 1977, 캔버스에 유채, 162.2 x 97 cm
▲임직순, 실내의 여인, 1977, 캔버스에 유채, 162.2 x 97 cm

임직순은 빛의 대비와 강렬한 색면이 조화를 이루면서도 형식적으로 안정된 구도를 추구했으며, 자연 풍경, 꽃과 여인을 주요 소재로 선택하여 그 속에 내재된 생명력을 탐구했다. 특히 작가는 직접 현장에 나가 자연에서 얻은 감동을 현실감 있게 그려냈고, 색채의 사용에 있어서는 내적인 색감을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을 정감 있게 표현했다.

국전에 꾸준히 출품하여 예술적 역량을 인정받았던 임직순은 1957년 제6회 국전에서 〈좌상〉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은 색채 안에 빛의 개념을 더해 회화적 자율성과 심미적 확장을 이루며, 자연적인 주제를 넘어선 깊은 내면세계를 구현한 예술로 평가받는다.

이대원(1921–2005)은 경기도 문산에서 출생했다. 서울대 전신인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 법학과를 졸업 후 미술 정규교육을 받지 않았으나 조선미술전람회, 국전에 입선하며 두각을 드러냈다. 1957–1958년에는 독일에서 세 차례 전시를 가지며 한국 현대미술을 해외에 알리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는 교육자로서 1967년부터 1986년까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교수로 재직했으며, 1972–1974년에는 홍익대학교 초대 미술대학장을, 1980–1982년에는 홍익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이대원, 농원, 1980, 캔버스에 유채, 112.1 x 162.2 cm
▲이대원, 농원, 1980, 캔버스에 유채, 112.1 x 162.2 cm

1950–1960년대 모노크롬, 미니멀리즘 경향이 주류를 이루었던 한국 화단에서, 이대원은 한국의 산과 들, 나무, 연못, 돌담, 과수원 등 친숙한 자연을 주요 소재로 택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펼쳤다. 작가는 풍부한 원색과 짧고 연속적인 붓 터치로 형태와 윤곽을 그리는 독자적인 방식에 매진하며 봄, 여름, 가을, 겨울 다른 색채로 물들어가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그는 단순한 자연의 재현을 넘어, 자연의 생명력과 삶의 즐거움을 화폭에 담아내 감각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회화적 경험을 전한다.

현대화랑 관계자는 “한국 미술사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이들의 예술을 재조명하며, 한국 구상회화의 정수를 만나볼 수 있는 자리를 선사하고자 한다”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