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수정 명창 “젊은 소리꾼들이 우리 소리 뿌리를 부디 잃지 말기를”
[인터뷰] 유수정 명창 “젊은 소리꾼들이 우리 소리 뿌리를 부디 잃지 말기를”
  • 이은영 발행인/임동현 기자
  • 승인 2018.04.02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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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숙선 선생의 충고가 지금의 나를 만들어, 제자들과 한 무대 서고 싶다”

“너가 뭐가 그렇게 잘났냐?” 안숙선 선생의 이 한 마디에 그의 소리 인생이 바뀌었다. 그는 중단했던 학업을 다시 시작했고 판소리 관련 전국대회에 출전해 수상했으며 ‘춘향가’ 완창을 해냈다.

그리고 그는 국립창극단 단원으로 각종 창극에 출연하며 다양한 캐릭터로 관객들에게 창극의 재미를 전하고 있다. 그리고 제 9회 본지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국악부문) 수상자로 지금 우리 앞에 모습을 보여줬다.

유수정 명창. 그는 최근 창극 <심청가> 연습에 한창이다. 스승인 안숙선 선생과 함께 도창을 맡아 우리의 소리를 전하게 된다. ‘첫째도 소리, 둘째도 소리, 셋째도 소리’라며 우리 소리의 뿌리를 지킬 것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스승에 대한 존경과 더불어 후배들에 대한 애정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은 유수정 명창의 속 깊은 마음이 엿보이는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 유수정 명창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을 수상했다. 시상식에서도 남다른 소회를 밝혔는데 다시 한 번 소감을 전해달라

소리를 잘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열심히 해서 국악의 발전을 이루라는 뜻으로 주신 거라고 생각한다. 주위 분들이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이 문화계나 예술계에서는 권위적인 상이라고 다들 말씀해주셨고 동료와 후배들이 많이 좋아해주고 축하해주고 부러워했다(웃음).

상을 몇 번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울문화투데이가 유수정을 계속 국악을 하게 하면서 상을 줬다는 것이 내겐 큰 영광이고 보람이다.  

만정 김소희 선생과 안숙선 선생으로부터 사사했다. 두 분이 준 가르침이 있다면?

만정 선생님은 항상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사람답게 살아야한다’는 것을 강조하셨다. 예술가의 지적 능력을 중요시한 것이다. 무대에서 바른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밖에서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되기에 바른 몸가짐을 중요시하셨다.

안숙선 선생님은 오늘날 나를 만드신 분이다. 그 분 덕분이다. 만정 선생님에게 배울 때는 아직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뭐든지 받아들였다면 안숙선 선생님은 나이가 들면서 피부로 그 분의 말씀을 느끼게 됐다. 그 분 덕에 대학을 넘어 대학원까지 마칠 수 있었고, 대회에서 큰 상을 받을 수 있었고, 완창을 할 수 있었다.

안숙선 선생에게 가르침을 받은 부분을 좀 더 듣고 싶다

국립창극단 예술감독 시절 어느날 나를 부르시더니 ‘안타까워서 하는 이야기’라면서 문을 잠그고 거의 두 시간을 내게 말씀하셨다. 조곤조곤하게 “너가 뭐가 그렇게 잘났냐? 15년간 해 놓은 것이 무엇이냐?”라고 말씀을 시작하시는데, 재주가 많은 아이가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고 몸이 편하다고 게으른 모습을 보이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분이 하신 말씀이 예술 생활을 하려면 이전에는 못 배워도 소리만 잘하면 되는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을 갖춰야한다는 것이었다. 안 선생님 시절은 대학도 변변이 없었고, 무엇보다 당시는 도제식 교육이 공고했기에 제도권 교육을 받을 여건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최고의 명창으로서 제도권 교육을 못 받은 것이 못내 한이였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대학 시절 형편이 어려워 아르바이트에 나서면서 중간에 그만둔 대학 공부를 마저 마쳐야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면 대회에 나가라고 했다. 대통령상 받을 사람이 아무것도 안 하고 게으르게 지내면 안 된다는 거였다. 그리고 완창을 하라고 하셨다. “이 세 가지를 내 말을 듣고 실천한다면 사람이고, 이 말을 귓등으로 흘려버린다면 예술 인생은 끝나는 거다”라고 말씀하셨다.

정말 눈물이 한없이 쏟아졌다. 가슴에 푹 꽂히는 말이었다. 40이 넘은 나이에 이제는 어떡해야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남에게 단 1분도 할애하지 않으실 정도로 바쁘신 분이 두 시간을 나를 위해 쓰시는 것을 보고 말 할 수 없을만큼 깊은 사랑을 느꼈다.

하나하나 시작했다. 대학을 다니면서 지각도 결석도 하지 않았다. 물론 극단 일에 소홀해지면서 징계를 받기는 했지만(웃음) 이것도 훈장이 됐다. 마침 선배가 학교 교수였는데 그 분의 충고로 대학원에 진학했고 그렇게 6년을 공부했다. 그 6년이 참 60년 같았다. 스트레스로 머리가 하얘질 정도로(웃음).

그리고 대회에 참가했는데 첫 해에는 떨어졌다. 하지만 두 번째 해에 드디어 대통령상을 받았다. 그 때 다른 대회에서 왕기석 명창이 대통령상을 받아서 극단이 겹경사가 났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다음으로 춘향가를 완창했다. 완창은 정말 힘들게 생각됐다. 선생님께 “세 시간씩 나눠 부르면 안되냐”라고 계속 청했는데 선생님의 대답은 “안 돼”였다. 도전하는 것 자체가 아름답다는 것이었다.

힘들어도 착실히 하라고, 즐기면서 하고 시간 안배 잘 하라고 이런 선생님의 지도 속에 드디어 여섯시간 춘향가 완창을 해냈다. 10년의 시간이었다. 그 때 선생님께 들은 말은 “그래, 수고했다. 잘했어” 이 한 마디였다(웃음).

정말 그 때 안숙선 선생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돌아가실 때까지 잘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창극이 현대화되고 다양한 장르로 탄생되고 있다. 그 변화를 직접 겪었는데

30년 극단에 있으면서 윗대 선생님들도 모시고 똘똘하고 현대물에 강한 젊은 소리꾼과도 같이 했다. 나는 ‘낀 세대’다.(웃음) 창극단에서 선생님들이 구전으로, 실전으로 보여주시고 이를 익히는 공부를 하다가 여러 예술감독을 만나면서 여러 장르의 공연들을 해왔다. 

요즘은 관객층이 젊은 세대들로 확 바뀌고 관객 점유율이 100%가 될 정도로 인기가 많아졌다. 요즘 시대에 맞는 창극이 나오고 있지만 현대극으로 바뀌고 문화적인 것이 바뀐다 해도 소리의 뿌리만큼은 안 바뀌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나뿐만 아니라 소리를 하는 모든 이들의 바램이다. 

▲ 지난 1월 서울문화투데이 문화대상을 수상한 유수정 명창(가운데)과 스승 안숙선 명창(왼쪽), 이은영 본지 서울문화투데이 발행인(오른쪽)

창극이 현대물로 바뀌는 등 변화가 생기면 이질감이 생길 수 있는데 이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코카서스의 백묵원> 같은 작품은 옛날 선생님들이라면 엄두도 못 내던 것이었다. 원작도 낯설고 음악도 서양식 작곡이라 그에 맞추려니 소리도 잘 안 되고 해서 고민이 많았는데 연출자가 “굳이 양악으로 할 필요가 없다. 소리는 우리 소리로 하면 된다”고 해서 마음 편하게 한 적이 있다.

외국 연출가가 연출한 춘향전을 완전히 현대의 창극으로 공연한 적이 있었다. 춘향이 원더우먼처럼 핫팬츠를 입고 등장하고 내가 맡은 방자는 힙합 바지를 입고 소리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극이 어색하지 않았던 것은 우리 소리를 그대로 살렸기 때문이다. 결국은 소리로 승부를 봐야한다.

우리 소리를 살리는 작품도 있는 반면에 어떤 작품은 악보대로 하라는 주문이 나왔다. 서양의 악보에 맞추다보면 자칫 목에 해를 끼칠 수 있는데 연출자가 악보대로 하라는 것을 원한다면 그대로 갈 수 밖에 없다. 사실 불만이기는 하다.

젊은 친구들을 보면 목소리가 예쁘고 악보를 참 잘 읽는다. 하지만 저런 풍만 좋아하다보니 소리에 무게감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력과 테크닉을 다 가지고 소리를 해야하는데 판소리가 아닌 요즘 노래의 흐름으로 발성이 가다보니 이런 현상이 나오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노래한다면 몇 십년간 피 토하듯 끌어올린 소리가 다 없어지고, 결국 이쁘고 고운 목소리만 남은 채 판소리가 사라질 지도 모른다고 하신다. 그래서 안선생님도 항상 “너희라도 후배를 가르치라. 너희들이 이야기해줘라”라는 말씀을 해주신다.

어느 정도 외도는 할 수 있다. 하지만 뿌리를 잃으면 안 된다. 소리의 뿌리를 찾아 돌아오는 작업을 해야한다고 본다.

창극에서 주로 코믹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중량감 있는 연기를 보여준 <코카서스의 백묵원>도 물론 기억에 남지만

어릴 때는 춘향이나 심청 등 주인공을 많이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나이를 먹으면서 후배들이 그 역들을 할 것인데 나는 어떻게 색깔을 잡을 지가 고민됐다. 춘향에서 월매로 강등되고(웃음), 멜로 주연급에서 어떻게 탈피하나 고민하던 순간에 <산불>의 천박하고 무식한 ‘최씨’ 역할이 주어졌고 그러면서 코믹한 캐릭터로 이미지를 바꾸었다. 토끼 역을 맡았을 때는 토끼의 발걸음을 연습하며 잔망스런 동물을 보여주려 했고. 

예전에는 ‘찬바람 부는 이미지’라는 말을 듣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성격이 왈가닥이 됐다(웃음). 어떻게 역할에 맞게 이미지를 바꿀 지를 많이 고민한다.

창극의 매력은 무엇일까?

판소리는 완창을 하던, 한 시간 만 하던 혼자서 스스로 드라마를 엮어나가며 관객들이 자기에게 스며들도록 최선을 다해야한다.  마라톤과 비슷하다. 

하지만 창극은 여러 사람이 배역을 나눠 각자 자기가 맡은 소리를 가져간다. 음악적 감수성은 판소리보다 창극이 편하다. 극에 몰입하다보면 음악과 소리를 통해 공감대가 더 빨리 형성된다. 같이 웃고 같이 울게 된다. 처음에는 심드렁하게 팔짱끼고 의자 뒤로 젖히고 보는 사람도 30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나면 ‘어? 어?’ 하고 상체가 앞으로 다가오게 한다.

창극도 판소리도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다. 내 개인적으로는 창극이 좋은 것 같다. 안숙선 선생님은 판소리를 잘해야 창극도 잘 할 수 있다고 한다. 뼈대는 판소리라는 것이다.

창극을 보면 연극적인 요소를 더 많이 넣는 연출가가 있고 소리를 더 중시하는 연출가도 있다. 얼마 전에 한 <산불>은 소리보다 연극적인 요소가 많았는데 제 주위 분들이 ‘무대는 훌륭한데 소리가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해주시기도 했다. 연출마다 다 색깔이 있다.

이번에 <심청가>를 만드는 손진책 연출가는 소리를 위주로 하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그게 좋다.

▲ 국립극장 '정오의 음악회'에서 판소리 공연을 선보이는 유수정 명창 (사진제공=국립극장)

김준수, 유태평양, 이소연, 민은경 등 국립창극단의 젊은 소리꾼이 요즘 맹활약중이다

김준수와 유태평양은 정말 그 나이에 걸맞는 소리를 한다. 기본기가 탄탄하다. 지금 <심청가>에서 유태평양이 심봉사 역을 맡았는데 정말 잘 한다. 유태평양에게 “시대에 따라 변화하지 말고 소리를 꾸준히 가지고 있으라”고 조언을 해준다.

김준수는 이번에 판소리 완창을 하게 되는데 목소리가 섬세하고 예쁘다. 하지만 남성스러움이 더해졌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준수에게 “소리가 예쁘고 곱고 잘하지만 통을 더 넓혀라. 조상현 명창 같은 분에게 가서 제대로 배우면 소리가 트일 것 같다”고 했더니 자신도 그 부분을 고민하고 있더라. “돈 번다고 배움에 소홀히 한 것이 지금 내가 하는 후회다. 힘들어도 너에게 투자하라”고 이야기해줬다. 

민은경은 내가 예뻐하는 후배고 이번에 <심청가>에도 출연하지만 좀 더 소리를 무게있게 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건 소리를 많이 해야 가능하다. 이소연도 목소리가 참 예쁘지만 아직 축적된 공력이 부족하다. 뮤지컬을 하다 보니 창법이 뮤지컬 쪽으로 가는 게 아닌지 걱정이 된다.

물론 여러 가지 일로 바쁜 건 이해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한두시간은 꼭 소리를 해야 한다고 말해준다. 공연에 급급하고 돈벌이에 급급해 시간을 보내면 목소리가 날린다. 목을 푸는 시간 한두시간 정도는 반드시 있어야한다는 게 내가 하는 말이다.

국공립단체 단원들의 ‘물갈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적극 찬성이다. 고인 물은 썩는다. 소리를 못하는 사람들이 ‘중진’이라면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 친구들은 사측과 협상을 할 때 오디션을 안 보는 것으로 협상을 하더라. 자신들을 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그들의 일인 셈이다.

부당한 일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오디션을 보고 미달하면 탈락을 시켜야한다. 그래야 오디션에 붙기 위해 연습을 하고 부족한 자리를 젊은 소리꾼으로 채우며 물갈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철밥통 노릇을 하고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이번에 <심청가> 연습 때도 젊은 소리꾼들은 정말 열심히 하는데 중진이라는 이들이 소리를 못하니 정말 속에서 화가 치미더라. 이 친구들에게 ‘후배들 보고 부끄러워할 줄 알아라’라고 말한 적도 있다. 며칠이 걸리더라도 오디션을 보고 점수가 낮으면 내보내는 시스템이 되어야한다. 그래야 순환이 된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최근에 퇴직을 하려 했다. 극단에 있으면 제약이 많기에 밖에서 더 많이 뛰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었다. 이 말을 안 선생님께 했더니 “몇 년 남았냐?”라고 하셨다. “2년 남았다” 했더니 “2년 후에 명예롭게 나가는 게 보기 좋다. 2년 금방 지나간다. 그 때 퇴직하고 활동해도 늦지 않다”는 말씀을 해주시더라.

무대를 가지고 싶다. 완창도 하고 제자 발표도 하고 싶다. 최대한 열심히 가르쳐서 제자들과 무대를 가지겠다는 생각을 한다.

끝으로 선후배들, 그리고 관객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

2,3년 사이에 선생님들이 많이 돌아가셨다. 선생님들이 오래오래 건강하셔야 내가 ‘비빌 언덕’이 있다. 사실 후배 노릇보다 선배 노릇이 더 어렵다. 후배 때는 실수하면 ‘철이 없어서’라고 지나갈 수 있지만 선배가 되어 실수하면 얼마나 큰 낭패인가. 정신차리고 통솔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상의를 드릴 분들이 이제 안 계시니 이런 생각이 든다. 선생님들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길 빈다.

후배들에게는 첫째도 소리, 둘째도 소리, 셋째도 소리다. 다양하게 활동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 소리의 뿌리를 잃지 말고 계속 지켜나가길 바란다.

청중 없는 무대 예술이란 존재할 수 없다. 특히 젊은 층이 창극을 계기로 국악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한번쯤 국악 쪽을 돌아봐주고 그러면서 젊은 층과 중년층, 노년층이 한데 어울려 관심을 가져준다면 감사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