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nterview] ‘빛의 예술가’ 제임스 터렐 
[Special Interview] ‘빛의 예술가’ 제임스 터렐 
  • 김연신 기자
  • 승인 2024.01.04 1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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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업은 고요한 발화⋯이야기보다는 존재 그 자체
빛을 묘사하기보다는 빛 그 자체를 다뤄
예술가와 아이는 본래 빛에 매료되는 법
예술을 자연 속으로 가져와야
한국과 깊은 인연 있어 관심
한국 예술의 미래는 진행 중⋯지켜볼 것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발행인·김연신 기자] 먼 과거부터 대부분의 예술 작품들은 빛을 묘사하거나 활용하는 것에 초점을 뒀다. 그러나 제임스 터렐(1943년~)의 작품에서는 빛이 주인공이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와 자코모 발라가 회화의 수단을 통해 빛을 묘사했다면, 터렐의 작품은 수단과 내용 모두 빛 그 자체다. 터렐은 공간을 통해 빛을 탐구하고, 빛을 통해 공간을 탐색한다. 그는 빛을 다른 사물을 조명하기 위한 장치가 아닌, 공간을 표현하는 창조적인 매체로 사용한다. 

터렐의 작품 세계는 그의 어린 시절 경험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터렐은 독실한 퀘이커 신자였던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명상과 정신적 수련을 중시하는 종교의 영향으로 그의 작품은 심리적인 부분을 반영하고 있다. '내면의 빛'은 퀘이커의 핵심 사상이자 터렐의 중요한 화두다. 그의 작품은 관객이 고요한 응시, 인내와 명상을 통해 자기인식을 하도록 돕는다. 화려하게 시선을 빼앗거나 설명을 요하지 않으며 관람자를 고요하게 내면의 세계로 유도하는 그의 작품은 보는 것이라기보단 체험하는 것에 가깝다.

지난 10월 21일 신안군에서 열린 제임스 터렐의 '아트 토크'에서 터렐이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오종찬)
▲신안을 찾은 제임스 터렐 (사진=오종찬)

터렐의 빛에 대한 이해는 다분야에 걸친 그의 관심사를 바탕으로 한다. 대학에서 지각심리학을 전공한 그는 심리학뿐만 아니라 수학, 유기화학, 물리학, 지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졸업 후에는 미술사와 미술이론을 공부했으며, 비행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항공술과 천문학에 능했기에 비행사로 일하기도 했다.

그는 비행사로 일하던 시절, 하늘에서 긴 시간을 보내며 관찰하게 된 빛의 변화에 크게 감명받았다. 비행을 통해 공간 감각, 하늘의 빛깔, 기상조건 등을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면서 이 때의 경험은 그의 작품에 드러나는 빛에 대한 인식의 기반이 됐다. 그러한 경험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터렐의 작품은 탈일상의 공간에서 색다른 지각 경험을 야기하고, 내면에 침잠할 수 있도록 명상을 유도한다.  

터렐은 한국과 인연이 깊다. 원주의 뮤지엄산에 터렐관이 있는 데다가, 부인(화가 이경림)은 한국인이고 같은 퀘이커 신도인 사상가이자 독립운동가인 함석헌( (1901-1989)선생과도 교류가 있었다. 그럼에도 10년 넘게 한국을 방문하지 않던 그가 신안을 찾았다. 신안군은 각 섬에 총 26곳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마련하는 '1도(島) 1뮤지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터렐은 지난 10월 21일 ‘1004섬, 예술로 날다’ 축제’가 열리고 있던 신안군을 방문해, 노대도에 9개의 작품을 설치하는 '제임스 터렐 미술관'건립을 논의하고 아티스트 토크를 진행했다.

신안 라마다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진행된 이날 토크는 충북대 강형기 교수가 사회자이자 인터뷰어로 참여했다. 토크는 자연과 예술, 문화를 주제로 터렐의 작품 세계와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는 소중한 자리였다. 터렐은 한국과 맺어진 인연부터 시작해서, 빛과 자연에 대한 특별한 사유까지 청중들을 몰입하게 만들었다. 서울문화투데이는 그날의 생생한 현장을 담았다.

한편 터렐의 작품은 전 세계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 앞에서 고요한 명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미국을 빛낸 세계적인 작가로 인정받아, 지난 2014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터렐에게 직접 국가문화훈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의 작품을 ‘빛의 미학의 정수’라 말한다. 어떤 계기로 빛과 시각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어린 아이들은 불빛에 끌리곤 한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아이들이 소방관이 되고 싶어 한다. 나는 빛에 매료되어 빛을 추적하고자 하는 생각을 단 한 순간도 버리지 않았다. 수학에서 출발하여해 여러가지 분야를 공부하고, 최종적으로는 지각 심리학 학위를 취득했다. 이것은 내가 예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출발점이다. 

녹색 물감을 만들려면 노란 물감과 파란 믈감을 섞어야 한다. 하지만 파란 빛과 노란 빛을 섞으면, 놀랍게도 하얀 빛이 만들어 진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 감법 혼색(subtractive color, 청록색, 적자색, 황색 3색으로 이루어져 있다.)과 가법 혼색(additive color, 적·녹·청의 3색)을 알아야 한다. 또, 이를 위해 스펙트럼을 이해해야 한다.

여기까지가 나와 빛의 만남, 그리고 빛에 대한 예술을 시작하게 된 과정에 대한 설명이다. 그런데, 예술가란 본래 빛에 매료되는 법이기 때문에 이유를 설명하는 것도 조금 이상하다. 프리드리히나 윌리엄 터너, 베르메르와 같은 유럽의 인상주의 화가들만 봐도 말 그대로 빛에 매료되어 있었다. 그런 면에서는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미국인으로서 나는, 빛을 그리거나 묘사하는 대신에 빛 그 자체를 다룬다. 

▲지난 10월 21일 신안군에서 열린 제임스 터렐의 '아트 토크'에서 터렐이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오종찬)
▲지난 10월 21일 신안군에서 열린 제임스 터렐의 '아트 토크'에서 터렐이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오종찬)

항해하는 세일러이자, 창공을 가르는 비행사와 같은 면모를 보인다. 바다와 하늘을 남다른 시점으로 경험시키는데, 바다와 하늘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우선, 물이라는 물질은 맑고 투명하고 다른 물질들을 녹여내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물은 하나의 산소 원자와 두 개의 수소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전기를 생산해낸다. 우리는 물을 영혼이라고 여긴다. 큰 수역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한국이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군도임을 알고 있다. 섬들 같은 경우에는 사방이 물이다. 물은 우리 삶에서 아주 중요한 물질이다.

물을 향한 나의 관심은 항해사로서의 관심이기도 하다. 우리는 차를 운전하기 이전에 배로 항해했다. 물은 아주 이른 운송수단이다. 이제 우리는 창공을 가로지른다. 하늘을 이루는 공기는 물과 같은 유체다. 유체로서 파동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는 하늘을 공기의 바다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는 공기의 바다가 물의 바다를 만나는 지점에 관심을 가진다. 그게 가장 잘 나타나는 곳은 섬이다. 나는 섬이 굉장히 흥미롭다고 생각하고, 한국은 바다 위의 국가라는 점에 주목한다. 

나는 예술, 그리고 빛의 예술을 자연 속으로 가져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안에서는 특히 그렇다. 나는 섬을 소유하고 있기도 하고, 섬에서 3년간 살았던 경험이 있다. 작은 섬이 물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주 흥미롭다. 하늘과 바다는 둘 다 나에게 중요하다. 굉장히 아름답고 부드러운, 특정한 형질의 빛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기에 습기가 차면 좀 더 부드럽고 온화하게 퍼지게 된다. 신안에는 그러한 공기가 있다.

어떻게 한국, 그것도 신안에 찾아오게 되셨는지. 한국에 인연이라도 있는지 궁금하다.

우선, 나는 한국 가족의 일원이다.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내 아내와 처남이 한국인이다. 내 아내는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처남은 작품 <Roden Crater>가 있는 목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것이 첫 번째 이유라면 두 번째로는, 아마 대부분의 여러분들이 태어나기 이전에 내가 한국에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1961년 중국에서 티벳 승려를 구하다가 총격을 당했다. 서울에 위치한 미군병원(American Military Hospital)에서 치료를 받았다. 이것은 1961년에 한국에서 치유 받은 경험이다. 그리고 지금은 간호사 Lee에게 치료 받고 있다. 그녀는 매일 내가 약을 먹었는지 확인한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나와 한국의 강한 유대를 보여준다. 

여러분들도 이미 보셨겠지만, 나는 한국에서 몇 가지 작업을 했고 아티스트로서의 내 커리어의 일부가 되었다. 한국은 7000년의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일제의 점령기도 있었고 제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도 있었다. 우리 형제들은 한국전쟁에 참여했고, 내가 치료 받았던 미군병원에서 그들 역시 머물렀다. 그 곳이 지금은 서울의 현대 미술관이 되었다. 한국과의 인연이 신기하게 흘러갔다는 생각이 든다.

신안은 아주 조용한 섬이다. 이 작은 섬에서 한밤 중의 파도 소리는 아주 강렬하다. 작품에서 사운드는 어떤 역할과 의미를 가지는가?

나는 삶에서 시각적인 측면에 큰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소리와 빛은 함께 이루어져 있다. 나의 사운드 작업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소리와는 다르다. 고요한 발화와 같다. 예를 들자면, 결혼 상대나 연인이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서 말을 하지 않을 때가 있을 것이다.

나의 예술에는 이야기가 없다. 그보다는 존재에 가깝다. 나는 빛의 존재와 빛이 가진 영향력에 관심을 가진다. 빛을 위해 만든 공간이기에 소리에 집중하지는 않지만, 소리를 아예 고려하지 않는다면 혼란이 야기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각각 다른 주파수로 공명하는 공간을 분리해냈다. 내 작품과 소리는 강한 상호작용을 한다고 생각한다. 

▲터렐은 본지 '서울문화투데이'를 받은 후, 기념촬영에서 신문을 펼쳐보였다.
▲터렐은 본지 이은영 발행인으로부터 지면 신문인 '서울문화투데이'를 받은 후, 기념촬영에서 신문을 펼쳐보였다.

의도적으로 수평선과 같이 지형을 구분하는 요소나 좌표를 확인할만한 요소를 지우곤 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우선 우리는 새로운 풍경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새로운 풍경에는 수평선이 없다. 구름과 안개 속을 날기 위해서 우리는 지각과 감각을 확장시킬 도구가 필요하다. 스키를 탈 때도, 눈 속에서 화이트아웃 현상을 경험할 수 있다. 물 속에서도 눈 앞의 거품만 보이고 이외의 것은 감각하지 못하곤 한다. 우리는 삶을 하늘이나 수평선이 없는 공간으로까지 확대하고 있다. 수평선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처음에는 불편감을 느낄 수 있지만, 곧 안개 속을 유영하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안개 속에서 다른 차를 들이받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는, 지평선이 지워진 풍경으로 이동하고 있다.

나는 마찬가지로 구분되지 않는 모호한 지점인, 낮에서 밤으로 바뀌는 석양과 밤에서 낮으로 바뀌는 새벽에 흥미를 느낀다. 어둠은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들만큼이나 중요하다. 

예술가로서, 현재의 국제 위기에 대해 할 말이 있을 것도 같다..

예술가는 정치적 상황에 대해 말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자리에서 내가 독특하게 느끼는 점은 이것이다. 한국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서방 국가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내가 한국의 TV 채널이나 중국, 일본의 채널을 볼 때, 미국보다는 중국 쪽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간디라고 불리우는 함석헌은 나와 같은 퀘이커 종교인이다. 그는 남북의 화합, 대립의 종결과 연관이 깊다. 그의 시각에서는 전부 같은 사람일 뿐이다. 이것은 먼 세대의 일이 아니다. 우리는 결국 미래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법이다. 전쟁과 갈등으로 시작했다고 해도, 끝은 달라지곤 한다. 지금의 독일과 히틀러 시대 독일의 차이처럼, 혹은 미국과 일본의 차이처럼, 아주 다르다. 지금 우리에게는 연대가 있다. 미움은 때때로 공허를 낳고, 그 공허는 사랑으로만 채워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해결방법을 모른다. 이것이 우리가 보는 갈등이라면, 퀘이커는 선이 모든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분들이) 김정은한테서도 선을 느낄수 있을지 모르겠지만(웃음) 단지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차이는 함께할 가능성을 만든다. 증오는 구멍을 만들고, 그것은 사랑으로 채워진다고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물리적인 빛과 그 공간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닌 데이터, 뉴미디어를 이용한 프로젝트에도 관심이 있는가? 선생처럼 되기를 원하는 한국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미래 세대 예술가들과의 관계에 대해 말하고 싶다. 5-60년 후 지금 시대의 예술은 원시적인 예술로 여겨질 것이다. 오늘 날 TV에서는 폭발하듯 범람하는 광고들을 볼 수 있다. 카오스와 같아 보이지만, 동시에 아주 창의적이다. 

우리의 미래는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따라 달려 있으며, 나는 미래를 아주 흥미롭게 전망한다. 현재 한국의 음악, 영화, 춤, 예능 프로그램까지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늘날 한국의 영화는 서구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미래는 지금 진행되고 있다. 나는 당신들이 미래가 무엇인지 보여주기를 기대하며, 앞으로도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