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창 오세창: 간송컬렉션의 감식과 근역화휘》
한국 회화사의 백미, ≪근역화휘≫ 3종 11책 공개
[서울문화투데이 김연신 기자] 근대 미술계의 ‘이건희’와 같은 컬렉터였던 오세창 선생, 그의 공들인 컬렉션을 선보이는 전시가 열렸다. 그 중심에는 간송미술관의 보물 『근역화휘』 3종이 있다. 간송미술문화재단과 간송미술관(관장 전인건)은 오세창 탄신 160주년 기념전 《위창 오세창: 간송컬렉션의 감식과 근역화휘》를 간송미술관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오세창 선생의 감식안으로 선별된 작품들을 통해 동양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필치의 매력과 선의 미학, 그윽한 먹의 표현 등 우리 서화의 세계로 안내한다. 김영욱 전시교육팀장의 치밀한 연구로 작품에 더해진 이야기는 “동양화는 지루하다”는 편견을 쫓는다.
간송의 보물 『근역화휘』 11책, 모습을 드러내다
지난 15일 개최된 기자간담회에서 김영욱 팀장은 "이번 전시를 위해 연구한 결과, 1916년에 완료된 『근역화휘』 7책이 현전 근역화휘 중에서 가장 앞서는 화첩이고, 뒤이어 1917년경에 근대 서화가로만 증보한 화첩이 『근역화휘』 1책으로 확인됐다"라며, "간송미술관과 서울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된 각 3책으로 된 『근역화휘』는 1920년 이후 오세창이 경성의 수장가 김용진의 서화 수장품을 입수하면서 함께 꾸며진 것으로, 그중 구성과 체제를 통해 간송미술관 3책이 서울대학교박물관 본보다 더 앞서 제작된 것으로 확인됐다"라고 밝혔다.
전인건 관장은 "이번 전시는 앞으로 3년 간 열릴 간송 컬렉션의 형성과 역사에 대해서 재조명하는 6번의 전시 중 두 번째 전시"라며, "그동안 서울대 박물관에 있는 천지인 3책본이 출판도 되어 있고, 연구도 많이 되어 있는 상황이었는데, 간송미술관에서 50년 이상 우리 서화에 대한 전시를 할 수 있었던 근간인 『근역화휘』 11책을 책의 형태로 공개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전시는 간송 전형필의 스승이자 간송컬렉션 형성에 큰 도움을 준 근대 미술계의 상징적인 인물인 오세창(吳世昌, 1864~1953)의 탄생 1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근역화휘』를 중심으로 기획됐다.
간송 선생에게 ‘문화보국(文化保國)’의 가르침을 전한 평생의 스승이었던 오세창은 3‧1운동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민족대표의 한 사람으로, 독립운동가·언론가·계몽운동가·서예가·전각가, 그리고 수장가와 감식가 등 근대의 역사, 문화, 예술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오세창 선생이 집대성한 『근역화휘』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근역(槿域)’의 이름 아래 우리나라 역대 서화가의 회화 작품을 엄격하게 선별하게 엮어낸 화첩이다. 1910년 국권을 상실한 일제강점기, 조선의 서화가 일본으로 점차 넘어가는 세태를 안타깝게 여긴 오세창이 가문의 재산을 모두 기울여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일에 일생을 헌신한 증거이자 산물로서, 한국 회화사의 백미(白眉)라 불리는 작품이다.
국내에 잘 알려진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근역화휘』는 오세창이 근대 수장가 박영철(朴榮喆, 1879~1939)에게 증정한 천·지·인 3책이며, 현재 간송미술관은 3종의 《근역화휘》를 보관하고 있다. ‘7책으로 구성된 『근역화휘』’, ‘현대첩(現代帖)의 부제가 적힌 1책의 『근역화휘』’, 그리고 ‘천·지·인 3책의 『근역화휘』’다. 그중 7책본에는 총 189인 244점, 1책본에는 32인 38점, 3책본에는 50인 70점의 서화 작품이 수록된 것으로 조사됐다.
오세창의 감식안에 주목하다
전시는 간송이 수집한 서화 유물의 가치와 의미를 올바르게 정립한 위창의 감식을 중심으로, 그의 안목을 거친 대표적인 간송컬렉션 총 52건 108점을 선보인다.
1층 전시실에는 1930년경 간송 전형필의 상징적인 수장처인 ‘취설재(翠雪齋)’, ‘옥정연재(玉井硏齋)’, 그리고 1938년에 설립된 ‘보화각
(葆華閣)’에 수장되었던 간송컬렉션 13건 62점을 진열하고, 오세창이 보관 상자와 미술품에 친필로 남긴 상서(箱書)와 발문(跋文)의 기록
을 통해 유물의 입수 경위와 수장 내력 등 간송컬렉션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간송이 직접 수집한 서화는 1935년부터 1943년까지 입수된 간송 컬렉션으로, 작품과 함께 오세창의 발문을 함께 배치해 각 유물의 입수 경위와 수장 내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했다.
2층 전시실에서는 7책·1책·3책으로 이루어진 간송미술관 소장본 『근역화휘』 3종을 비롯해, 『근역화휘』에 수록된 대표작품 39건 46점을 선별해 선보인다.
공민왕의 섬세하고 꼼꼼한 필치로 그려진 <양도(羊圖)>를 시작으로 근대의 서화가 무호(無號) 이한복의 <성재수간(聲在樹間)>, 신사임당의 화훼초충도를 연상시키는 여류화가 월성 김씨의 <서과투서>, 19세기 나비 그림에 탁월한 기량을 선보였던 이경승의 <부귀호접>과 김기병의 <괴석화접>, 그리고 근대기 거장(巨匠) 안중식의 <탑원도소회> 등을 만나볼 수 있다.
고려부터 근대까지 산수·인물·영모·화훼·초충·사군자·기명절지 등 다양한 화목에서 탁월한 재주와 기량을 남긴 서화가들의 작품들을 통해 한국 회화사의 시대별 화풍의 경향과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한편, 1971년 <겸재전>을 시작으로 50여 년간 무료로 전시를 개최해왔던 간송미술관은 2024년 가을 전시부터 미술관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을 책정하여 유료화를 결정했다. 간송미술관 전인건 관장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안전하게 보존하고 미술관의 지속 가능한 운영을 위해 내린 불가피한 선택에 대해 시민 여러분의 너른 양해를 부탁드린다”라며, “유료화를 통해 확보된 재원은 문화유산의 연구와 보존, 전시비용에 사용해 간송미술관의 보다 나은 운영을 해나가겠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