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가을밤의 빛과 예술, 노원달빛산책을 걷다
[현장스케치]가을밤의 빛과 예술, 노원달빛산책을 걷다
  • 이은영 기자
  • 승인 2024.11.08 0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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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빛과 예술의 향연
-관람객 100만을 바라보는 확장성 있는 축제로 기대 

[서울문화투데이=이은영 기자]“조형물들이 다 예쁘고, 이런 계절에 이런 장소에서 즐길 수 있어 정말 좋다”(정선자, 88세, 상계동). “현대 미술과 백남준의 미디어 아트를 좋아한다. 이번 전시를 보면서 식물과 조명을 활용해 자연과 미디어 아트를 결합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김현서, 성곡초교 4, 성북구).

어느덧 가을이 깊어진 지난 3일 늦은 오후, 해가 저물고 당현천을 따라 은은한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하는 시간, 노원구 당현천변에서 열리고 있는 ‘노원 달빛산책’ 현장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만난 정선자 어르신은 가족들과 함께 축제장을 방문했다. 작품 하나하나를 보며 연신 감탄을 자아내며 흐믓한 웃음을 지었다. 김현서 군은 초등학교 4학년 생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자신의 예술세계를 그려보이는 당찬 면모를 보였다. 특히 김 군은 “백남준 작가의 팬이다. 백 작가의 마지막 작품인 ‘어머니’와 ‘다다익선’을 제일 좋아한다 ”라며 <노원달빛축제> 예술총감독인 전영일 작가와 조우해 자신의 미래 작품에 대한 조언을 듣기도 했다.

▲김현서(송곡초 4)군이 전영일 작가의 일목천월 작품 앞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우측은 작품사진을 근접 촬영한 것. 좌측 사진의 아래 흰 부분은 작품 안내판으로, QR코드가 심어져 있어 작품과 작가에 대한 설명을 한글과 영문으로 읽고 들을 수 있다. 

숨’을 주제로 펼쳐진 빛의 예술과 감성_QR코드 속에
행사장에 들어서면 마치 흰 자개를 층층이 붙여 올린 듯한 하얀 원구 모양으로 조형된 건축가집단 바래(BARE)의 작품 <공기 울림(Echoes in the Air)>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멀리서 보면 자개 같은 느낌이 들지만, 실제로는 에어 필로우 같은 인공 소재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건너편에는 페트병 뚜껑으로 제작된 노원 달빛산책 안내판이 환하게 빛을 밝히며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계단을 따라 하천으로 내려가면 작품들 사이에서 아이들이 뛰놀며 즐겁게 노는 소리가 평화롭게 들려온다. 하천을 따라 손을 잡고 산책하는 가족들, 삼삼오오 함께 걸으며 즐거워하는 이들의 발걸음도 경쾌하게 이어진다.

▲좌측 사진은 건축가집단 바래(BARE)의 작품 <공기 울림(Echoes in the Air)>은 달의 형상을 본 따 만든 작품으로 달은 반이 나눠어져 관람객들이 작품 속으로 들어가서 감상을 할 수 있게 했다. 한 어린이가 작품을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몸을 기울이고 있다. 우측은 작품 주변에서 작품을 실제로 움직여 빛을 만드는 놀이를 하고 있다.

당현천을 따라 빛으로 물든 작품들은 고요한 강변의 물결처럼, 올해 주제 ‘숨’에 걸맞게 그 자체로 작은 빛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그곳을 따라 걷는 사람들은 작품들 앞에서 한참을 감상하거나 사진을 찍고, 작품에 대해 서로의 감상을 나누기도 했다. 각 작품 앞 안내판의 QR코드를 스캔하면 작품 설명과 작가 소개가 한글과 영어로 텍스트는 물론 음성으로까지 제공된다.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 관람객들을 배려한 모습이 돋보였다. 

올해 축제에는 오민수, 차이팅, 박예지, 인송자, 이기범, 김지혜, 박건재, 서성봉, 람한, 서성협, 첸위린, 첸위팅, 박혜인, 가제트공방, 조영철, 박봉기, 바래, 오종선, 한호진, 문규철, 황선정, 윤제호, 김준, 안경진, 김송, 전스튜디오 등 국내외 24명의 다양한 작가들 41작품 137점이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되는 전시, 공동체와의 소통
이번 축제에서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점은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 작품을 만들고, 이를 전시하는 방식이었다. 주민과 지역 예술가가 함께 협력해 작품을 제작함으로써, 축제는 예술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란 주체의식을 전달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달빛예술학교’의 아트워크숍’을 통해 작가들과 함께 작품을 만들었다. 참여자들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작품을 만들었다는데 만족과 보람이 가득했다.

▲한호진(Han Ho-jin) x 초안산숲속작은도서관(Choansan Small Library), <빛나는 똥들의 습격( Raid of the Shining Poops)>. 초안산숲속작은도서관을 이용하는 어린이들은 똥이 흙속의 양분이 되어 식물을 자라게 하고, 식물의 열매를 먹은 동물이 다시 똥을 누어 흙 속으로 돌아간다는 생태순 환에 주목했다. 똥을 꽃 모양으로 표현하는 형태도 어린이들이 스스로 토론을 통해 결정했다.

특히 눈길을 끈 작품은 생태순환에 주목한 한호진 작가의 <빛나는 똥들의 습격>이다. 이 작품은 어린이들의 공동의뢰로 제작했다. 어린이들은 똥이 흙 속의 양분이 되어 식물을 자라게 하고, 식물의 열매를 먹은 동물이 다시 똥을 누어 흙 속으로 돌아간다는 생태순환에 주목했다. 똥을 꽃 모양으로 표현하는 형태도 어린이들이 스스로 토론을 통해 결정했다.

김송 작가의 <숨, 쉼 Breathe>는 참여자들의 손길이 더해져, 주민들에게 더 큰 애착을 주는 작품이 되었다. 한 중학생은 “내가 만든 작품이 전시된 것을 친구들과 같이 보게 돼 뿌듯했다” 며 SNS를 통해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예술을 직접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학생들에게도 값진 추억으로 남았다. 주민들이 예술적 경험을 쌓고 지역 문화를 만들어 가는 이 과정은 예술과 지역사회의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하고, 공동체를 한층 단단하게 만드는 모습으로 이어질 것이다.

▲코스모스 사이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작품이 스며들어 있는 <숨, 쉼> 작품은 김송 작가와 예룸예술학교의 초,중,고 학생 60여 명이 함께한 작품이다. 학생들은  돋보기를 들고 나무 잎사귀의 반복적인 패턴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손으로 흙을 꾹꾹 눌러 잎사귀의 모양과 잎맥의 무늬들을 흙으로 빚었다. 

예술과 자연의 조화, 개성넘치는 작품들
노원달빛산책의 가장 큰 매력은 자연과 예술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공간감에 있다. 작품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발하며 모든 이들에게 가을밤을 배경으로 빛과 예술이 만들어 내는 특별한 경험을 선사하고 있었다

주요 작품중 하나인 전스튜디오 <일목천월>은 달을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는 작품으로,하나의 달이지만, 거울에 비친 모습은 다양하다. 어떤 거울 속의 달은 온화하고, 다른 거울 속 달은 더 위엄 있게 빛난다. 관람객들은 작품과 거울 사이를 걸을 때, 달과 함께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도 했다. 달을 바라보는 관객은 관찰자이자 피관찰자이며, 세상의 일부인 동시에 세상을 만들어가는 주인공이 된다. 작품은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이는 달을 통해 질문을 던진다. 

▲대만 옌수이의 천위린, 천위팅 예술가 형제가 이끄는 위위 아트 스튜디오의 이 작품은 서양 전설에서 바람의 요정으로 알려져 있는 ‘실프’에 착안해 작품을 만들었다. 중세 유럽의 연금술사 파라셀수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의 본질을 ‘실프’라는 이름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작품은 그 신비한 존재, 실프가 바람을 타고 유영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 부드럽게 움직이는 빛과 그림자 사이에 실프의 장난스러운 웃음소리가 실려있다.

대만에서 초청된 '위위 아트 스튜디오'의 설치미술 작품 <실프에서 실프로>는 바람을 예술에 끌어들였다. 작품명에 나오는 실프는 공기의 정령(요정)을 뜻하며, 빗살처럼 세운 기둥 사이로 바람을 채집하는 부채가 섬세한 그물처럼 밀도있게 설치돼 있다. 그물은 바람을 머금고 빛을 발화시키면 흰 휘장이 펼쳐놓은 듯한 장관을 만들어 냈다. 첸위린, 첸위팅 형제가 이끄는 위위아트스튜디오는 예술활동을 통해 위에진 항구의 기능을 잃고 쇠락한 고향 옌수이 마을을 되살리고 있다. 두 형제가 오래 참여하며 국제적 예술행사가 된 ‘위에진 랜턴 페스티벌’은 ‘노원달빛산책’의 자매협력단체다.

▲(좌)이기범(Lee Gibeom), <산책(Stroll)>, 산책길 벽면 8.5미터를 빛조각으로 가득 채운 대형작품이다. 한지로 만든 섬세한 담쟁이 덩굴을 통해 여름날의 추억을 달빛으로 재현했다. 작품 앞 화단에 놓은 디딤돌을 따 라 관람객은 이 작품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과거 같은 위치에 있었던 자연의 기억과 조우한다. (우)박건재 (Park Keonjea), <그 안에 나 있다!(I Am There Inside!)>.노원구는 서울시 최초의 교육특구로서, 157개의 교육기관이 있다. 이 많은 학교에서 학생들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도록 근무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교육공무직 선생님들이다. 이들은 교무, 과학, 전산, 특수교육, 행정, 급식 조리, 돌봄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교육현장을 지탱하고 있다. 박건재 작가가 이분들을 만나서 들은 이야기를 작품에 담았다. 얼굴 없는 사람 모양에 꼭 맞춘 미디어 설치를 통해, 학생들을 돌보고 먹이는 사람들의 알려지지 않은 목소리를 담고자 했다. 노원구와 도봉구의 교육공무직 선생님들이 직접 참여한 영상과 육성, 손글씨가 들어있다.

박봉기 작가의 대나무 조형물 <호흡 Breath>도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았다. 엮어낸 대나무 교차점 사이로 바람이 흐르며 마치 작품이 숨 쉬는 듯한 느낌을 준다. 관람객들은 작품 속으로 들어가 바람과 교감하며 자연을 몸으로 느끼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박봉기(Park Bonggi),<호흡(Breath)>. 작가는 주로 나무와 친환경재료만 을 사용해 전시 현장 에서 곧바로 작품을 만든다. 그는 프랑스 샹파뉴 대지예술제, 일본 나가노 원시예술제, 미국 환경미술 비엔날레, 터키 코마게네 비엔날레 등 수많은 해외 전시를 통해 알려 진 한국이 낳은 대표적인 환경미술가다. 2024 노원달빛산책 출 품작 ‘호흡’은 대나무를 엮어 사 람과 바람, 빛이 드나들 수 있도록 설계했다. 작품 안에 직접 들어가 생태체험을 할 수 있다. 

노원달빛산책의 정체성의 하나인 한지로 제작된 전스튜디오의 <중력: 벗어나거나 붙잡거나(Gravity: Be Free, Be Caught)>가 있다. 한지와 중력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활용해 역동성을 표현해냈다. 작품은 중력을 통해 자유와 속박이라는 주제를 감각적으로 전한다.

또 하나 발길을 멈추게 한 작품은 윤재호 작가의 <빛결(Radiant Wave>)이다. 레이저빛이 하천과 갈대숲 사이사이로 휘감아 흐르며 은하수를 연상케 하는 은은하지만 화려한 빛의 향연을 펼쳤다. 자연물을 배경이자 오브제로 예술을 만들어 낸다는 발상이 신선하다. 이 외에도 관람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독특하고 다양한 작품들이 당현천의 밤을 밝히고 있었다.

▲윤제호(Yun Jeho), <빛결(Radiant Wave)>. 물결이 하천을 따라 유유히 흘러가듯, 이곳에서는 빛이 그 흐름을 모방한다. 당현천을 가로지르는 레이저 빛이 바람에 흔들리는 풀숲과 물결치는 수면 위로 번져 나가며, 고요한 자연의 숨결을 보여준다. 그 빛을 따라, 소리의 파장이 나무와 공기, 풀잎과 물 사이를 감싸 안는다. 이 작품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던 자연의 리듬을 빛과 소리로 드러내준다. 관람객들이 다리 위와 작품 아래 하천변을 걸으며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달빛 음악회, 예술과 일상의 만남
노원달빛산책은 단순히 빛의 예술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예술과 일상이 어우러진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그 깊이를 더했다. 지역에서 선발된 ‘도슨트와 함께하는 작품투어’와 ‘달빛음악회’는 가을의 정취 속에서 음악과 전시가 어우러져 축제의 분위기를 한층 더 풍성하고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이뿐만 아니라, 행사 기간 동안 소규모 공예 마켓도 열려 소소한 재미를 더했다.

▲서성협(Seo Sunghyeop), <슈-욱슉, 버-언쩍(Whoo-sh, Fla-sh)>.높은 정자 속에 분홍빛의 거대한 물체가 들어있다. 땅 속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지렁이를 크게 확대한 모습으로 지렁이는 작은 것이 더 크다는 작가의 생태적 태도를 반영한 것. 공기를 불어넣은 지렁이가 빛을 밝히며 당현천 정자 기둥을 휘감는 형상이 나온다. 노원환경재단(박양미, 박이슬, 박진미, 신지형, 이진희, 최연재)과 같이 협업한 작품이다.

노원 달빛산책의 미래
노원달빛산책은 노원구 주민들만이 아니라 인접한 지역, 먼 곳에서도 찾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첫해인 지난 2020년에는 코로나기간임에도 kt빅데이터 집계20만명이 다녀갔고, 지난 해에는 96만명이 찾았다. 주최측은 올해는 100만명이 이곳을 찾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날 돌아본 노원달빛산책은 단순한 전시를 넘어 자연, 생태, 그리고 공동체를 담은 공공미술 축제로서, 지역 주민과 예술가가 함께 참여하는 축제의 장으로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주민과 방문객이 함께 즐기고 참여할 수 있는 지역 문화행사로서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매년 새로운 주제로 예술과 지역사회를 잇고, 지역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며, 지역 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제트공방(Ga-z Wood Studio)*전스튜디오(Jeon Studio), <모든 것에는 다리가 필요하다(Everything Needs a Bridge)>. 형형색색으로 당현천 위를 수놓은 무지개색 다리가 있다, 다리는 물빛에 비춰져 또 다른 다리가 물 속에도자리하는 환타지를 보여준다. 이 다리는 자연 속 모든 생물들이 건널 수 있도록 설계했다. 거미줄처럼 얽힌 복잡한 구조를 따라 곤충과 개구리, 길 잃은 작은 동물들이 이 다리를 오가며 만나고 헤어진다. 바람도 다리의 위와 아래를 스치며 자연의 숨결을 드러낸다. 이 작품은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찾으려는 실험이다.

노원달빛산책이 노원구의 대표 문화행사로 자리 잡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적 감동을 전하며 지역사회 문화의 중요한 자산으로 성장해 나가길 바란다. 밤 8시가 넘어 달빛산책을 마치고 나오니,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가 더욱 짙게 느껴졌다. 이번 노원 달빛산책은 오는 17일(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좌)김지혜(Kim Ji-hye), <노원의 별빛, 밤(Starry Night of Nowon)>.도시의 불빛은 별들의 존재를 감추지만, 충분히 어두운 어느 밤하늘에는 별들이 아름답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곤 한다. 우리의 밤하늘이 별빛의 무대가 될 수 있도록 청명하고 깨끗한, 그리고 충분히 어두운 밤하늘이 될 수 있는 근미래의 건강한 자연 환경을 기원하는 마음을 작품에 담았다. (우)노원수학도서관 앞에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즐기며 달빛산책의 작품들을 감상하고 있다. 도서관 건너편엔 소규모 아트마켓이 펼쳐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