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에선 별 다섯을 기대했고, 2부에선 별 셋으로 떨어지지 않길 바랐다. 국립창극단 <이날치傳>은 별 넷이면 족할까. 다수 관객의 호응도로 따지면 그렇다. 국립창극단이 ‘연희와 만나는 창극’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읽혔으며 목적에도 부합했다. 풍물패는 익숙하지만 그게 없었다면 어땠을까? 생각조차 하기 싫다. 남창동의 줄타기는 이번 창극을 살린 일등 공신이다.
대한민국 최초 주크박스 창극
매우 긍정적으로 ‘이날치傳’의 한 줄 평을 하자면, ‘대한민국 최초 주크박스 창극’이다. 판소리의 눈대목이 많이 등장한다. 이것이 없었다면 어쨌을까. 다르게 한 줄평을 쓴다면, ‘판소리에게 고개 숙이며 감사해야 할 창극’이다.
‘이날치傳’의 극본은 윤석미, 새로운 대본이지만, 익숙한 대본이다. 캐릭터 분석을 할 필요가 없다. 조선이란 신분사회를 살았고, 신분적 질서가 서서히 무너지는 지점에서, 광대로 살았던 이날치의 이야기인데, 이게 때론 이날치가 아니어도 될 듯하다. 왜 이날치인가? 어째서 이날치인가? 끈질김이 부족하다.
내 얘기가 심한가. 이날치하면 새타령이다. ‘새타령’이 작품에서 어떠했는가? 작가의 근거 있는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스토리로 어떻게 연결될까 자못 기대했으나 너무도 허탈하고 실색(失色)할 장면이었다. 대중들이 ‘이날치’라면 연상되는 ‘범내려온다’ 창극 속에선 어떠했는가. 떼창과 떼춤, 익숙한 사자춤이 마치 갈라쇼의 한 대목처럼 보여지는 건 재미와 의미 양면에서 모두 결격(缺格)이다.
연출은 정종임이다. 그의 연출의 어려움도 짐작된다. 이날치의 구호와 같은 대사를 어떻게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낼 수 있을까, 이 궁리 저 궁리를 했을 거다. 대본을 보면서 어떻게 인물에 대한 깊이와 생동감을 그려낼 수 있을까 심란하다가도 결국 창극에선 배우의 예술이며, 창극배우가 잘 살려낼 것이라고 믿고 또 믿을 수밖에 없었을 거다.
지난 50년 가까이 음악극을 보아온 입장에서도 미스테리다. 대본의 한계가 분명함에도, 극적 재미가 끝까지 유지됨이 참 신기하다. 왜 그럴까. 그것 국립창극단이라는 단체와 관록과 배우들의 어떻게든 작품을 살려내야 한다는 몸을 불사르는 의지가 읽힌다.
내 아주 솔직한 한줄평은 이렇다. “대본의 허술함을 연출이 살리고, 연출의 어찌할 수 없음을 창극단 배우가 살려냈다.”
전 근대에서 벗어나진 못한 여성서사
드라마 <정년이>와 비슷한 시기에 공연한 창극 <이날치전>의 여성서사는 어떠한가. 정년이는 청년여성의 성장기였고, 그간 드라마의 여성의 시기질투와는 전혀 다른 ‘빌런 없는 페어플레이’를 통해서 여성국극의 세계를 잘 알렸다. <이날치전>에선 유연이(이나경)와 안방마님(이연주)는 봉건사회를 다룬 극의 스테레오타입에서 일보도 벗어나지 못했다. 이 창극이 차라리 여성 캐릭터가 전혀 없는 창극이면 어떠했을까. 판소리 <적벽가>에는 여성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날치와 유연이의 러브라인을 마지막 그런 한 장면으로 해결(?)할 줄 몰랐다.
창극이란 장르도 가면극처럼 ‘과장의 독립성’을 인정할 수 있다. 1부의 미장센(부채)이나 메시지가 2부에서 어떻게 전개될까 기대했던 나는 2부를 보면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란 걸 떠올렸다. 줄타기도 소리꾼도 모두 손에 부채가 들려있다. 판소리에서도 판타지를 연결하는 듯 싶어서 달(나윤영)이란 캐릭터에 주목했다. 그런 달이 2부에선 어떠했는가. 캐릭터는 심화되거나 때론 변화될 때 흥미진진해지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
창극에 진심 vs 창극을 이용
“창극이란 무엇인가?” 그간 창극단은 이런 질문과 함께 화제의 창극을 만들어냈고, 창극의 고정팬을 확보했다. 지금의 창극단도 그런 노력을 하고 있음을 부정하진 않는다. 창극에 굿이건, 연희이건 가져오는 것 자체는 좋다. 그렇지만 소재주의 차원을 넘어야 한다. 창극 속에서 굿도 연희도 자연스럽게 녹아있어야 한다.
앞으로 국립창극단과 작업을 하는 사람은 ‘창극에 진심’이길 바란다. 진심이란 그저 마음에서 나오는 건 아니다. 진정 많이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연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본인의 의도가 그렇지 않더라도 결국 ‘창극을 이용’한 개인 이력 한 줄이 될 뿐이다.
2000년대초, 젊은 판소리전공자 및 국악(기악)전공자가 의기투합해서 판소리공연집단을 만들어냈다. 이제 그 세월도 20년을 훌쩍 넘겼다. 정종임 연출을 포함해서 늘 그들의 가능성을 믿으면서 적극 응원한다. 이제 이들도 과거의 경험과 익숙한 재기에만 의존해선 곤란하겠다.
끝으로 나는 이 한 줄을 꼭 쓰려한다. 이렇게 쓴 나를 하루 빨리 무색하게 만들어주길 바랄 뿐이다. “1980년대엔 청중은 없었으나 작품은 있었다. 2020년대엔 청중은 있으나 작품이 없다.”